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노상횟집 ‘코오롱’, 종필은 또 문을 닫았다 (2)

대구 수성구 목련시장 노점 정비로 바라본 노점 갈등
1년 6개월 이어진 수성구 목련시장 노점상 정비
20년 지켜온 시장서 하루 아침에 쫓겨난 노점상인들
믿어달라는 수성구와 믿을 수 없다는 상인들
고무줄 같던 수성구 노점 정책 20년····지켜봐온 상인들

17:03

[편집자 주=2017년 10월 13일, 수성구는 목련시장 노점상 철거를 위한 행정대집행을 진행했습니다. 길게는 30년. 짧게는 5년. 일생을 보낸 곳에서 노점상인들을 내쫓겼습니다. 2016년 4월 수성구가 거리가게 조례를 제정한 후 지난 11월 목련시장 노점상인들이 시장을 떠나 새로 자리를 잡는 과정은 40여년 이어져 온 대한민국 노점 정책의 허점과 노점 갈등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었습니다. <뉴스민>은 목련시장 시장 노점상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행정기관이 주도하는 노점 정책의 허점을 짚어보고자 두 편의 기사로 나누어 전합니다. (첫 번째 기사 보기)]

▲이젠 목련시장에서 볼 수 없게 된 것들. 3천 원~만 원까지, 각양각색 목련시장 노점상인들이 취급하던 품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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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노점 정비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2011년 치러진 대구 세계육상선수권 대회는 ‘성공리’에 마무리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이 모 대학 연구팀에 의뢰해 분석한 경제효과는 2,694억에 달했다. 그 연구팀 우두머리가 2년 만에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되고, 4년 뒤엔 대통령 비선 실세의 ‘수행비서’ 정도로 일하다 구속돼 버릴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할 일이었지만, 종필은 그 다음해 다시 노상 횟집 코오롱 운영을 시작했다.

그 무렵 목련시장에서 용지초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가는 왕복 4차선 도로에서 영업하던 노상 횟집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도로 위에서만 노상 횟집 세 대가 영업했다. 그중 한 대는 횟집을 차려 떠났고, 두 대는 어디로 뭘 하러 떠났는지 알 길이 없다. 종필은 경쟁자들이 떠난 도로 위에 자리 잡고 오랜만에 다시 칼을 잡았다.

미숙도, 영숙도, 연수도 새로 자리 잡은 회 차를 눈여겨보진 않았다. 뜨내기 장사꾼도 많고, 장사를 하면 하는 가보다, 안 하면 안 하는 가보다, 하는게 이곳 순리였다. 미숙과 영숙, 연수, 종필의 인연은 그해 수성구가 다시 노점 정비를 시도하면서 깊어진다. 수성구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린다는 게 이유였다.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치루고 전국체전으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수성구 노점 정비 강도는 강해지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목련시장 노점상인들이 민주노점상전국연합에 가입을 결정한 것도 그 때문이었고, 신매역 일대 노점상인들이 민주노련에 가입한 것도 2012년 11월이다.

쫓겨난 경험이 있던 종필에게 ‘조직’으로 묶인 목련시장 모습은 생경했다. 이상하게 일 할 맛이 났다. “나는 함 당해봤잖아, 여는 오니까 좋더라고. 단체 가입이 돼 있으니까, 예? 대응할 힘이 있잖아, 여도 단체 없었으면 벌써 철거됐을 거 아인교” 종필은 2015년부터 민주노련 목련시장 지역회 사무장 일을 맡아보기 시작한 이유다.

2012년은 목련시장 노점 상인들에게 일생일대 위기였다. 수성구는 강제철거를 단행하면서 노점 정비에 강경 태도를 고수했다. 목련시장을 포함해 중동, 상동, 신매역 일대 노점도 강제철거 대상이 됐다. 9월부터 수성구는 각 지역 노점에 자진 철거 계고장을 보냈고, 10월부터 강제철거를 시작했다. 중동과 상동 노점상들은 자진해 장사를 접었고, 민주노련에 가입한 목련시장 노점상은 지역 시민단체와 연대해 싸움을 시작했다.

