박정희 동상 공모전 (5) 다카키 마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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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9년 3월 31일자 <만주신문>에는 ‘혈서 군관 지원’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교사) 박정희(23)군이 송부한 서류에서 혈서가 나와 담당자를 감격시켰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편지에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서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라고 썼다. 그렇게 해서 박정희는 연령 초과에도 불구 만주군관학교 응시 자격을 얻어 이듬해 제2기생으로 입학했다.

    1942년 3월 24일자 <만주일보>는 만주국(일제가 세운 괴뢰국가) 황제에게 거수경례하는 한 생도의 사진을 실었다. 우등상을 받은 예과 졸업생 중 유일한 조선계 생도, 당시 이름 ‘다카키 마사오’인 박정희다. 박정희는 일본 육사에서 본과 2년 과정을 마치고 잠시 관동군 635부대 상사대우를 거친 뒤 1944년 7월 1일 황군 육군소위로 임관되면서 만주군 보병9단에 배치된다. 이 부대의 임무는 팔로군 토벌. 상대가 ‘중공’이라는 데 무게를 둬봤자 소용 없다. 그때 팔로군과 국민당 군대는 연합해서 일제에 저항하고 있었다.

    태평양전쟁기에 국내에서 여러 명망가들이 제국주의 부역 행위를 했던 배경에는 일제의 강압도 깔려 있었다. 반면, 그런 일을 할 만한 지위에 있지도 않았던 박정희는 자원해서 제국주의의 최전선에서 복무했다. 그는 전범(戰犯)이다. 그것도 확신범이다.

    박정희가 독립운동가 출신이 아닌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독립운동의 광휘를 두르고 있었다면 그는 김일성처럼, 더 오래, 더 지독하게 독재를 했을 공산이 크다. 오늘도 박정희 동상을 세우려는 이들에게 일갈할 수 있다. 자신 있고 떳떳하면 만주군복 차림의 다카키 마사오 동상을 세우시라. 제막식에 일본과 중국의 정부 관계자를 초청하고 ‘한중일 공동 역사’ 운운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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