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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 이주민 A 씨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다. 출산을 앞두고, 의료사각지대 병원비 지원 제도를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2025년 한 해 예산이 3월에 소진돼 지원 받을 수 없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간 A 씨는 대구의료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출산을 준비해왔다. 공공병원인 대구의료원에서 운영하는 ‘외국인 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대구의료원은 A 씨처럼 미등록 이주민이거나 취약계층인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사업을 운영해오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초 A 씨는 대구의료원으로부터 사업 예산이 조기 소진되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병원비가 걱정됐지만, 출산을 미룰 순 없는 형편이었다. 그는 대구의료원에서 출산까지 마치고, 약 480만 원을 의료비로 청구 받았다.
정부가 A 씨 같은 국내 체류 중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등의 최소한의 건강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사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라 노숙인, 국적 취득 전 결혼이민자, 난민 신청자 등과 그 자녀에 대해 300만 원 범위 내에서 총진료비의 90%를 지원한다. 지원 범위는 입원 및 수술, 산전 진찰 등이며, 국립중앙의료원, 지방의료원, 적십자병원, 시도별 지정 의료기관 등 총 17개 시도 111개 의료기관이 운영한다.
문제는 매해 예산이 조기 소진된다는 점이다. 미등록 이주민들 사이에선 ‘연말에는 아프거나 다치면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사업 예산이 충분치 않아 통상 10월쯤부터 예산이 소진되곤 했기 때문이다. 올해 더 빨랐다. 연말쯤에야 소진되던 사업 예산이 대구에선 4월부터 소진됐다.
대구 예산은 국비와 시비를 합쳐 매년 약 3억 9,000만 원 정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해는 2억 9,500만 원으로 약 1억 원이 줄었다. 복지부 예산이 줄면서, 국비 예산에 매칭(국비 7:시도비 3 서울은 5:5)된 시비 예산도 함께 줄어든 탓이다. 2024년도에 발생한 의료비 미지급금을 2025년도 예산으로 집행하고나니, 1년 치 예산이 3개월 만에 대부분 소진됐다.
2025년 사업 예산 삭감되며 예산 조기 소진
이주민 단체, 추가 편성 필요성 제기
대구의료원은 A 씨와 같은 사례에서, A 씨가 도움을 받은 희망날개 사업을 안내하고 있다. 희망날개 사업은 0~6세 이하 미취학 미등록 이주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라, 지원에 한계가 있다. 지원 항목도 임신출산비, 필수예방접종, 응급 등 상황에 한정된다. 대구이주민선교센터에 따르면 지원 사업 종료 이후에도 급히 수술을 받고, 수술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보건복지위원회)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3월 말 기준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 예산을 대부분 소진한 지자체는 대구와 전남 두 곳으로 확인된다. 인천은 68%(6,300만 원 중 4,300만 원)를 썼고, 경기는 70.1%(3억 8,000만 원 중 2억6,800만 원)를 썼다. 전북은 67%(7,600만 원 중 5,100만 원)를 사용했다.

다른 지자체 중에서는 아직 2025년도분 예산을 집행하지 않거나 소량 사용한 곳도 있다. 지난해까지 발생한 미지급금을 아직 해소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 지자체별로 실제 사용 가능한 예산은 더 줄어들 여지도 있다.
국내 체류하는 미등록 이주민이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동안, 사업비는 오히려 줄었다. 국내 체류 미등록 이주민 수가 처음으로 2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되는 2014년, 해당 사업의 국비 총 예산은 23억 2,700만 원으로 편성돼 전액 사용됐다.
하지만 국내 체류 미등록 이주민이 약 40만 명으로 추정되는 2025년 예산은 그보다 적은 19억 70만 원이다. 최근 해당 사업 예산은 2014년과 유사한 규모를 유지하다가 2023년과 2025년 각각 감소했다. 사업 예산은 2022년 25억 원, 2023년 18억 9,000만 원, 2024년 24억 8,000만 원이다. 다만, 대구는 매칭 국비 예산이 2억 7,400만 원으로 매해 일정하다.