“그때는 하루하루가 싸움이었죠” 당시 민주노련 목련시장 지역장을 맡았던 심경국(45)은 2012년을 ‘싸움’으로 회고했다. “그때 담당 계장이 너무 죽기 살기로 하니까, 사람들하고 대화 하려고 하지도 않았고···동아가 먼저 민주노련 가입을 했고, 우리도 가입했는데 그때 계장이 다 쓸어 갔어요. 그러고 데모를 했어요. 그때가 최초 데모였죠” 민주노련은 그해 11월 13일 전국에서 약 500명이 참여한 집회를 수성구청 앞에서 열었고, 신매역 노점상인들은 같은 달 27일 구청장실을 점거하고 들어갔다. 싸움이 크게 번지는 기미를 보이자, 수성구는 적당한 선에서 민주노련과 타협책을 찾았다.

▲2012.11.27 수성구 관할 노점상인들이 수성구의 노점 정비에 반발해 수성구청장실을 점거하고 들어갔다. (뉴스민 자료사진)

행정기관의 노점 정비는 매번 이런 식이었다. 적당히 ‘유도리’를 보이다가도 어떨 때는 강경해지고, 충돌이 커지거나 비난이 거세지면 적당히 타협했다. 노점 상인들이 행정기관을 불신하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이처럼 노점정책이 고무줄처럼 오락가락하는 데 있다.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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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같던 수성구 노점정책은 2016년, 새로운 규정을 만들었다. ‘불법’인 노점을 ‘거리가게’로 ‘허가’해주고 영업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내용이다. 2016년 4월 수성구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거리가게 허가 및 관리 등에 관한 조례’를 만들었다. 조례에 따른 첫 사업 대상지로 목련시장을 정했다. 언론은 수성구가 대구서 처음으로 생계형 노점 양성화에 나선다며 긍정적인 보도를 쏟아냈다.

현실은 언론 보도와 달랐다. 미숙과 영숙은 말할 것도 없고, 목련시장 노점상인 모두는 조례가 만들어지고 사업 대상이 목련시장으로 정해질 때까지 내용을 알지 못했다. 수성구는 조례를 제정하고, 사업대상지를 정한 후에야 이들과 만났다. 취재진은 종필에게 물었다. “구청에서 며칠 내로 간담회를 한다 카더라고요? 그걸 들어보고 난 후에 뭐 이야기가 돼야 안 되겠나···” 지난해 4월 종필은 카메라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노점상인들에게 노점 양성화는 큰 의미가 없었다. 그들에게 의미 있는 건 ‘변화’였다. 특히 영업장소 변경 여부가 중요했다. 노점상인 절대 다수는 현재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가길 원했다. 자리는, ‘20년’이라는 시간이었고, 단골 손님들과 약속이었다. 수성구 실무자들은 책임질 수 없는 말을 모호하게 노점상인들에게 흘렸다. “현장 반장이 처음엔 제 자리에서 장사하게 해준다 했다니까요” 영숙도, 미숙도, 연수도 입을 모았다.

배재현은 2016년 1월, 수성구 도시디자인과 도로점비담당 계장으로 발령 났다. 발령 후 줄곧 목련시장 노점 정비에 매달렸다. 재현도 정책 추진 초반에 기존 장소 영업 유지를 고려했다는 걸 부인하진 않는다.

“우리 실무진 끼리···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결정권이 없잖아요. (원래 영업장소로) 내려가 보니 너무 길고, 90cm(매대 폭)를 안 지켰고. 무엇보다 노점도 노점이지만, 상가가 더 큰 문제였어요. 농협 마트나 생선 가게도 인도에 내놓고 파는 걸 이번에 다 막아냈잖아요? 그걸 정비하려면 올라가는 것 말곤 방법이 없어요”

‘불법’은 자기 상점 없는 노점이나, 자기 상점 있는 상인들이나, ‘농협’ 같은 대형 마트도 예외 없었다. 노점을 정비하는데 명분을 얻기 위함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난 1년 6개월 동안 재현은 여러 차례 “노점보다 상가가 더 문제”라는 말을 반복했다.

