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우주로 나간 대하사극 ‘듄’ 이 그린 인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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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Dune)>은 미국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가 20년 동안 6부작으로 집필한 대하 SF 고전이다. 소설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SF’, ‘독자들이 뽑은 역대 최고의 SF’ 등의 수식어를 갖고 있다. <듄>은 우주를 배경으로 황제와 귀족 가문, 원주민이 등장하고 거대 우주선이 행성 간 여행하는 탓에 <스타워즈>와 비슷할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전혀 다르다. <듄>에서는 우주선의 공중전이나 신무기를 든 기사들 간 전투는 볼 수 없다.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귀족 가문의 비열한 음모, 제국과 식민지의 갈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스타워즈>에서 인기를 끈 인공지능(AI)이나 로봇도 나오지 않는다.

<듄>의 영화화는 유독 난항을 겪었다. <스타워즈>가 영화로 제작된 1977년보다 3년 이른 1974년 추진됐다가 무산됐다. 컬트영화 거장 알렉산드로 조도로프스키 감독은 배우 오슨 웰스, 화가 살바도르 달리, 에일리언을 창조한 시각디자이너 H.R 기거, 영국의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 등 호화 제작진이 작업에 매달렸는데 실패한 것이다.

그 후 리들리 스콧 감독이 <듄>의 연출을 맡았다가 사임하는 바람에 표류됐다. <듄>이 영화로 제작된 건 10년 뒤인 1984년이다. 예술영화 감독이었던 데이비드 린치가 연출을 맡으면서다. 그는 이질적이고 생소한 분위기로 <듄>을 그려냈다. 2008년에는 <듄>의 영화화 판권을 얻은 파라마운트 픽쳐스가 리메이크 영화화를 추진했지만, 3년 만에 전면 취소됐다.

드니 빌뇌브 감독이 <듄>의 리메이크 영화화를 맡게 됐을 때도 우려가 컸다. 그동안 <듄>의 영화 제작이 수포로 돌아간 데다, <듄>이 <스타워즈>처럼 공상과학적인 요소가 가득한 우주 활극이 아니라 심오하고 장대한 역작이기 때문이다. 3만년에 달하는 시간을 다룬 소설을 영화로 옮겨 담는 것도 부담이다. 세계관이 방대하고 복잡해 영상으로 구현하는 데 난제가 많다.

영화가 개봉되자, 평단에서는 극찬이 쏟아졌다. ‘현대적 SF 서사 영화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창의적인 유니버스의 입문서가 될 영화’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대중의 반응은 엇갈린다. 불호의 이유는 난해하고 어렵다는 게 대부분이다. 아마도 로봇, AI, 광선검, 우주전쟁 등의 요소를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듄>에서는 <스타워즈>처럼 광활한 우주의 모습이나, <아바타>처럼 그림 같은 풍광이 그려지지 않는다. 영화의 배경은 모래 행성 아라키스다. 이곳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비싼 물질인 ‘스파이스’를 채취할 수 있다. 스파이스는 사람의 노화를 막고 수명을 최대 수백 년 단위로 연장시킨다. 일정량 이상을 섭취할 경우 일종의 예지능력이 개화된다. 중독되면 눈동자가 파랗게 변하고 과용하면 사망하게 된다. <듄>은 스파이스를 두고 모험과 음모, 투쟁, 사랑, 배신, 복수, 구세주의 신화를 그린다.

하코넨 가문은 아라키스 행성에서 스파이스를 채취하며, 원주민 프레멘족을 침탈해왔다. 황제는 하코넨의 라이벌인 아트레이데스 가문에 스파이스를 채취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황제는 날로 강성해지는 아트레이데스의 세력을 꺾기 위해 함정과 같은 임무를 준 것이다. 아트레이데스는 프레멘족의 적대감, 거대한 모래벌레의 공격을 피해 아라키스 행성에 도착한다. 이후 하코넨은 군사를 일으켜 아라키스를 공격하고 아트레이데스는 절멸의 위기에 처한다. 살아남은 폴 아트레이데스(티모시 샬라메)는 프레멘족에 의탁하고 가문을 부활하기 위해 나선다.

