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 “Hij is op vakantie(그는 휴가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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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인근에서 유학 중이던 친구는 구독 중이던 지역일간지 칼럼 코너를 애독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해당 칼럼 부분이 백지 처리가 됐고, 3일이 이어졌다. 한국에서 신문 지면에서 백지 영역을 본다는 것은 독재에 의한 검열이나, 탄압에 대한 저항이었다. 그래서 21세기 선진국 네덜란드에서 이게 뭔가 하는 마음에 언론사에 전화를 걸었다. 짧은 더치어 실력으로 이 코너가 며칠째 백지로 나오고 있는지 이유를 물었다.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고 한다.

“Hij is op vakantie.(그는 휴가 중이야.)”

대한민국 휴가는 7월 말과 8월 초에 몰려 있다. 대부분 공기업과 대기업이 그 시기 휴가를 시행하고, 협력업체 역시 그 시기에 휴가를 시행한다. 이뿐인가. 가족 중 누군가 여기 속해 있다면, 휴가도 그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휴가 시기조차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다.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변호사나 법무사 역시 법원 휴정 기간에 맞추어 일제히 휴가를 시행한다.

세부적으로 상황을 살펴보자. 노동자 한 사람이 휴가를 가면 그의 일은 다른 노동자의 업무 부담이 된다. 그게 어려운 직종은 미리 야근을 불사하며 업무를 당겨 처리한다. 무사히 휴가를 떠났다고 끝이 아니다. 휴가지에서도 끊임없는 카톡 업무 처리가 기다린다.

대한민국 노동자 중에서 늘 하던 대로 일을 하고 휴가를 다녀오고, 휴가 중에 전달받은 이메일이나 카톡 업무 지시를 무시할 수 있는 용감한 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노동자가 아니라, 이 상황이 이상하지 않거나 오히려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고 인식하는 문화다.

대한민국은 대표적인 장시간 노동 국가이다. 2017년 기준 OECD 가입국 가운데 노동시간이 멕시코와 코스타리카 다음이다. 다행히 지난해보다 한 단계 하락했다. 그런데 얼마 전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가 아직도 논란이다. 노동자의 휴식에 대한 인색한 사회적 인식도 여전하다. 노동자를 제대로 대우하지도 않고 노동을 천시하는 문화이면서 휴식을 요구하는 노동자에 대해서는 가혹하다.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팔자 좋고 생각 없는 투쟁으로까지 치부한다.

노동할 수 있는 권리와 온전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권리는 발맞추어 가야 한다. 온전한 휴식 후에 제대로 된 노동이 가능할 수 있다. 노동시간이 세 번째로 짧았던 노르웨이의 노동생산성은 한국의 두 배 이상이었다. 제대로 된 휴식 보장이 가져다주는 실질적 노동생산성 향상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노동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면 휴식할 수 있는 권리도 노동자 스스로 죄책감 없이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와 기업 역시 노동자의 휴식권이 제대로 보장될 수 있도록 제도와 인식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조화되지 않은 권리는 권리가 아닌 의무로 다가올 뿐이다.

1948년 세계인권선언 제24조에서는 휴식할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해 놓았다.

“모든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즐길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에는 노동시간을 적절한 수준으로 제한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정기적인 유급휴가를 받을 권리가 포함된다”

2018년 세계인권선언이 70주년을 맞이하는 대한민국에서 노동자의 온전한 휴식할 수 있는 권리는 어디에 있는가? 삶이 노동에 예속되지 않는 인생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좋은 나라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여름 휴가지에서 휴가 중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