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에 분노한 성주, “판매 허가 미루고…군청은 알고 있었다”

[르포] 13일 국방부 사드 배치 발표하던 날 성주는...

20:52

“오늘 데모하는 날 아입니까?”
“칠곡서 데모해서 성주로 온다카던데.”
“아니라, 원래 성주로 돼 있었겠지. 옛날부터 여기 양놈들 왔다 갔다 하더라니까.”
“데모한다고 되겠습니까. 어차피 전쟁나면 국가 안보를 위해서 하기는 해야 되는 건데.”
“내가 그 바로 앞에 살잖아요. 이제 다 박살 났어요. 농사 지을라고 들어왔는데, 이거 우야노 이제.”

13일 오전, 대구에서 경북 성주군으로 들어가는 250번 버스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THAAD)이야기로 가득했다. 국방부 발표를 앞두고, 확정지로 예상된 성주군민들은 불안한 심정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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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전 10시 30분, 성주군 성주읍 성밖숲에는 ‘사드 성주 배치 반대 범군민 궐기대회’를 위해 3천여 명이 모였다. 한 60대 여성은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내내 휴대폰을 놓지 않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이날 열린 궐기대회 소식을 전하며 “칠곡에는 데모해서 못 갔다더라”고 강조했다.

몇 해 전부터 성주군 성주읍 삼산리에서 참외 농사를 짓기 시작한 송창식(가명, 50대) 씨는 매일 250번 버스를 타고 참외밭으로 출퇴근한다. 그는 “여기 대구에서 내려와서 농사짓는 사람들 많아요. 다 작살났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그러자 옆자리에 앉은 이가 “그거 오면 진짜 참외 못 합니까”라고 물었다. 창식 씨는 “벌써 ‘사드참외’라고 하는데 소문이 그렇게 나면 누가 성주 참외 먹겠어요”하고 쏘아붙였다. 쏘아붙인 게 미안했던지 창식 씨는 “아니 여기는 사람 사는 동네인데 칠곡이든 성주든 어디라도 배치하면 안 돼요”라고 말했다.

창식 씨가 삼산리 정류소에 내리고 난 다음, 버스 기사가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저기 저 산이 성산포대 있는데요. 가깝지, 저 아저씨 동네하고. 성주 들어가는 길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어차피 전쟁 나면 국가 안보를 위해서 하기는 해야 하는 건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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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기사 설명대로 3분이 채 지나지 않아 성주터미널에 도착했다. 성주터미널은 송강호 주연의 영화 <택시> 촬영으로 차량 진입이 통제됐다. 성주터미널은 80년대가 재연되고 있었다. “북괴는 호시탐탐 대남 화야욕에만 혈안이 되어…민심을 현혹시키고…”라는 내용의 담화문이 국방부장관 명의로 걸려있다.

터미널에서부터 늘어선 ‘사드 배치 반대’ 현수막을 따라 궐기대회가 열리는 성밖숲에 도착했다. 마을 이름이 적힌 피켓 뒤로 선 주민들은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삼산리 피켓을 든 주민들은 “사람이 제일 적다고 성주에 한다는 게 말이 되나. 서울 사람은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도 아니냐”고 소리 질렀다.

한 50대 여성은 “군수는 아무것도 안 하고 뭐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내 생계가 여기 있는데 떠날 수도 없다”며 “벌써 사람들이 사드참외, 전자파참외라고 하는데 누가 먹겠느냐. 군수가 저러는 것도 다 쇼 아니냐”고 울먹였다.

이날 김항곤 성주군수,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 등은 혈서를 쓰고, 북한 무수단 미사일을 불태우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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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아래 애견카페 개업한 지 한 달…
“여기서 계속 살 수는 있나요?”

사드 배치 지역으로 지목된 성산포대 아래 성주읍 성산리는 참외 하우스에서 나오는 습한 바람과 참외향이 가득했다. 한 달 전 성산 바로 아래 애견카페를 개업한 김인정(성산리, 42) 씨는 사드 배치 발표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가게는 성산포대에서 약 500m. 부대 방송 소리가 또렷이 들릴 정도로 가깝다.

인정 씨는 지난 13년 동안 간호사 생활을 정리하고 동생과 함께 이곳에 터를 잡았다. 대구에서 오는 주말 손님이 주 고객이다. 곧 방학 기간이 되면 일주일 내내 카페를 운영할 생각이었지만, 사드 배치 발표로 제대로 된 장사 한 번 못 할까 봐 걱정이다.

그는 “다 접고 내려왔죠. 동생은 20년 동안 태권도 하는 거 접었는데. 너무 황당하죠. 지금 성주 사람들은 다 기사만 보고 있어요. 어떻게 하나. 여기서 계속 살 수는 있나. 보상은 해주나. 데모를 계속해야 하나”며 걱정을 털어놨다.

경북 칠곡군에 배치설이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인정 씨는 안심했다고 한다. 이제와서 생각하니 6월에 신청한 판매 허가 신청이 나지 않은 게 의심스러웠다.

인정 씨는 “군청에서는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카페 허가는 미리 냈는데, 지난달에 판매 허가를 내러 갔더니 자꾸 보류시키고 결국 허가를 안 내줬거든요. 미리 알았으면 우리도 여기다가 이거 안 차렸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실 칠곡에서 데모할 때 우리도 같이했어야 돼요.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인데 이건 아니잖아요. 이제 우리나라 전체가 전쟁터인데, 보상해준들 어디 가서 살겠어요. 미사일이 한반도 전체를 보고 있는데”라며 하소연했다.

성주군민들은 사드에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류제승 국방정책실장은 “사드는 북핵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 2/3를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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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군 성주읍 성산리, 성산동고분군 바로 뒷산이 성산포대가 있는 곳이다.

오후 3시, 국방부 사드 배치 지역 성주 발표
불확실한 안전성에…젊은층, “이제 성주를 떠나야 하나?”

이날 오후 3시, 류제승 국방정책실장은 사드 배치 지역을 성주로 정한 이유로 안전을 우선 고려했다고 발표했다. 국방부는 성산포대가 고도 400m에 위치해 있고, 레이더가 5도 이상 위쪽으로 되어 주변 지역에 전자파 피해가 없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레이더 빔 방사 구역 내 3.6km까지는 통제 인원만 출입 가능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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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국방부]

이 모 씨(17)는 “친구들 사이에서 이제 성주를 떠나야겠다고 이야기한다”며 “그런 게 왜 성주에 오는지도 모르겠고, 진짜 안 좋은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3km까지 접근 금지라는데 그러면 성주읍에는 사람도 다니지 말라는 얘기냐”고 따져 물었다.

박 모 씨(20)도 “설명도 제대로 안 하고 무조건 필요하고 밀어붙이니까 당황스럽다. 얼마나 위험한지 그런 설명이 하나도 없으니까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친구들도 그렇고 SNS에서도 다들 그런 분위기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SNS에서는 “(성주여자고등)학교랑 (사드랑) 거리가 1.5km밖에 안 됩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인데 졸지에 관계자가 되었습니다”, “성주읍에서 성산포대까지 고작 2km인데, 성주읍민들 레이더로 튀겨 먹을 작정을 했나 보다”, “그렇게 안전하다는데 청와대를 성주에 지어주자”는 등의 글이 쏟아졌다. 간혹 “성주참외_사드_세요”라며 조롱하는 글도 올라와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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