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모가디슈에서 들려오는 ‘기브 미 왓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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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말리아 어린이들의 절규가 지금도 귓전에 맴돌고 있다. “기브 미 왓떼르(give me water)”, “기브 미 왓떼르” 목마른 아이들이 물을 달라고 애타게 외치는 이탈리아식 영어 발음이다. 필자는 1993년 한국군 최초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소말리아에 건너가 공보장교로 활동했다. 이때 휑한 눈과 뼈만 앙상하게 남은 주민들을 본 후로 지금도 먹다 남은 생수나 음식을 잘 못 버린다. 아직도 “기브 미 왓떼르” 절규가 들리고 먹을 것을 달라고 호소하던 주민들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1993년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소말리아에서 [사진=전병규]

1960년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독립한 소말리아는 1991년 내전이 발발했다. 설상가상으로 극심한 가뭄까지 겹쳐 한해만 30만 명 이상 죽었다. 이를 두고 당시 언론은 소말리아를 “신이 버린 나라”로 표현했다. 유엔은 1993년 36개국으로 구성한 평화유지군을 소말리아에 긴급히 투입했다. 하지만 내전이 더 격화되자 평화유지군은 2년도 안 되어 철수하고 말았다.

영화 ‘블랙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은 1993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미군과 반정부 간 치열한 시가지 전투를 다루었다. 우리 영화 ‘모가디슈’는 1991년 내전이 발발한 소말리아 수도에서 남북한 외교관들이 힘을 합쳐 빗발치는 총탄과 화염 속에서 필사적인 탈출 과정을 그렸다.

상록수 부대는 낮 최고 40℃ 이상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서 극심한 가뭄과 내전으로 삶을 포기한 현지 주민들에게 희망이었다. 주민들은 4km 이상 걸어가야 겨우 식수를 구할 수 있었다. 하루 한 끼를 제대로 못 먹어 휑한 눈과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다. 구호물자를 전하고자 주민들을 만나기 전에는 이토록 참담한 줄 몰랐다.

▲1993년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소말리아에서 [사진=전병규]

어느 날 잠깐 소낙비가 내리자 아이들은 송아지처럼 흙탕물에 코를 박고 물을 먹고 있었다. 전쟁이 쓸고 간 처참한 흔적을 똑똑히 보았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소말리아 사람들은 착하기 그지없었다. 구호물자를 나누어 줄 때 질서정연하게 순서를 기다렸다. 배급받은 물자를 들고 중간에 뜯어보는 사람들도 없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집으로 가서 가족과 함께 먹기 위해 달려간다. 지금 생각해도 애처롭고 흐뭇하다.

현지 주민들을 만날 때마다 6·25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참담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기브 미 왓떼르”를 외치는 아이들에게서 6·25전쟁 당시 미군들에게 “기브 미 초콜릿”을 외친 우리나라 아이들이 보였다. 사회, 문화, 경제 등 모든 분야가 무너지니 내일도 없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우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소말리아를 보면 지도자의 리더십과 국민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는다.

어찌 된 영문인지 소말리아는 현재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한다. 30여 년 전에는 ‘신이 버린 나라’로 불렸는데 지금은 “해적의 소굴”로 알려져 있다. 1991년 바레(1969년부터 1991년까지 집권한 소말리아 민주 공화국의 군부 독재자이자, 대통령) 정권이 무너지고 내전이 계속되다가 2012년 과도정부가 수립되었지만, 아직도 곳곳에서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물론 대부분 나라가 소말리아를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한 상태다.

‘삼호주얼리호’가 2011년 아덴만에서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당했다. 당시 우리 해군은 ‘아덴만 여명작전’으로 해적을 일망타진하고 배와 선원을 무사히 구해 내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온 국민이 우리 해군에 찬사를 보낼 때도 한편으로 그 아이들이 혹시나 해적이 되었을까 걱정되었다. 목이 말라 쉰 목소리로 물을 달라고 절규하던 소말리아의 아이들은 그때쯤 청년이었다. 이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도 가족들과 나누는 착한 아이들이 지도자를 잘 못 만나 해적의 소굴로 빠진 것 아닌가

소말리아도 언젠가 우리나라처럼 우뚝 설 수 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35년간 혹독한 일제 강점기에서도 살아남았다.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치르며 우리 국군은 13만7천9백여 명이 전사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에 우뚝 서 있다. 정보통신, 건설, 문화 분야 등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는 1950년 유엔의 도움을 받은 나라였다. 그러다가 1993년 상록수 부대가 최초로 소말리아를 도와준 이래 계속 돕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했고 세계가 우리를 기적의 나라로 불러 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세계가 인정하는 나라답게 우리도 자신을 자랑스러워지도록 하는 ‘희망을 주는 리더십’이 절실히 필요하다. 지금 우리 청년들은 기성세대에 “희망을 달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 청년들의 바람은 풍요롭게 사는 것이 아니다. 마음껏 꿈을 꾸고 마음껏 꿈을 펼치며 뿌린 대로 거둘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싶은 것이다. 그리되면 소말리아에 자신 있게 말해 주고 싶다. 대한민국처럼 하면 된다고.

전병규 kyu9664@naver.com
육군에서 33년 복무하고 2021년 예편했다. 소말리아, 이라크에서도 근무했다. 전역 직전에는 대구, 경북을 지키는 강철사단의 부사단장을 역임했다. 대구과학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