언뜻 보면 폴의 복수가 주제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듄>은 항성의 유력 가문들의 전쟁을 통해 인간 사회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대하 사극’의 특성을 지녔다. 여느 드라마처럼 폴이 하코넨과 황제에게 복수하고 이야기가 끝나지 않는다. 각성을 통해 초능력에 가까운 힘을 갖게 된 폴은 자신이 전쟁의 명분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고 절망한다. 후속작에선 폴의 여동생 엘리아와 아들 레토 2세는 우주의 폭군이 된다. 권력, 초능력과 같은 힘에 대한 양면을 표현한 것이다. <듄>은 심오한 인간 본성과 경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듄>은 감독인 드니 빌뇌브의 특기가 배어있다. 그는 그간 금기시되는 인간의 어두운 심리를 묘사하고, 초월적인 폭력과 무질서 앞에 던져진 나약한 인간을 그려왔다. 영화 속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서로 상반되거나 또는 공통의 목적을 가지더라도 대립하는 모습을 영화의 주제의식에 결부시키는 게 장기다. 감독은 아트레이데스과 하코넨의 대립을 통해 권력의 폐해를 드러낸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미장센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듄>에서 차분하고 정적인 촬영방식을 통해 몽환적이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과 거대 우주선, 층고가 높은 복도에서 인물을 작게 그리는 카메라 앵글을 통해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봉건제와 판타지가 공존하는 <듄>이 던지는 메시지는 묵직하다. 스파이스를 수탈하는 제국과 두 가문의 대립은 역사 속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연상된다. 100도를 웃도는 아라키스 행성의 모래사막은 곧 지구에 닥칠 미래로 보인다. 사막 원주민 프레멘족은 스틸수트를 입고 아라키스의 혹독한 조건에 적응한다. 스틸수트는 체내에서 배출되는 땀, 소변, 침, 피와 같은 모든 종류의 수분을 모아 깨끗한 물로 정수한다. 습기가 없는 모래 행성에서 물이 귀하기 때문이다.

스파이스로 인한 초능력으로 각성한 폴이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것보다 “난 괴물이 됐어”라고 자학하는 모습에선 메시아를 우상화하는 대중을 꼬집는다. 폴은 초능력을 갖게 된 후 자신을 메시아로 대하거나 적대시하는 세력들로 인해 우주를 분열하는 전쟁이 발발할 것을 두려워한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를 초월적 존재로 우상시하는 풍조를 지적하는 것이다.

원작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는 생전 인터뷰에서 “지도자들의 실수는 그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자들에 의해 극대화된다”고 주장했다.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가 만들어낸 권력 구조는 타락한 자들에게 탈취당하고 이로 인해 재앙이 더 커진다고 설명한 것이다. 작가는 정의로운 아트레이데스 가문마저도 하코넨 같은 폭군으로 전락하는 것을 통해 현실을 투영했다. 프랭크가 구상한 소설의 엔딩은 제정이 무너지고 전 우주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려 지도자의 영향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악재는 겹치고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는 시국에 이 모든 것을 해결할 메시아를 기대하는 우리를 꼬집는 것만 같다.

<듄>은 전체 6부작인 원작 소설 중 1권을 2부작으로 나눴다. 아직 남은 이야기가 훨씬 많다. 감독은 기나긴 원작을 압축하는 무리수 대신 이야기를 잘라냈다. 본격적인 사건이 전개되기 직전에 영화를 끝냈다. 속편에서 메시지의 본질도 드러날 것이다. 전체 서사의 터를 닦는 도입부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개는 느리다. 빠르고 화려한 액션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감동을 느끼기 위해선 집중력이 필요하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