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 또 다른 노란 리본의 의미, 바르셀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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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여러 나라 중 한국과 참 닮은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스페인입니다.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 사이에 툭 튀어나와 있는 이베리아 반도에 위치한 국가입니다. 이 나라는 군부독재가 20세기를 지배했고, 1차 세계대전의 혼란 속에 독재자 프랑코가 독일을 등에 업고 자국민을 하루아침에 수백 명 학살하기도 했던 나라입니다. 부끄러운 과거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며, 침묵하자고 ‘망각법’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지역감정도 어마어마합니다. 수도인 마드리드가 있고, 새 머리마냥 생긴 스페인 지도에서 동쪽 끝 프랑스와 만나는 곳에 바르셀로나를 주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이 있습니다. 진보적이고 좌파성향이 강한 이 지역은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여타 지역과는 굉장히 오랜 분쟁이 있어왔습니다.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레알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친숙할 것입니다. 거기다 더해, 이 두 팀의 경기가 시작되면, 거의 한일전을 방불케 합니다.

▲’광장을 점령한 텐트’ 숙소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의 첫 모습은 혼돈이었습니다. (사진=영남중 최건희)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기 직전인 2019년 늦은 가을,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바르셀로나로 향했습니다. 피카소와 가우디를 만나고 파리로 넘어가는 일정이었습니다. 늦은 밤 도착한 바르셀로나 엘프라트(Aeropuerto Josep Tarradellas Barcelona-El Prat) 국제공항에서 람블라스 거리(La Rambla)에 있는 숙소로 들어가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의 첫 모습은 혼돈이었습니다. 경찰차가 줄지어 서 있고, 늦은 밤이었음에도 거리에는 피켓을 든 시위대가 머물러 있었고 간혹 화염병 같은 것들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버스는 예정된 노선을 벗어나 우회하느라 도착이 30분 정도 더 지연되기도 했습니다.

밤이 걷히고, 바르셀로나의 아침에 가장 먼저 우리와 마주한 것은 노란 리본이었습니다. 한국과 아무리 닮아 있는 스페인이라고 하더라도 노란 리본이 집집마다 혹은 거리마다 걸려 있는 모습은 반갑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했습니다. 당장이라도 길을 가는 누군가를 붙들고 ‘저 노란 리본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가이드도 없는 여행에 언어조차 통하지 않으니 답답하더군요. 결국 호텔에서 만난 친절한 직원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 노란 리본의 정체가 뭐예요?”
“왜 궁금하세요? 카탈루냐에 관심이 많으세요?”
“아니요. 전 한국에서 왔는데 한국도 노란 리본을 달고 다녀요. 많은 아이들이 안타까운 배 사고로 죽었는데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의미예요”라며 아들의 가방에 달려 있는 노란 리본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직원은 설명하기 좀 복잡하다는 표정이었지만 천천히 노란 리본과 카탈루냐의 역사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바르셀로나 곳곳에 걸린 노란리본’ 노란리본의 정체는 뭐예요? (사진=영남중 최건희)

아주 오래전, 지금의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은 아라곤 왕국으로 불리었는데,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하는 카스티야 왕국과 결혼을 통해 연합왕국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18세기 무렵 아라곤 왕국은 전쟁에서 패배하고 카스티야 왕국에 흡수 통합되어버리죠. 이때부터 끊임없이 카탈루냐는 독립을 위한 저항을 해왔고, 카스티야는 이를 탄압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 지붕 두 나라’가 된 상황이라고 합니다.

수도인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알고 있는 스페인 문화와 뭔가 다른 점이 보인다면 그것은 바로 카탈루냐 지방의 문화와 관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스페인어가 아닌 카탈루냐어를 사용하고, 스페인 사람이 아닌 카탈루냐 사람이라고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오랜 반목의 사이사이에 자치권을 얻기도 했지만, 스페인 정부는 계속 카탈루냐 지역을 종속하려고 하니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하물며 2014년과 2017년에는 카탈루냐 지역에서 국민투표를 진행해서 90%가 넘는 찬성을 얻어 자체적으로 독립을 선포해버린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물론 스페인 정부가 이를 허용할 리 없지만 말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바르셀로나에서 걷히는 막대한 세금이 스페인 정부의 재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 입니다.

이 무렵에는 스페인 정부가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을 주장하는 정치인과 운동가 9명을 선동 및 공금자금 남용 혐의로 10년 내외의 형을 선고하기도 했습니다. 어젯밤 마주한 시위대도 이에 대한 저항이라고 했습니다. 2019년 늦은 가을 그들에 대한 재판이 다시 열리고, 그들의 형이 감경되어 집으로 돌아오길 바라던 카탈루냐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형은 여전히 유효했고 분리독립의 길은 더 멀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독립의 의지를 담은 노란 리본을 그렇게 걸어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노란 리본의 의미를 함께 한다는 것에서 나오는 나름의 감동이 있어 이 소식을 SNS에 올려 그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과 함께 노란 리본 사진을 게시했더니 스페인의 역사를 잘 알고 있는 한 지인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카탈루냐의 독립 요구를 순수하게만 볼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이야기인즉슨 그들의 분리독립 요구는 여러 면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데, 우선 단일민족,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독립을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 봐야 하고, 민족을 이야기하면서 같은 민족이지만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발렌시아 지방은 독립의 주체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점 등이 불편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심각한 지역이기주의가 아니겠냐고 말입니다. 그들의 노란 리본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정치인들 역시 스페인의 다른 지역에서 바라보면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선거와 정책을 여럿 시행했던 사람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순수하게 카탈루냐 독립을 외치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을 지지하기만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독립 투쟁과 과정 속에 희생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바르셀로나의 한 면만 보고, 세월호의 아픔에 공감하는 부모로서 노란 리본을 바라보면서 한 면만 보고 그 상황을 판단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사회도 한 청년의 죽음에 관한 정책 현안과 정치인들의 판단까지 아주 다양한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각자의 주장은 서로가 정당하다 믿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가 정당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일들이 과연 역사에서 얼마나 정당하고, 정의로울지 바르셀로나의 노란 리본을 상기하면 고민이 깊어집니다.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

[인권 돋보기로 보는 도시]는 비정기적으로 뉴스민에 칼럼 <인권 돋보기>를 기고한 박민경 비정기 뉴스민 칼럼니스트가 시도하는 정기 기고다, 인권의 관점에서 그가 방문했던 여러 도시를 톺아보는 이야기를 격주 금요일에 전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