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차헌호 아사히글라스사내하청노조 위원장

구미공단 첫 비정규직노조 "우리도 노조 할 수 있다"

21:15

지난 5월 29일 구미4공단에 입주한 화학섬유업체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전체 직원 1천 100여 명 가운데 지티에스, 건호, 우영 등 3개의 사내하청업체 직원은 326명이다. 구미공단은 많은 제조업 공장이 가동되고 있고, 사내하청 노동자도 많다. 하지만 지금까지 노조가 결성된 적은 없었다. “법적으로 보장된 노조 결성과 활동을 하지 못한 구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발판이 되고 싶다”는 차헌호(43) 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 위원장을 만났다.

구미공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왜 노조가 없을까. 노조를 만들기 싫어서도 아니고, 노조를 만들 필요가 없어서도 아니다. 정규직노조도 하나둘 사라지고 있는 터라 결성 자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아사히글라스에는 정규직 노조도 없다.

4월 13일 하청업체인 지티에스 오 모 이사가 주간에만 일하는 보통조 16명을 불러 권고사직을 요구했다. 정규직이 일하던 공정이 중단되면서 넘어오게 됐다는 이유였다. 5월 20일까지 인수인계 후 사직을 요구했고, 사직하지 않으면 정리해고하겠다고 압박했다.

▲차헌호 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 위원장

“4명이 그 자리에서 권고사직을 받아들였고, 12명은 거부했어요. 정리해고 요건도 아니잖아요. 그날 저녁 12명이 노무사를 찾아가 물었어요. 정리해고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어요. 협박용이었죠”

다음날부터 오 모 이사는 권고사직을 거부한 노동자를 한 명씩 불러 회유를 시작했다. 전날까지 사직하면 준다던 위로금은 100%였는데, 200%로 늘어났다. 또, 위로금 대신 다른 회사로 이직할 수 있도록 자리를 알아봐 줄 수도 있다고 했다. 12명은 이를 모두 거부했다.

“웃기잖아요. 그동안 이런 식으로 잘라내는 걸 자주 봤어요. 교대근무조에서 많을 때는 20명이 권고사직을 받고 그만두기도 했어요. 우리는 1년짜리 계약서를 매년 다시 쓰는데,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가 계약기간이었어요”

끝까지 권고사직을 거부하자 지티에스 사장이 만나자고 제안해왔다. 사장은 정리해고 이야기는 오 모 이사가 개별적으로 진행한 일이라며 사과했다. 그렇지만 업무는 옮겨갈 수밖에 없다며 5월 21일부터 교대근무조로 전환배치를 약속했다. 사장이 약속한 자리는 상시로 인력을 모집할 만큼 아사히글라스 내에서 모두 꺼리는 공정이었다. 이 때문에 12명 가운데 7명은 위로금 200%를 받고 퇴사했고, 1명은 위로금 대신 이직을 받아들였다.

“남은 4명은 5월 21일부터 교대근무조에서 일하기로 사장과 구두합의를 했어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나가봐야 다른 일자리 구하는 것도 어려워 받아들였죠. 그런데 5월 19일 저와 백은호 씨를 아사히글라스가 아닌 다른 공장으로 인사발령했어요. 9년 동안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업체가 다른 공장으로 인사이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 사업장에 가보니 지금 업무와 전혀 관련 없는 작은 납땜공장이었어요. 지티에스가 파견하던 업체도 아니었죠”

의아했다. 사장과 구두 약속한 공정은 현재도 교대근무조를 모집하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 다른 공장으로 인사 발령을 낸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 위원장과 백은호 씨는 부당인사발령으로 판단했고, 노동청에 진정을 넣었다. 그리고 5월 21일부터 아사히글라스 공장으로 출근했지만, 정문에서 진입 자체가 막혔다. 이때가 시발점이었다. 정리해고 압박을 함께 이겨낸 4명은 노동조합을 만들기로 했다. 교대근무조 노동자들과 만나보니 권고사직은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고, 이들도 임금과 노동환경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차헌호 위원장도 2009년 입사해 6년째 일했지만, 임금은 늘 최저임금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노동강도는 강화됐다. 예전에는 3분에 유리 1장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40초에 1장을 만들어야 한다. 물량은 계속 많아지는데 인원은 계속 줄었다.

