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사⋅경제성장’ 강조한 국정교과서, “현실 가리려는 독재 정권의 속성”

대구교육청, “국⋅검정 혼용”...경북교육청, “정부 방침 따라”
주보돈 교수 “독재 정권이 현실 가리려 고대 세계 제국 강화”

11:35

우려가 현실이 됐다. 28일 공개된 한국사 국정교과서 현장검토본은 친일·독재 미화 등 역사학자, 시민사회가 우려했던 내용이 그대로 담겼다. 줄곧 교육부 방침을 따르던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국·검정 혼용’ 입장으로 선회했지만 그마저도 꼼수라는 지적이다. 이영우 경북교육감은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28일,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중학교 역사 1·2, 고등학교 한국사 국정 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웹으로 공개했다. 교육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 의견 수렴 위한 교과서 최초 웹공개’라고 강조하며, 오는 12월 23일까지 4주 동안 의견 수렴을 한다고 밝혔다. 교육부가 밝힌 ‘제출할 수 있는 의견’은 내용 오류, 오탈자, 비문, 이미지, 기타의견 5가지다.

경제성장 강조 위해 뚝뚝 끊기는 역사적 흐름
현대사 전공자 ‘1’도 없는데 군사학자는 포함

교육부는 “기존 교과서가 경제성장 성과보다 부작용에 초점을 맞췄”다며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을 충분히 서술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독재를 미화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역대 정부의 ‘독재’에 대해 분명히 서술하였다”고 부연한다.

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정책을 ‘충분히’ 서술하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 체제와 경제·사회 발전’이라는 소주제에서 10페이지에 걸쳐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정치와 경제를 한 번에 설명한다. 기존 교과서가 정치와 경제를 다른 소주제을 두고 다루던 것과 다르다.

그 아래 소제목은 ‘박정희 정부의 출범과 경제 개발 계획의 추진'(60년대), ‘유신 체제의 등장과 중화학 공업의 육성'(70년대), ‘민주화 운동과 경제 성장'(80년대)으로 나열된다. 군사정변으로 출범한 박정희 정부와 독재를 연장하기 위한 유신체제, 전두환 군부세력 등장으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연결고리가 그 시대 벌어진 ‘경제 정책’으로 뚝뚝 단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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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한국사 국정교과서 일부[사진-올바른 역사교과서 홈페이지]

국정교과서 집필진 31명 중 현대사 집필진은 7명으로 최다지만, 역사학 전공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정치학자 2명, 경제학자 2명, 법학자 1명이다. 우리 현대사에 군부독재가 25년이나 차지한 점을 고려한 탓인지 군사학자도 1명 포함됐다.

박정희 정권을 서술하는 부분은 유독 ‘안보 위기’가 돋보인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는 유신 체제 등장을 설명하면서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 총득표 수가 여당보다 많았다. 닉슨 독트린으로 미중 관계가 개선되고 베트남에서 미군이 철수하는 등 냉전이 완화되어 갔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1971년 12월 반공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한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를 최우선시 하며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하였다”고 서술한다.

야당 득표수가 많은 것과 세계 냉전 완화가 왜 국가 비상 사태로 연결되는지 알 수 없다. 국가 안보에 어떤 위기였는지 설명하지 못 하고, 안보 위기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인상만 남긴다.

교육부는 기존 검인정 교과서가 신라, 고구려보다 백제, 발해 서술에 편차가 있었다며 ‘해상 강국 백제’,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라는 특집 페이지를 추가한 점이 달라진 주요 사항이라고 밝혔다.

‘해상 강국 백제’ 부분에서는 고대에 해로 교통은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백제는 황해도 일대를 차지해 고구려 간섭을 받지 않고 황해 해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강조한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에서는 발해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료가 등장한다. 발해 성왕 때 우리나라가 최대 영토를 이루었다는 내용도 빠지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고대사 강조를 통한 왜곡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주보돈(경북대 사학과) 교수는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광대한 고대 세계 제국을 강화했다. 독재 권력이 현실 문제를 외면하도록 만들기 위해 강조했던 것”이라며 “오히려 고대는 극우적 논리와 연관된 사실을 직시하기 어렵다. 땅이 넓다는게 뭐가 문제냐고 하지만, 역사학의 과학성, 객관성, 엄밀성으로 보면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대구교육청, “국⋅검정 혼용”…경북교육청, “정부 방침 따라”
현장에선 “당장 폐기”, “쓸 수 있는 책 아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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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대구네트워크’가 국정교과서 폐기를 요구했다.

국정교과서 공개 하루만에 경북교육청은 교육부 방침에 따라 국정교과서 채택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반면 대구교육청은 교과서 선택권을 학교장에 맡기겠다고 밝혔다.

한영대 대구교육청 비서실장은 “(교육감께서) 지금 국정교과서는 동력을 잃었다는 말씀을 하셨고, 지금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국정교과서와 검인정교과서를 혼용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안”이라며 “학교장 책임 하에 현재 있는 검인정 교과서 채택하는 절차에 따르는 게 좋다. 교육감 본인의 의견을 밝히는 것은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호만 전교조 대구지부장은 “국정과 검정 혼용은 어불성설이다. 교육감 입장 변화가 아니라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꼼수”라며 “국정과 검정을 놓고 고르면 교장들은 당연히 교육청 눈치를 볼 테고, 학부모는 수능을 생각해 국정을 택할 가능성도 많다. 국정교과서를 지지한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23년째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이재두 씨는 “왜 역사를 가르치고 연구하는지 답답하다. 교사들은 검토본 자체도 거부하고 있다. 이런 게 한 번 만들어지면 다음 역사 교과서 만들 때 잣대로 들이댈 가능성이 있어 우려스럽다”며 “공개 그 자체가 파장이다. 검토본 자체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근현대사를 쓰고, 역사 연구 변화상을 모르는 나이 많은 연구자들이 다 집필했다. 역사 교사로서 교육활동을 못하게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주보돈 교수는 “얕은 생각으로 무조건 교과서에 민족의식을 강조하는 건 미래에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또 다른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고 강조하는 걸 앞으로 어떻게 막아낼 거냐의 문제”라며 “집필진 중에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근현대사에는 역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고, 고대사도 비주류 전공자들이다. 앞으로 대구경북 일대에서 쓸지 안 쓸지 몰라도,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