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노인병원 위수탁협약서, ‘갑’ 권한 막대해

시지노인병원 파업 80일,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17:33

지난 12일 백범기 전국보건의료노조 대구경북본부장, 김희정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사무처장 등 6명은 악화일로로 치달은 대구시립시지노인전문병원(시지노인병원) 사태 해결을 위해 대구시 부시장과 면담을 했다.

면담 자리에서 부시장은 “대구시가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라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업무를 보는 대구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도 같은 입장이다. 대구시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노동청에서 중재해서 노사 간에 5차 협상을 하고 있다. 노사간에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면 될 것 같은데 그 부분이 아쉽다”며 ‘노사’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대구시의 입장은 시지노인병원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일관됐다. 대구시 관계자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경북지노위)가 시지노인병원에 대한 부당징계 및 지배, 개입의 부당행위 일부 인정 판정을 내렸을 때도 “판결은 존중한다”면서도 “병원이 이를 시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시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에는 한계가 있다. 노사문제는 협약의 주체가 병원과 노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심지어는 “시지노인병원은 시립 병원이라기보다는 공공의료기관”이라며 시의 책임을 면피하기 위한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대구시의 이 같은 입장은 어디까지 맞고 틀린 걸까. 시지노인병원의 운영을 두고 계약을 맺은 두 주체인 대구시와 운경재단 간의 협약서를 살펴보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지 않을까. <뉴스민>은 대구시와 운경재단이 체결한 2007년, 2012년 위수탁협약서를 살펴봤다.

대구시 관계자, “인사권은 병원 고유 권한”
협약서, “갑의 시정 조치에 을은 지체 없이 응하여야 한다”

현재 노조에서 가장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사안은 김 모 행정부원장에 대한 인사 조처다. 노조는 지금까지 이뤄진 노조 탄압과 불법적인 행위들이 모두 김 부원장이 병원에 오고 난 이후부터 이뤄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는 “협약을 맺은 이상 인사권은 재단의 권한”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이미 그 사안에 대해서 권고조치를 했지만 병원의 인사, 운영은 병원의 고유권한”이라고 밝혔다.

▲ 2007년 협약서 제18조(지도, 감독)과 2012년 협약서 제17조(지도, 감독) 조항은 똑같이 시의 강한 지도 감독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협약서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2007년 협약서 제18조(지도, 감독) 1항을 보면 “갑(대구 시장)은 관계공무원으로 하여금 대행업무와 병원운영에 관하여 지도, 감독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고 있으며 2항에서는 “갑은 시정하여야 할 사항이 있는 경우에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고 을(운경재단)은 지체 없이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2012년 협약서도 마찬가지다. 협약서 제17조(지도, 감독) 1항과 2항에 똑같은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협약서는 “을이 지체 없이 이에 응하여야 한다”는 강한 강제 조항으로 시가 운경재단을 지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을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구시 관계자는 협약서상 시가 강제할 수 있는 지도, 감독 조항에 대해 “이번 일이 있은 후 추가적으로 강력하게 보완한 사안”이라며 “병원 운영권은 재단에 있으니까 그걸 관여하는 건 권한 침해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수탁 협약, “특정감사 결과 큰 문제 없어”
협약 해지… “법적으로 문제가 복잡해진다”

지난 8월 대구시는 운경재단과 3차 위수탁 협약을 체결했다. 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많은 문제를 일으킨 운경재단과의 위수탁 협약을 강하게 반대해 왔지만 대구시는 5월 특정감사 실시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운경재단과 재협약을 체결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특정감사 결과 큰 문제는 없다고 판단되어 협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감사 결과는 재단에 대한 권고, 시정 조치의 법적 검토가 끝난 이후 공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행정자치부 ‘공공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법령’은 ‘감사 완료일로부터 30일 이내에 결과를 인터넷 공개’하게 되어 있지만 대구시는 지난 5월 18일 감사 완료 이후부터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협약 체결 당시 대구시는 “더 이상 협약을 미룰 수 없는 입장이라 논쟁되는 임금부분은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재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운경재단과 협약을 해지하는 일에 소극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지난 6월 보건정책과 관계자는 “수탁계약 기간이 올해로 10년이 되었고, 앞으로 4년이 남았다. 때문에 수탁업체를 강제로 바꾼다거나 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복잡해진다”며 협약해지에 난색을 보였다.

2007년, “갑은 협약 유지 어렵다 판단 시 협약 해지 가능, 을 이의 제기 불가”
2012년, “을에게 충분한 소명기회 부여”… 을의 권한 강화돼

하지만 협약서를 살펴보면 대구시의 소극적인 태도가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협약 해지에 대해 대구시에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2007년 협약서 제7조(협약의 해지) 2항은 “갑은 을이 다음 각 호에 해당하여 협약을 유지하기 어렵다 판단될 때 협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을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다.

뿐만아니라 3항은 “을은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협약이 해지되었을 때 계약 파기로 인한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의 반환 청구를 할 수 없다”고 까지 규정해 대구시장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대구시가 협약을 해지할 수 있는 2항 각호의 경우는 ▲조례 또는 규칙을 위반한 사실이 있을 때 ▲협약을 위반한 사실이 있는 때 ▲공익을 위하여 협약을 유지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할 때 ▲수탁자가 운영 능력이 없을 때 등 4가지다.

▲ 협약서를 살펴보면 2012년에 맺은 협약서는 협약 해지에 대해 을에게 소명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상한 점은 올해 재협약을 체결하면서 협약해지 조항에서 을의 입장이 조금 더 강화 되었다는 것이다. 올해 협약서 제7조(협약의 해지) 2항은 “갑은 협약을 유지하기 어렵다 판단될 때 협약을 해지할 수 있으며, 해지 시 갑은 을에게 충분한 소명기회를 주어야 한다”며 을에게 ‘소명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노조의 주장을 반영해 좀 더 강하게 협약서를 수정했다”는 대구시 관계자의 말과는 배치된다. 오히려 이전 협약까지는 ‘법적으로 복잡해질’ 여지가 크지 않았으나 이번 협약으로 ‘법적으로 복잡해질’ 여지가 커진 모양새가 된 것이다.

노조는 재단이 협약서 7조 2항 각호의 세 번째 ‘공익을 위하여 협약을 유지할 수 없는 사유가 발생할 때’에 해당하여 대구시가 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조에 대한 불법적인 탄압 행위와 13억원 상당에 최저임금 위반, 임금체불이 공익을 해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지난 5월 경북지노위는 운경재단에 대해 ‘부당징계 및 지배, 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일부 인정 판정을 내렸다. 이 또한 노조가 재단이 공익을 위해 한다고 주장하는 강한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대구시 관계자는 “문제는 노사갈등에 의한 것”이라며 “자체 운영상에 비리를 저질렀다거나 한 것은 없고, 최저임금, 임금체불 문제도 법정 계류 중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따라서 공익을 위해 했고, 협약을 위반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오늘(14일)로 시지노인병원은 파업 80일째를 맞았다. 노조는 병원의 최저임금위반, 조합원과 비조합원에 대한 임금 차등 지급, 부당노동행위, 불법해고, 노조탄압 등의 문제로 지난 6월 27일 파업을 시작해 매일 대구 시청 앞 집회를 진행해 왔다. 지난 12일에는 시청 앞에서 이상국 시지노인병원 지부장의 삭발식을 진행하며, 더욱 강하게 대구시에 사태해결을 촉구하다 14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