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더 하이츠>는 뮤지컬 팬들에게는 익숙하다. 2015년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 계열사인 SM C&C가 두 번째로 제작한 뮤지컬로 주목받았다. 배우 겸 힙합 가수 양동근, 뮤지컬 배우 정원영과 함께 인피니트 장동우, 샤이니 키, 블락비 김유권이 무대에 올랐다.
원작은 영화배우이자 음악감독인 린-마누엘 미란다가 19살에 대본을 쓰고 작사, 작곡했다.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대학 극단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후 2008년 직접 주연을 맡은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막을 올렸다. 미국의 연극 및 뮤지컬계 최고의 상인 토니상 최고 뮤지컬상, 음악상, 안무상 등 4개 부문에 수상했다. 2016년에는 그가 대본을 쓰고 작곡하고 주연을 연기한 <해밀턴>이 최우수 작품상, 남우주연상, 최우수 극본상, 최우수 음악상, 최우수 연출상 등 11개를 휩쓸었다. 미란다는 작곡상과 대본상을 받았다.
<해밀턴>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1757~1804)을 중심으로 건국 초기의 역사를 다뤘다. 해밀턴은 카리브해 섬에서 사생아로 태어나 미국에 건너온 뒤 조지 워싱턴의 측근이 돼 재무부 장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의 토대를 마련한 그의 얼굴은 10달러 지폐에도 그려져 있다. <해밀턴>은 최근 브로드웨이에서 최고의 인기작이다. 건국에 기여한 역사 속 인물이 주제이지만, 랩, 힙합과 화려한 안무 덕분에 지루하지 않다. 특히 푸에르토리코 이민자 부모를 둔 미란다는 이 작품에 라틴계와 흑인 배우들만 캐스팅해 백인 중심의 미국 역사 인식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인 더 하이츠>가 브로드웨이 뮤지컬 초연 13년 만에 영화로 개봉했다.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평론가 신선도 지수 96%, 관객 평을 담은 팝콘 지수 95%를 기록하고 있다. <인 더 하이츠>의 배경은 미국 뉴욕 맨해튼 북서부에 있는 워싱턴 하이츠다. 이곳은 도미니카, 칠레, 쿠바, 푸에르토리코 등 중남미계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지역민 대부분이 가난한 탓에 라틴 할렘으로 불린다.
청년 우스나비(안소니 라모스)는 워싱턴 하이츠에서 작은 상점을 운영하며 고향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돌아갈 꿈에 부풀어 있다. 우스나비가 좋아하는 미용사 바네사(멜리사 바레사)는 패션디자이너가 돼 워싱턴 하이츠를 떠나는 게 유일한 목표지만 현실의 벽에 갇혀 있다. 니나(레슬리 그레이스)는 명문 스탠퍼드대에 입학한 수재지만, 인종차별과 비싼 학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낙망한다.
니나의 연인 베니(코리 호킨스)는 니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적자투성이 택시회사에서 일한다. 성실하게 일하지만 미래가 밝지는 않다. 우스나비의 상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소니(그레고리 디아스 4세)는 불법이민자의 아들이다. 그는 또래처럼 학교에 갈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한다. 이민자 할머니 클라우디아(올가 메레디즈)는 워싱턴 하이츠의 정신적 지주로, 지역민들을 보듬는다.
우울한 나날을 보내는 워싱턴 하이츠 사람들에게 희보가 날아든다. 우스나비의 상점에서 복권을 구입한 누군가가 당첨됐다는 소식이다. 워싱턴 하이츠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지만 당첨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더위가 이어지던 어느 날, 워싱턴 하이츠에서 파티가 열린다. 파티의 절정에 정전 사태가 터지고 누군가 목숨을 잃는다. 이민자 공동체는 낙심하고 꿈과 사랑 어느 하나에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갈팡질팡한다.
영화는 러닝타임 142분 동안 지루할 틈이 없다. 시종일관 랩과 뒤섞인 라틴풍의 음악이 귀에 감긴다. 워싱턴 하이츠 거리와 수영장에서 이어지는 군무 신과 빌딩 벽을 거꾸로 걸어가는 연인의 듀엣 연출은 감성을 자극한다. 바네사가 클럽에서 도미니카공화국 전통 음악인 바차타에 맞춰 선보이는 현란한 춤사위도 시선을 끈다. 클라우디아가 이민 온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지하철 안에서 노래하는 장면은 클라이막스다. 이외에도 청소부가 길거리에 호스로 물을 뿌리는 소리, 상점에서 물건에 가격표를 붙이는 소리가 음악에 녹아든 점도 만족스럽다. 다양한 각도에서 시각과 청각을 두루 챙긴 연출력이 돋보인다. 영화는 경쾌하면서도 묵직하다. 미란다는 빙수 노점상으로 등장해 감초 역할을 한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