▲회사는 차헌호 위원장과 백은호 조합원을 아사히글라스가 아닌 다른 곳으로 발령조치했다.

“노조가 아니면 바꿀 수 없겠다고 생각했어요. 4명이 노조를 하기로 마음먹고, 3교대 사람들을 만나 제안했죠. ‘원청에도 노조가 없는데 하청이 노조 만들어서 될까’, ‘노조 만들었다가 하청 전체가 계약 해지되면 어떻게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쉽지는 않았죠. 인수인계하는 동안 3교대 사람들을 계속 만났어요. 7시 퇴근조는 국밥집에서 만나고, 오후 3시 퇴근조는 중국집에서 만나고. 처음 3명을 만나면, 다음에 10명을 데리고 오는 거죠. 그래서 40명이 됐고, 며칠 만에 90명이 됐고, 지금 140명이 된 거죠”

“노동조합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3교대근무, 주말2교대근무를 해도 월급은 상여금을 포함해 220만 원. 9년째 일하고 있어도 매년 근로계약서를 다시 썼고, 근로계약서에도 없는 권고사직을 받아들이고 떠나는 동료를 봐왔던 이들은 노조를 결성한다. 사내하청 노동자 300여 명 가운데 140명이 조합원이 됐다.

5월 29일 설립신고를 하고, 6월 1일 회사에 교섭을 요청했다. 교섭창구단일화 과정을 거쳐 15일부터 교섭 날짜를 잡았다. 이 가운데 회사가 노무사를 고용해 조합원 대상 노동쟁의 교육을 공지했다. 지금까지 노동쟁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회사가 노무사를 고용해 8일 조합원을 대상으로 노동쟁의 관련 교육을 공지했어요. 회사도 예상 못한 일이었겠죠. 비상회의를 했다는 소문도 들었어요. 반장과 조장을 불렀죠. 조합원들은 자료를 확인하고 항의했어요. 자료를 보니 노조 활동과 파업을 하면 손배가압류 등을 당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죠”

▲회사가 진행하려던 노동쟁의 관련 교육 자료 일부.

노조는 공문을 통해 “조합원 교육은 노조에서 하면 된다. 사용자는 관리자 교육만 하면 된다. 노조원을 대상으로 사용자가 진행할 교육을 진행하면 부당노동행위”라고 항의했다. 노조는 15일 첫 단체교섭에서 시급 8천원, 여름휴가 보장, 호봉제 도입, 근속수당 인정 등을 요구안을 냈다. 앞으로 쉽지 않겠지만, 조합원들은 기왕 시작한 활동을 열심히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설립으로부터 보름이 지난 시점까지 매일 교대근무조 출퇴근 시간마다 공장 앞에서 노동 조건 개선을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노조 활동을 하면서 동료들과도 더 가까워졌다.

“야간근무 마치고 나오는 조합원들 얼굴을 보면 밝다. 자신감을 찾고 당당해졌다. 최근 조합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예전 같으면 같은 조 근무자들도 경조사를 잘 안 챙겼다. 그런데 노조 만들어지고 나서 다른 조 사람들도 조문을 다녀왔다. 예전에 없던 모습을 보면서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노동조합을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회사가 주도하는 복수노조 설립 등 회유는 없을까. 차헌호 위원장은 “현장에 불만이 많아서 당장은 쉽지 않을 거다. 그렇지만,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행인 것은 응원의 목소리가 컸다는 점이다. 현재는 하청업체 3개 가운데 하나인 지티에스에만 조합원이 있지만, 다른 업체 소속 노동자들도 가입 상담 요청이 들어오고 있단다. 한 업체 관리자가 ‘노조하면 다 자른다’는 이야기를 한 게 역효과를 냈다. 교대근무조를 만나기 위해 공장으로 향하는 차헌호 위원장이 바람을 전했다.

“다른 업체 노동자들로부터 고맙다,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았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아사히글라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가 가입 대상이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음에도 노조가 없던 구미다. 노조를 통해서 권리를 찾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사진=아사히사내하청노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