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TK리부트] ③-3. 이건희, “탈정치, 혐오정치가 내란 사태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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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탈정치, 혐오정치의 확산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는 어쩌면 이를 이용한 정치권, 방치한 우리 사회가 받은 결과값일지 모른다. <뉴스민>이 인터뷰한 광장의 시민 41명 중 28명은 ‘윤석열 개인’을 내란 사태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렇다면 윤석열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대통령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외교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이건희(25) 씨는 ‘대안의 부재’가 그 배경이라 본다. 보수 진영은 박근혜 탄핵 이후 보수의 진정한 가치, 보수를 이끌 인물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 그럼에도 당과 세력이 유지될 수 있었던 데는 우리 사회 전반에 탈정치적 분위기가 팽배해진 상황 때문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일어나서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에 경제공황이 일어났잖아요. 신자유주의냐, 케인즈주의이냐 식의 논쟁은 있었지만 이를 넘어설 정치적 대안이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그 결과로 미국의 트럼프, 유럽의 극우당이 우세하게 됐죠. 윤석열과 내란 사태도 그 흐름에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안이 부재한 한국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특히 2030 세대를 중심으로 탈정치 분위기가 강화됐다.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노동, 성평등, 환경 문제조차 정치적 이슈로 여겨졌다. 건희 씨는 대구·경북에서 이런 분위기가 더욱 강하다고 느꼈다.

“보수 진영이 탈정치, 개개인이 따로 놀게끔 만드는 전략을 밀어붙인 것 같아요. 대구·경북은 덮어놓고 국민의힘만 찍었잖아요. 정치에 무관심하니까 정치적 변화나 다양성이 없고, 그런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탈정치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반복된 거죠. 주변 친구들은 ‘전라도도 똑같지 않냐’고 물어요. 하지만 그 지역은 안철수의 국민의당 열풍이 분다거나 나름대로 변화를 추구했잖아요. 광주를 가보면 5월의 아픔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정치, 사회 문제를 계속 얘기하거든요.”

▲이건희, “내란 사태를 넉달이나 겪으며 ‘대안의 부재’ 문제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대선 국면에서 보수든, 진보든 제3의 세력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이준석과 개혁신당은 당의 내분, 개인의 리스크 등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할 분위기고요. 정의당과 진보당도 마찬가지죠.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척결’을 강조하면서 광장의 요구를 언급하지 않으려 해요.”

내란 사태를 거치며 탈정치뿐만 아니라 혐오정치도 강화됐다. 서부지법 폭동 사태가 대표적이다. 건희 씨는 인터넷에 ‘중국 공산당은 나가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극우 계정이 많다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화교, 짱X(중국인을 비하하는 말), 조선족을 합쳐서 ‘너 화짱조지?’라고 하는 댓글 공격도 자주 보인다.

“내란 사태를 넉달이나 겪으며 ‘대안의 부재’ 문제가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대선 국면에서 보수든, 진보든 제3의 세력이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이준석과 개혁신당은 당의 내분, 개인의 리스크 등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할 분위기고요. 정의당과 진보당도 마찬가지죠. 더불어민주당은 ‘내란 척결’을 강조하면서 광장의 요구를 언급하지 않으려 해요. 문재인을 몰아내기 위해 윤석열이 당선된 것처럼 이번엔 윤석열을 몰아내기 위해 이재명을 끌어주고 있죠.”

건희 씨는 진보정치가 다시 통합돼야 한다고 본다.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로 갈라진 진보정치가 때론 답답하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두 번이나 탄핵됐는데도 오히려 그걸 학습효과로 느끼는지 분당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어요. 한 줌뿐인 진보정당은 왜 다시 합치지 못하나요. 그러니 대안 없이 인물 정치로만 가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 아닐까요.”

진보정치가 통합된다면 가장 먼저 주력해야 할 의제로 건희 씨는 ‘노동 있는 민주주의’를 꼽았다. 산업과 기업은 걱정하지만, 그를 구성하는 노동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는 사회라 보기 때문이다. ‘성장’, ‘혁신’의 이름 아래 산업재해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노동조합은 탄압을 받는다.

건희 씨는 자신이 선 곳에서 다양한 실천을 하고 있다. 대구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대학 내 친구들과 모임을 만들고, 집회에 참여했다. 목표는 학생사회에 다시 정치를 데려오고, 균열을 내는 거다. “지금의 학생사회는 닫혀 있고 개인주의적이잖아요. 연세대학교에선 청소노동자의 시위를 학생이 고소하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고요. 과거의 학생운동과 같은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런 분위기를 깨고 활발한 토론 문화를 형성하는 균열을 내고 싶어요.”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