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수경 칼럼] 경찰폭력에 사망한 미국시민, 그리고 지구 반대편

    경찰이 무고한 시민을 죽였다

    15:37

    9월 14일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시에서 경찰 손에 한 흑인 소년이 사살됐다. 타이리 킹, 고작 13세였다. 2년 전 같은 주 클리블랜드 한 공원에서 장난감 비비탄 총을 갖고 놀다가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총에 숨진 당시 12살의 타미르 라이스라는 흑인 소년이 있다. 타이리는 타미르 다음으로 경찰에 살해된 가장 어린 피해자다.

    ▲타이리 킹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 [사진=wochit News 영상 갈무리]
    ▲타이리 킹의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 [사진=wochit News 영상 갈무리]

    타이리는 콜럼버스시 한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풋볼팀 팀원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죄가 있다면 가난한 흑인동네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피부색 때문에 너무 쉽게 강도 용의자로 의심 받은 것이다.

    타이리를 사살한 경찰에 따르면 강도 용의자를 검문하는 중에 타이리가 갑자기 총을 휘둘러 위협을 느껴 발포했다고 한다. 사살된 타이리는 몸에 장난감 모형권총인 비비탄 총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검시관은 총상 위치를 볼 때 타이리가 총을 맞을 당시 경찰에게서 도망가고 있었을 것이라 한다. 아직 양측 주장이 분분하지만, 경찰이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경찰에게 사살된 월터 스콧에 대해 경찰은 월터 스콧이 위협을 가해서 어쩔 수 없이 총을 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시민이 찍은 비디오를 보면 경찰은 등을 보이며 도망가는 월터 스콧을 행해 8발을 총으로 쏘아 처형하듯 살해했다.

    미국, 인종적 편견을 동원한 공권력의 책임 떠넘기기

    경찰은 과잉대응으로 무고한 시민이 사망할 때마다 온갖 인종적 편견을 동원해 항상 피해자 탓을 해왔다. 타이리가 총 (장난감 총!)을 지니고 있었다는 걸 강조하면서 마치 타이리 스스로가 죽음을 자초한 것으로 묘사한다. 콜럼버스시 경찰국은 트위터를 통해 “무장강도 용의자가 경찰의 체포에 저항해 총을 휘둘렀다”고 했다. 언론은 “무장 강도 범행 후 용의자가 사살되었다”며 타이리가 무장강도범이라는 입증되지 않은 사실을 사실인 양 보도했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경찰에게 살해된 흑인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13세 소년 ‘용의자’ 타이리는 체포도 되지 않았고, 정당한 절차를 거친 재판도 없이 경찰 손에 즉결 처분됐다. 만약 타이리가 경찰 주장대로 무장 강도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다 할지라도 현행법상 사형을 언도받지는 않았을 텐데 말이다.

    타이리를 사살한 경찰관은 아무런 제재도 없이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비록 행정 업무에 재배치 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아무런 불이익도 당하지 않았다.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다른 경찰들도 대부분 마찬가지이다. 앞에서 언급한 12세 소년 타미르 라이스 살해 사건에서 해당 지역 카운티 대배심은 타미르 라이스를 쏜 경관의 행동이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었다며 불기소 결정했다. 타미르 라이스 사건뿐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서 경찰 공권력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은 경우는 너무나도 많다.

    타이리의 죽음 후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은 9월 20일, 이번엔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서 공권력에 의한 또 다른 살해 피해자가 나왔다. 일곱 아이들 아버지이자 장애인인 43세 키이스 스콧은 매일 아파트 주차장에서 스쿨버스에서 내리는 아들을 기다렸다고 한다. 키이스 스콧은 그날도 여느 때처럼 책을 읽으며 주차장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한 사복 경찰이 그의 차에 접근했다. 그리고 그는 몇 분 후 경찰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죽었다. 그가 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스콧에게 외상성 뇌손상 장애가 있다고, 총을 쏘지 말라고 울부짖으며 애원하는 그의 아내 앞에서 말이다.

    경찰은 키이스 스콧이 총을 가지고 위협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가족과 이웃들은 그가 책을 읽고 있었을 뿐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을 기다리고 있던 그가 과연 경찰의 총에 즉결처분을 당할만한 위협이 되었는지는 의문이다.

