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이의 전단지 투쟁 일지 (1)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시즌2] (1)

17:42

[편집자 주] <둥글이의 유랑투쟁기>의 저자이자 전국을 유랑하며 환경운동을 벌여 온 둥글이 박성수. 그는 2015년 제작한 전단지를 제작, 배포한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죄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뉴스민>에 ‘둥글이의 유랑투쟁기 시즌2’ 연재를 시작한다. 첫 번째는 전단지 투쟁 일지인데,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3차례 나누어 싣는다.

2014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다. 국정원, 국방부 선거개입에 대해 보다 많은 사실이 밝혀졌고, 세월호 참사와 정부의 진실 은폐, 정윤회 염문설, 정윤회 비선 실세 논란과 청와대 개싸움 등 수많은 사건이 터져 나왔다. 이 때문에 하락한 국정지지도를 박근혜 정부는 공안정국을 조성해서 타계하려 했다.

가장 한심한 사건 중 하나가 평화콘서트를 하고 다니다가 일베로부터 폭발물 테러를 당했던 황선 씨. 검찰은 17년 전 일기장을 털어서 그 안에 ‘북한 찬양조항’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구속수사를 했던 사건이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어서 이 사건 소식을 들은 직후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기 시작했다. 내용은 12년 전 박근혜 의원도 북한에 가서 김정은을 직접 만나고 ‘김정은 장군은 믿을만한 파트너다’라고 고무찬양 의혹이 있으니 똑같이 수사하라는 내용이었다. 뒷면에는 언론 등에 떠돌던 내용을 정리해서 ‘정윤회 염문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냐?’는 내용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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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단지를 제작한 후 이 전단지의 다량 살포를 위해서 나는 절대비기 쌍수권을 완성하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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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로 인해 강호의 패권을 빼앗길 우려를 느낀 박근혜 정부는 경찰청에 이 사건 수사 지시를 내린다. 이후 압수수색에 대한 우려로 나는 상시 대비태세에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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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시민들은 전단지에 자신의 실명을 집어넣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전단지에 내 이름도 넣어 달라’는 주문이 끊임없이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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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들어진 전단지는 전국 각지 100여명의 시민들에게 발송되었고, 살포되었다. 물론 지구영웅 둥글이도 열심히 고향 군산에 전단지를 살포했다.

▲법원에 전단지 붙여 놓고 코딱지 파는 모습
▲법원에 전단지 붙여 놓고 코딱지 파는 모습

둥글이가 줄기차게 전단지를 뿌려대는 사건은 TV조선에서도 회자되었는데, 그 시덥지 않은 방송에서는 ‘대통령은 일반인과 달리 국민의 대표니 비판하면 안 된다’, ‘군산에서도 뿌려지는 전단지의 배후를 캐봐야 한다’는 따위의 얘기를 서슴없이 뿜어댔다고 한다. 그런데 내 배후는 다름 아닌 박정희 가카셨던 것을 그들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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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분의 사진을 늘 내 뒤(배후)에 걸어놓고 내 생존의 지침으로 삼아왔다. 자신의 동료들을 세 번이나 팔아먹고 배신으로 생을 일관하신 그분의 뱀 같은 생존력이 바로 혼돈스러운 내 삶에 한 줄기 빛이었고, 그분이야말로 내 삶의 배후였다.

하여간 뿌려지는 전단지는 많은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그만큼 박근혜 정부는 부담을 느꼈던 듯하다.

▲군산시내에 전단지를 받아들고 몰입해서 읽는 시민들의 모습
▲군산시내에 전단지를 받아들고 몰입해서 읽는 시민들의 모습

그런데 경찰이 2주간 내사를 진행한 끝인 1월 중순. 군산경찰서 간부 하나가 오더니 전단지 건에 대한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그간 조사해 봤더니 별거 없네요” 실질적으로 내사 종결되었다는 통보였다. 하여 나는 승리의 축배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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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이때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 대구의 저 ‘원수 같은 인간 둘’이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에 전단지를 살포함으로써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했고, 연쇄 작용으로 내가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대구의 변홍철 청도송전탑반대대책위 집행위원장에게 시국전단지를 발송했을 때부터 이정도 사건은 예상했어야 했다. 정의감에 들끓던 변홍철 위원장과 신동재 님은 새누리당 경북도당 앞에 전단지를 살포한 것이다.