수성구는 ‘문제’ 해결을 위해 기존 영업장소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장소로 이전을 결정했다. 1986년 지은 목련아파트 서편으로 100m 정도 뻗어 오르는 오르막길. “그 자린 장사가 안된다”, “장사가 되면 그 자리가 그리 비었겠냐” 영숙, 미숙, 연수, 종필···. 누구랄 것 없이 다 반대했다.

거리가게 상생위원회는 수성구가 내놓은 안건 안에서만 심의하고 결정했다. 기존 영업장소 대신 새로 영업할 자리를 찾으면서도 수성구가 제안한 장소 1곳만 살펴보고 가부만 결정했다. 위원회가 자체적으로 내놓은 대안은 없었다. 20여 년. 허허벌판이던 목련시장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학교가 서고, 마트가 서고, 도로가 정비되는 걸 지켜본 세월은 구청 결단 앞에 속수무책 의미를 잃었다.

1년 넘는 시간을 종필과 노점상들은 버텼다. 구청과 대화도 나눠봤다. 종필은 난생처음 구청장도 만났다. “이걸(거리가게 정책) 거부하겠다? 여러분들이 무슨 권리가 있습니까? 솔직히 이야기하면, 여러분이 우리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권리가 어딨습니까? 여러분들만 가난합니까? 가난한 사람 많습니다. 여러분들은 오래하고 있잖아요. 왜 그렇습니까?”3 구청장은 강경했다.

수성구는 노점상인들 반대와 상관없이 정책을 추진했다. 예정했던 장소에 2천만 원 정도를 들여 영업 매대를 만들었다. 공고를 내고 새로 만든 매대를 이용할 거리가게 운영자를 모집했다. 수차례 진행된 모집은 목련시장 노점상인들이 외면하면서 매번 미달됐다. 7명, 민주노련 소속이 아닌 목련시장 노점상인들만 구청 요구대로 모집 신청에 응하고 매대를 차고 앉았다. 수성구는 모집에 응하지 않는 노점을 대상으로 행정대집행을 예고했다.

10월 12일, 수성구가 대집행을 예고한 날을 하루 앞두고 비가 내렸다. 어쩌면 마지막 장사가 될지도 모르는 날인데, 비가 왔다. 미숙은 사정사정해서 새댁에게 무를 더 팔았고, 영숙은 잠을 뒤척였다. 종필은 ‘내일’이 다가오는데, 답을 내리지 못하고 갈팡질팡 고민했다. 좋은 방법이 뭔지, 결정이 어려웠다. 종필보다 오래 활동한 지도부는 강한 충돌에 부정적인 내색을 보였다.

예고대로 13일 아침 9시부터 수성구는 공무원, 용역 90명을 내보내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다. 지도부는 충돌 없이 미리 매대를 정리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렸다. 영숙은 해가 뜨기도 전에 시장에 나와 젖은 종이상자 더미를 치우고, 배추를 치웠다. 붉은 모자 쓴 공무원, 용역 90명은 그러고도 남은 것들만 뒷정리했다. 20여 년 지켜온 자리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종필은 다시, 내쫓겼다. 수년 전 그랬던 것처럼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16일부터 수성구청 앞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다른 상인들도 함께 구청 앞 인도에 앉아 노래도 부르고, 소리도 질렀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당연한 구호가 메아리처럼 반복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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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부터 목련시장 노점상인들은 목련시장에서 약 5~600m 떨어진 지산근린공원으로 옮겨가 영업을 시작했다.

