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백기완 선생 영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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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백기완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 3천여 명의 시민들이 함께했다. 시청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라며 민중의 노래를 목소리 높여 불렀다.

19일 오전 11시 30분경 서울시청 광장에서 진행된 영결식에는 문정현 신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명진 스님 등이 참여해 고 백기완 선생을 추모했다. 유족은 고 백기완 선생의 동생인 백인순 씨와 딸인 백원담 교수 등이 함께했다. 앞서 같은 날 오전 8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운구행렬은 통일문제연구소와 대학로 소나무길에서 노제를 진행했고 영결식 장소까지 행진했다.

문정현 신부는 이제는 옆자리에 없을 고 백기완 선생을 그리워하며 연신 고맙다고 했다. 문정현 신부는 “백 선생님 앉아계신 곳에 다가가 인사드리면 꼭 당신 옆에 앉히셨습니다. 백 선생님 옆자리가 제 자리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아마도 유신 말기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항상 반겨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고인은 “섬세하고 눈물이 많으신 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선생님을 선봉자로 모셨습니다. 고맙습니다. 흰 두루마기를 입고 백발을 휘날리며 포효하시며 광장을 지키셨습니다. 선생님, 한반도 민중의 광장 한복판에 남아 있을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전했다.

김미숙 김용균 재단 이사장은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고 백기완 선생을 떠올렸다. 김미숙 이사장은 “아들과 같이 서울대병원으로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을 때였습니다. 사회원로들과 함께 백 선생님께서 걸음걸이도 힘든 상태라 양쪽 부축을 받으며 겨우겨우 빈소 안으로 들어오시고 손자뻘 되는 용균이에게 큰절로 두 번 절하는 모습을 보고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원통함과 복받치는 설움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살아있으면 그 어른에게 큰절을 해야 옳거늘, 세상이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되고 있음을 백 선생님은 몸소 표현해주셨고, 바라보고 있던 저로서는 심한 충격이라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 그때 하셨던 행동이 그동안의 사회에 대한 울분이 제가 느꼈던 울분과 맞닿아 있음을 봤던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어느 누가 우리에게 그렇게 큰 어른 역할을 해 줄 수 있을지요? 투쟁 현장에서는 늘 힘들고 지치기 마련인데 그럴 때 기댈 수 있는 백 선생님처럼 큰 나무가 필요한데 말입니다”라며 고인을 그리워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선생님께서 생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과 ‘김진숙 복직’의 간절함을 실행에 옮기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삶과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 노동자와 민중의 삶을 위한 투쟁의 맨 앞자리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임을 명심하겠습니다. 민주노총은 선생님께서 앞서 그러셨던 것처럼 어떤 탄압도 두려워하지 않고 투쟁의 맨 앞자리에 서겠습니다”라며 ‘아리아리’ 외치며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리아리’는 고 백기완 선생이 ‘화이팅’ 대신 쓰자고 제안한 우리말이다.

“잘잘”

고 백기완 선생의 딸인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는 어머니인 김정숙 여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그러면서 “아버님이 투병 생활하는 동안 어머니와 영상통화를 하면 하루에 노래를 20곡씩 불러줬다. 아버지는 매일 밤 ‘엄마가 섬 그늘에’ 노래를 들어야 잠이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에도 7곡을 불러줬다. 저희 부모님은 긴급조치 1호로 투옥됐을 때도 매일매일 편지를 나눴다고 한다”라며 “어젯밤에는 어머님이 아버지가 불러주던 노래가 그립다고 했다. 그런데 그 노래는 둘만 안다. 1절은 아버지, 2절은 어머니가 알고 있다. 어머니가 같이 불러야 하는데 그 노래를 다시 부를 수 없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썼다”고 설명했다.

백기완 선생님
‘봄이 지나가기 전, 불러보세 우리의 봄 노래’ 하는 노래 가사를 물어보려 했는데 이제 물어볼 수도 없으니 우리 이다음에 다시 만나면 꼭 같이 불러요. 물어볼 것이 있으면 언제나 기억하고 있던 우리 남편 같은 사람을 만나서 나는 행복했어요. 멋진 목도리를 휘날리면서 바위고개 그 언덕 위에서 꼭 기다리세요. 잘 잘! 우리 신랑 백기완 씨

2021년 2월 18일 김정숙

‘잘잘’은 고 백기완 선생이 만든 줄임말로 “잘 있어요. 잘 가요”라는 뜻이다. 고 백기완 선생 동생 백인순 씨는 “오라버니가 가시는 곳은 항상 제가 가는 길이니 이곳에서 제 온 힘을 다해 오라버니의 큰 뜻인 노나메기 벗나래를 만들기 위해 늙은 발길이지만 허우적허우적 뒤따라가겠습니다”고 말했다. 조사가 이어진 후 민중가수들이 민중의 노래를 합창했고, 추모객들은 헌화했다. 영결식 이후 마석 모란공원에서는 하관식이 이뤄진다.

기사제휴=은혜진 참세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