대구 사업 참여 기관은 대구의료원 1곳이다. 만약 사업 지원 대상에 해당하는 사람이 급하게 대학병원 등 다른 병원 응급실을 사용한 경우, 해당 병원에서 대구의료원에 사업비 지원을 청구하기도 한다. 이주민 지원 단체는 예산 추가 편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체계적인 지원 방안도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A 씨 입원 등을 지원한 대구이주민선교센터 박순종 목사는 “A 씨는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수술 전에 수술비 지원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계속 대구의료원을 다니고 있었던 상황이라 우선 수술을 받았다”며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다. A 씨는 당분간 아이를 돌봐야 해서 일을 못하기 때문에 어려운 사정이다. 천주교에서 지원하는 사업에 연결돼 일부 지원받을 수 있어 다행이지만, 사업 종료 이후에도 지원이 필요한 이주민들의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대구 기준 예산이 1억 원 줄었다. 새 정부가 들어섰으니 새 정부에서 이 문제를 잘 살펴서 예산도 늘려야 한다”며 “건강보험 재정이 이주민들로부터 엄청난 흑자를 보고 있다. 미등록 이주민이라 하더라도 국가가 좀 더 인권적으로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시는 사업 지원은 중단한 상황이지만, 중환자가 발생하는 등 특수한 경우에는 우선 치료 후 이월 진료비로 책정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흥준 대구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이월 진료비(미수금)가 계속 발생되고 있다. 의료비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며 “외국인근로자가 점점 더 많이 들어오고 있고, 미수금은 더 늘어나고 있어 지원 한도를 정해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국비, 시비 매칭 사업으로 국가에서 예산을 제한적으로 편성하고 있고, 기재부에서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서 예산이 늘 거 같지 않다. 당장은 종교 단체 등 민간사업으로 안내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2025년 복지부 사업 지침 개정
지원 좀더 까다롭게···지원금도 제한
“만성질환자 지원도 필요해”
사업 예산이 줄면서, 2025년부터는 지원 범위와 지원액이 일부 축소됐다. 2025년 보건복지부의 외국인근로자 등 의료지원사업 안내서를 보면, 만성 질환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단, 갑자기 질환이 악화돼 긴급한 진료가 필요한 경우 심의를 거쳐 지원할 수 있다. 지원액도 당초 회당 500만 원 범위 내에서 진료비의 90%를 지원하고 10%는 자부담토록 했지만, 올해부터 회당 300만 원 내로, 연간 600만 원 내 지원으로 축소됐다.
이주민 지원단체에선 미등록 이주민이 증가하는 상황을 고려해 예산 편성을 늘리고, 지원 기준도 깊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예산이 한정적인 것은 맞다. 만성 질환을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는데, 예를들어 신장 투석 환자라고 하면 투석을 안 하면 죽게 될 수도 있는 질환이다. 이를 가볍게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원 조건도 과거 국내에서 취업해 일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해서 까다롭다. 미등록 입장에서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그 자녀들도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다”며 “지금 정책의 관점은 심각한 위기를 겪는 사각지대 사람을 찾아내서 지원하려는 방향이 아니고, 어떻게든 걸러내려고 하는 방향”이라고 덧붙였다.
보건복지부는 예산 확보에 노력하고 있지만, 보조 사업 평가가 긍정적이지 않아 예산 편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예산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을 감축하라는 기재부 차원의 평가도 있다”며 “예산이 다 소진되더라도 수행 기관에서 진료를 안 보는 것은 아니다. 미지급금을 줄여야 하지만, 미지급금이 발생하는 경우 최대한 보전하려고도 한다”고 말했다.
서미화 의원은 “미등록 이주민들은 단속의 위험에 놓여 있을 뿐 아니라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 속에 의료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며 “미등록 이주민이라 하더라도 건강이 위급한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의료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시에 제공하지 못할 경우 개인의 건강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더 큰 비용과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는 우선 예산을 확보해 현장의 혼란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실태조사와 연구를 통해 체계적인 지원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중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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