“짜장면 시키셨어요?” 11월 10일 오후 1시 40분경, 지산근린공원 앞으로 짜장면이 배달됐다. 두툼한 보라색 점퍼를 입고 꽃무늬 일바지를 입은 할머니. 까만색 점퍼, 까만색 바람막이, 까만색 청바지를 입은 아주머니. 곱게 화장을 하고 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멘 할머니···. 대여섯 명은 오전부터 나와서 장사를 해도 좋다는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 연락이 올지 몰라 점심도 먹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다 뒤늦게 짜장면을 주문했다.

한 달여 구청 앞을 찾았던 목련시장 노점상인들은 새로운 자리에 터를 잡았다. 목련시장에서 불과 5~600m 떨어진 지산근린공원 이면도로다. 행정기관의 원칙은 이번에도 적당한 수준에서 미봉됐다. 수성구는 이들이 이리로 옮겨가는 걸 암묵적으로 묵인했다. 여전히 수성구는 대외적으론 조성해놓은 거리가게 영업 매대로 이들이 옮겨가는 게 원칙이라고 밝힌다.

“6, 70대 할머니들이 그곳에서 하는데, 구청에서 그분들까지 내몰 순 없지 않습니까? 그건 현 사회와 맞지 않다고 보고요. 그런데 민원이 엄청 들어오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론 그분들도 (거리가게로) 올라가서 같이 하면 답이 나올 것 같은데···” 재현은 답답하다는 듯 말했고,

“그분들도 올라가면 경제과하고 우리하고 해서 시장뿐 아니고 상가까지, 거기(목련시장) 많이 죽었잖아요. 전부 윈윈해서 잘 되도록 해보려고 하거든요. 그 사람들이 우릴 못 믿어서 그러잖아요. 요새 관(행정기관)에서 안 그러잖아요? 옛날하고 틀리잖아. 만약 올라가서 장사 안되고 그러면 그땐 진짜 우리 공격당하잖아요?” 옆에 있던 과장도 거들었다.

행정은 원칙 없이 반복적으로 오락가락했다. 정부가 노점 단속을 본격화한 것이 1980년, 넉넉잡아 40년 동안 신뢰는 조각조각 깨졌다. 목련시장 노점상인이 수성구 노점 행정을 지켜본 것만 해도 20년이 넘는다. 오랜 기간 체득한 경험이 잘근잘근 신뢰를 부숴왔다. 공무원은 마냥 믿어달라는 말만 반복했다.

11일 10일 오후 3시, 오랜만에 목련시장 노점상인들 사이에 활력이 돌았다. 종필은 이곳저곳을 오가며 상인들이 새로 자리 잡는 걸 도왔다. “아이고, 정신도 없고 두서도 없고 한 며칠 안 이렇겠나” 누군가 말했고, “오늘은 자리 잡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해보자는 거 아인교” 종필이 대꾸했다.

오후 4시, 한숨 돌리는 종필에게 다가갔다.
“이렇게 해결될 것 같네요?”
“어데요. 해결된 거 없어요”
20년 경험은 종필의 미간을 좁히게 만들었다. 노점상인들이 사용할 전기도 확보되지 않았고, 주민이나 주변 상가 반응도 어떨지 알 수 없었다. 노상 횟집 코오롱은 이날도 영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1. <도시공간과 노점상의 권리에 관한 연구>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2011.
    “노점상의 단속규제는 제한적, 일시적, 선택적, 국지적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에 법규 적용의 일관성을 잃었을 뿐 아니라 원칙보다는 정부의 편의나 정책입안자의 즉흥적 발상에 의해서 혹은 외국인에 대한 체면치레를 위하여 집행되어 단속에 대한 노점상들의 반발을 심화(시켰다)”
  2. <노점상문제 현황 및 갈등구조 분석> 홍인욱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1999
    “노점상 정책의 기조는 이처럼 규제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집행은 일시적 혹은 지역적 필요에 따라 관행적으로 이뤄어져 왔다. 바로 이점이 노점상과 행정당국간의 또다른 갈등요인이 되고 있다”
  3. 이진훈 수성구청장, 노점상인 면담서 “여러분들만 가난하냐” 비난. <뉴스민> 2017.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