    경찰은 범죄나 테러 등 위급 상황에 대처하도록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는 집단이다. 위급한 상황에서 흥분해 시민에게 총을 쏘면 너무나 ‘위험한’ 일을 하는 경찰이기에 어쩔 수 없는 공권력 행사라고 이해를 받는다. 하지만 키이스 스콧 같은 보통 사람들은 경찰이 총을 겨눈 상황에서 의연히 침착하게 대응하지 않았다고 비난받는 게 현실이다. 전형적인 피해자에게 책임 돌리기다. 스콧은 올해 들어서만 미국 전역에서 경찰의 손에 의해 죽은 790번째 희생자가 됐다. 불행히도 그 숫자는 매일 늘고 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손들었다, 쏘지마”

    키이스 스콧 죽음 이후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서 항의 시위가 계속됐다. 무고한 시민에 대한 경찰의 총격 살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상황에 대한 정당한 분노의 표현이다.

    20일 저녁 시위는 경찰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를 추도하는 평화적인 추모회로 시작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대가 줄지 않고 더 늘어나자 경찰은 무력진압을 시작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손들었다, 쏘지마”, “우리를 죽이지 마라”며 외치는 시위대에게 경찰이 고무총탄, 최루탄과 폭음탄 등 폭력적인 방식으로 강제해산을 시도하면서 시위는 격렬해졌다.

    이에 맥크로리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는 ‘폭력은 용납될 수 없다’며 기다렸다는 듯이 비상사태와 야간통행금지를 선포했다. 이와 함께 샬롯 경찰을 지원하기 위한 주 방위군 병력도 배치했다. 하지만 더 많은 공권력은 거리로 나선 분노한 시민들을 해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공권력에 목숨을 잃은 미국과 한국시민
    너무나 닮은 두 나라 공권력의 얼굴

    샬롯이 경찰 공권력 과잉진압과 살해에 대한 항의로 들끓고 있을 때, 나는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경찰 공권력에 살해된 무고한 시민의 죽음 소식을 들었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 중 경찰이 직사한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317일 만에 세상을 떠난 고 백남기 님의 죽음이다. 물대포와 총이라는 구체적 살상무기는 다르지만, 미국과 한국 두 나라에서는 모두 공권력인 경찰 손에 무고한 시민이자,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아들인 아까운 목숨들이 스러졌다.

    공권력 대응도 두 나라가 비슷하다. 한국 집권여당은 논평을 통해 “시위가 과격하게 불법적으로 변하면서 파생된 안타까운 일”이라며 백남기 님 죽음을 불법 과격시위 탓으로 돌렸다. 은근슬쩍 시위에 참가한 피해자를 탓했다. 스스로 죽음을 자초했다고 떠넘겼다. 무고한 사람이 죽었지만, 두 나라는 너무 닮았다. 국가 공권력은 스스로를 정당화하며 아무도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았다. 당시 경찰 책임자라는 사람은 “사람이 다쳤거나 사망했다고 해서 무조건 사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국회 청문회에서 뻔뻔히 내뱉었다. 사람이 죽거나 다치면 무조건 사과 먼저 해야 한다. 왜? 그게 인간에 대한 예의이다.

    특히, 가해자가 국가 공권력일 때, 국가 공권력이 무고한 시민을 죽였을 때는 사과뿐 아니라 그 책임자가 적절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또 다른 무고한 죽음을 막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불행히도 그런 논의는 없다. 누가 봐도 사인이 분명한 상황에서 사인을 밝히겠다는 부검 위협만이 있을 뿐이다.

    10월 1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고 백남기 님 추모대회에서 상영된 “우리가 백남기다”라는 영상을 SNS를 통해 보았다. 영상 제목에서 2년 전 벌어진 대규모 반인종/경찰폭력 반대 시위의 물결을 떠올렸다. 뉴욕경찰 손에 목 졸려 죽은 흑인 에릭 가너가 죽어가며 외친 마지막 말, “숨을 쉴 수 없어”. 그것은 국가폭력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유행어처럼 번졌다.

    ▲총을 쏘지 말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NFL 선수들. [사진=MSNBC 영상 갈무리]
    ▲총을 쏘지 말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는 NFL 선수들. [사진=MSNBC 영상 갈무리]

    “우리는 숨을 쉴 수 없다”는 당시 뉴욕과 미국 전역에서 벌어진 인종주의 경찰 폭력에 반대하는 주된 구호였다. 그리고 이에 가세해 미국프로풋볼(NFL), 미국프로농구(NBA) 선수들이 ‘나는 숨을 쉴 수 없다’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경기에 나서 인종 차별 철폐와 경찰·사법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대에 동조를 표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흑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그런 바람이 한국에도 불기를 바란다. 국가 폭력에 반대하는 싸움이 더 커져서 “우리가 백남기다”라는 외침이 곳곳에서 울리는 걸 보고싶다.

    [사진=백남기투쟁본부]
    [사진=백남기투쟁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