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중중중복 발달장애 자매 자립지원 방치로 동생 실종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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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매에 대한 민원이 제기된다는 이유로 포항시가 자매 중 언니를 장애인거주시설에 재입소 결정하자, 장애인권단체들의 반대로 4일 만에 시설입소가 중단됐다. 그러나 자매에 대한 자립지원 방치로 인해 최근 동생이 실종 후 발견되는 사건이 확인되면서 장애인권단체들이 포항시에 책임 있는 자립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발달장애인자립생활권리쟁취단(아래 발자취)은 10일 오후 1시 포항시청 앞에서 ‘포항시 발달장애인 자립생활권리쟁취 기자회견’을 열고, 자립생활을 시작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긴급 지원을 촉구했다.

▲발자취는 10일 오후 1시 포항시청 앞에서 ‘포항시 발달장애인 자립생활권리쟁취 기자회견’을 열고, 자립생활을 시작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긴급 지원을 촉구했다. (사진=발자취 제공)

탈시설한 발달장애인 언니, 이웃의 소음 민원에 시설 재입소 될 뻔

포항에 사는 김 아무개 씨는 시각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으로, 과거 시설에서 성폭행 등의 학대를 당해 2년 전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었다. 김 씨와 함께 살던 어머니도 지적장애가 있으며, 동생 또한 지적장애와 청각장애, 그리고 지체장애가 있는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이다. 그러나 세 모녀에 대한 이웃의 학대로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가 접수되자, 자매는 경북 영주에 위치한 장애인 학대피해 쉼터로,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쉼터에서 나와 다세대연립주택에서 함께 살던 자매끼리 다투는 소음이 심하다는 이웃 주민의 민원이 제기됐다. 자매가 사는 집은 수도세를 이웃주민과 공동으로 내고 있어, 자매가 입주한 뒤 수도세가 많이 청구된다는 내용의 민원도 나왔다. 이에 포항시는 ‘포항시 희망복지지원단’ 사례회의를 열고, ‘가족과의 불화’와 ‘일상생활의 어려움’을 들어 김 씨의 시설입소를 결정해버렸다. 이 자리에서 김 씨의 공공후견인인 서 아무개 씨는 시설 재입소를 강력히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 씨는 다수의 장애인거주시설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의 대표이자 거주시설의 시설장이다.

이에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포항IL센터)를 비롯한 장애인권단체들은 지난 2월 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포항시를 규탄했다. 이후 한국장애인개발원과 경북발달장애인지원센터와의 면담을 통해 보건복지부에 후견인 교체 및 장애인시설 관계자를 후견인으로 지정하는 것을 금지할 것과, 생애주기별 맞춤형자립생활지원 등을 요구했다. 그 결과, 다행히 김 씨의 시설입소는 4일 만에 중단되었으며, 포항시는 공공후견인 교체를 진행하고 있다.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야간 활동지원 없어 분리조치 되자마자 실종

그러나 포항시가 활동지원을 비롯해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위한 제도적 지원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최근 김 씨의 동생이 실종되는 일이 발생했다.

현재 자매는 포항지역 발달장애인 중 최대치인 월 150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를 각각 이용하고 있다. 하루 약 4시간의 활동지원을 이용할 수 있어, 두 명의 활동지원사가 교대로 자매를 동시에 지원하는 방법으로 남은 공백시간을 메꿔가며 살아가고 있다. 이에 대해 발자취는 “중개기관은 활동지원사의 두 배의 과중 노동과 노동착취의 불법적인 행태를 묵인했다”면서 “당사자들도 온전한 개인별 자립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다. 활동지원사 퇴근 후 야간시간의 지원이 끊겨버리는 방치된 일상을 버티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던 중 이웃의 민원이 계속되자, 경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경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 그리고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중개기관인 경북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포항시지부 세 기관이 모여 자매와 대화를 나눈 뒤, 분리를 원하는 동생의 의사표현을 확인하고 지난 4월 22일 자매를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언니와 분리 조치된 동생은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야간시간에 혼자 집 밖에 나왔으며, 다음 날 오전 출근한 활동지원사가 실종사실을 알게 되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다행히 김 씨의 동생은 밤늦게 지나가던 주민의 도움으로 지인의 집에서 잠을 잤던 것으로 밝혀졌다. 다음날 동생은 곧바로 언니인 김 씨와 함께 살고 싶다고 표현해 분리조치는 하루 만에 끝났다.

발자취는 “자매의 분리조치는 그동안 자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던 단체들과 포항시조차 모르고 있던 조치였다”라며 “당사자가 분리를 원한다고 표현해도 혼자 살아가는 과정에 필요한 교육과 자립지원의 공백이 생기지 않는 상황에서 체계적인 분리조치가 이뤄졌어야 했다”라고 지적했다.

“포항시, 발달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교육 지원해야”

전국의 장애인거주시설에 살고 있는 약 3만 명의 거주인 중 80% 이상이 발달장애인인 이유는 자매의 사례처럼 지역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데서 비롯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포항시를 담당하는 경북발달장애인지원센터는 포항시에서 차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안동에 있어 신속한 자립생활지원도 어렵다.

이에 대해 발자취는 “하루 4시간의 활동지원서비스는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조건이며 (이러한 부족한 복지지원이) 무언의 시설입소를 부추기고 있다”라며 “자매의 사례는 발달장애인이 포항시민으로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포항시가 지원할 의지가 없으며, 발달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에 대한 무지함을 여실히 드러낸다”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발자취는 포항시에 △자매에 대한 24시간 활동지원 △김 씨의 동생에 대한 수어교육 △포항시 발달장애인자립생활지원 전문기관 구축 △발달장애인자립생활 지원조례제정 △이강덕 포항시장 면담 등을 요구했다. 한편, 기자회견이 끝난 뒤 포항시 노인장애인복지과는 면담에서 자매에 대한 활동지원 24시간을 고려해보고, 12일 열리는 사례회의에서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기사제휴=이가연 비마이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