1926705_713017392152603_8457869296008454545_n도당은 발칵 뒤집혔고, 검찰 주도로 본격 수사가 이뤄졌음을 이후에 알았다. 그즈음 원세훈 국정원장의 실형 선고가 이뤄졌고, 나는 거리에서 1인 시위를 하며 전단지를 살포하고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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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 국정원장 실형 소식은 더욱 가열차게 전단지를 살포해야 할 이유였다. 대통령직을 강탈해간 것이나 다름없다는 판결이 난 상황에서 저들의 공안탄압은 더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전국에서 전단지 주문이 쇄도했고, 전단지를 뽑아서 포장해서 발송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과였다.

고뇌

그러던 가운데 2월 말, 대구수성경찰서로부터 출석요구서가 왔다. 변홍철 위원장과 신동재 님이 뿌린 전단지를 내가 발송했고, 내가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을 저질렀으니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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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처구니없어서 개사료를 한 푸대 대구수성경찰서로 발송했다. 본격적인 개사료 투쟁의 시작이었다. 굳이 이렇게 개사료를 들고 나왔던 것은 이성과 합리를 내던지고 말도 안 되는 죄목을 만들어서 정권에 충성하는 수사기관에 인간적으로 대응할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하여간 개사료 발송 사건은 이런저런 포털 기사에 떴는데, 댓글로 달린 반응의 상당수는 ‘사료가 아깝다’는 내용이었다.

개사료를 받은 직후, 대구수성경찰서도 자신들의 법적용이 다소 무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이후 ‘명예훼손’으로 죄목을 변경해 출석을 요구했다. 나도 이즈음 경찰서 출석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혐의가 ‘잘생긴 죄’에 한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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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수성경찰서의 출석 요구서는 줄기차게 날아왔는데, 정월대보름(3월 5일)을 기해 쥐불놀이 재료를 제공해준 그들에게 뒤늦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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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3월 12일. 경찰은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은 나와 변홍철 위원장 댁, 배우자 오은지 대표가 운영하는 출판사를 압수수색했다. 전단지 뿌린다고 경찰 10여 명이 밀려와서 압수수색을 하다니 이게 도대체 현실에서 빚어질 법한 사건인가? 나는 영화에나 등장할법한 사건의 중심에 선 것이 너무 즐거워서 압수수색 당시 기념 셀카를 찍어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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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당국의 압수수색을 조롱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변홍철 위원장과 다른 종류의 전단지 살포를 하다가 압수수색을 당했던 부산 윤철면 님도 자신만의 ‘어이없음’을 셀카로 찍어 남겼다.

장난-판

압수수색 직후, 전국 각지에서 시민들이 전단지를 뿌리면서 인증샷을 올렸다. 압수수색이 국민들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한 것이다.

▲광주 시민들이 집단으로 전단지 살포 작업 후 인증샷을 찍음
▲광주 시민들이 집단으로 전단지 살포 작업 후 인증샷을 찍음

어쨌든 압수수색을 통해서 전단지, 전단지 주문 목록, 노트북 전단지 제작 파일에 핸드폰 까지 털렸는데, 시국전단지 뿌렸다고 압수수색까지 하는 행태가 한심해서 압수수색을 허락한 군산법원 앞에 가서 살풀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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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법당국의 횡포에 아랑곳 않고 시국전단지 [압수수색 특별판]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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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당국의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이러한 저돌적인 추진력에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궁금해하곤 하는데, 이는 끊임없는 독서를 통한 인격 수양의 결과라고 보면 틀림없다. 저 세기의 명저 <둥글이의 유랑투쟁기>는 (내가 쓴 책이기는 하지만) 내 인격을 고양시키는데 큰 자극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ㅠ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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