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지나치다 싶은데 사실 그게 현실, <박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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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화영(김가희)은 가출청소년이다. 엄마에게 버림받은 뒤 낡은 주택에서 산다. 화영의 집은 가출한 또래 아이들의 아지트다. 가출팸의 리더 영재(이재균)부터 단짝 미정(강민아), 한 살 어린 가출청소년 세진(이유미)도 화영의 집에 머무르며 담배를 피우고 술도 마신다. 가출팸 아이들은 화영을 ‘엄마’라고 부른다. 화영은 라면을 끓여 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못 이긴 척 정성껏 끓인 라면을 건네준다. 그럴 때마다 화영의 입에 붙은 말.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미정은 연예인 지망생이다. 그는 연예인 기획사에서의 모습과 가출팸과 어울릴 때는 딴판이다. 남자친구는 또래의 우두머리 영재다. 그는 무서운 존재다. 가출팸 아이들에게 늘 폭력을 휘두른다. 미정이 영재와 사귀는 이유는 가출팸에서 우월한 지위를 얻을 수 있어서다. 미정은 영재가 연예인 기획사에 찾아올 때마다 창피하다. 그런 미정은 화영에게 “엄마”라며 기대지만, 영재는 화영을 탐탁지 않게 여기며 집요하게 괴롭힌다.

어느 날, 화영은 영재와 세진의 사이가 묘한 것을 눈치챈다. 미정의 편에 서서 세진을 위협했다가, 영재에게 폭행을 당한다. 화영은 분한 마음에 세진에게 폭력을 휘둘렀다가 가출팸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 끝내 영재에게 잡힌 화영과 미정은 가출팸에 린치를 당한다. 그 후 가출팸에 외면당하자, 미정은 영재를 유인할 성매매 작전을 실행하고 일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영화에서 화영은 애정을 갈구한다. 버림받아 생긴 결핍 때문인지 가출팸의 엄마가 되어 아이들에게 모성을 베푼다. 라면을 끓이고 담뱃재를 치우고 빨래도 해준다. 그때마다 호탕하게 웃으며 하는 말.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갈수록 그 말에는 고독이 서린다. 가출팸에 애정을 베푸는 화영은 또래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위악을 떤다. 교무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배를 피우고, 교사에게 욕설을 내뱉는다. 친엄마에게는 돈을 부쳐주지 않는다고 집으로 찾아가 난동을 부린다. 이를 말리러 출동한 경찰을 협박하기도 한다.

무서울 게 없어 보이는 화영이 가출팸에 집착 수준의 모성을 보이는 이유는 외로워서다. 하지만 가출팸을 지배하는 건 폭력과 착취, 뒤틀린 질서다. 서로 속박하고 갉아먹는 관계에서 화영은 또 다시 말한다. “니들은 나 없으면 어쩔 뻔 봤냐!” 화영이 엄마처럼 굴면 아이들은 더욱 화영을 괴롭힌다. 힘센 영재는 화영이 무릎 꿇게 만들고 권력을 쥔 미정과 세진은 영재를 통해 화영을 짓밟는다. 억울하지만 도리어 화영은 “미안해”라고 사과해야 한다.

이런 관계는 화영과 미정 사이에서 극단으로 치닫는다. 화영은 죄를 대신 뒤집어쓸 정도로 미정을 아낀다. 미정은 화영을 이용하기만 한다. 죄를 덮어쓴 이후 화영은 오랫동안 미정을 만나지 못한다. 성인이 되어 음식점 서빙을 하는 화영은 미정에게 오랜만에 연락한다. 우물쭈물 거리면서 미정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오길 기대한다. 하지만 미정은 화영의 이름을 부른다.

<박화영(2018년)>은 이환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 데뷔작이다. 99분 동안 괴롭고 불편한 장면과 대사가 쉴 새 없이 나오는 탓에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싶다. 지나치다 싶은데 사실 그게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사회적이면서도 반사회적인 현실을 가출청소년을 통해 선명하게 그려서다. 아쉬운 점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편집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몇몇 장면은 뜻하는 바가 뭔지 모르는 수준이다. 그래도 영화는 매력적이다.

이환 감독은 흥행 공식으로 도배된 클리셰로 추락하는 영화계의 기대주다. 어른들의 시선으로 그려진 청소년의 모습을 <박화영>과 <어른들은 몰라요>로 화끈하게 깨부쉈다. 이를 통해 가출청소년을 향한 사회의 관심을 다시 환기시켰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