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6·25 때 쓰던 수통 처럼 바뀌지 않는 군대, ‘D.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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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군필자 중 넷플릭스 드라마 <D.P.>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D.P.>가 한국의 군대 폭력을 매우 현실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예비역들은 끔찍한 추억에 잠겨 ‘PTSD(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고 있다. 온라인에는 10여 년 전 자신을 괴롭힌 고참을 밝히며 엽기적인 ‘갈굼’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쏟아졌다. 오죽하면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에 빗대 ‘군투’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Deserter Pursuit(D.P)’는 헌병대 군무이탈 체포 전담조를 말한다. 국군 중 소수만 차출되며, 통상 2인 1조로 활동한다. 이들의 특성은 국군 장병들이 부러워하는 조건을 갖춘다. 머리카락을 기를 수 있고, 사복을 입는다. 활동비가 주어지며, 부대 밖도 다닐 수 있다. 하지만 <D.P.>가 군필자들에게 공감을 사는 이유는 군의 각종 부조리를 고발하듯 보여주는 주제의식 때문이다.

드라마에선 군대 내 폭력·성추행 등 가혹행위와 강압적 상명하복 문화 등 어두운 면이 극단적으로 그려진다. <D.P.>가 인기를 모으자 군은 이례적으로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국방부는 “폭행, 가혹 행위 등 병영 부조리를 근절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병영 혁신 노력을 기울여왔다. 군기가 가장 문란한 부대들에서나 일어날 만한 가장 극단적 상황을 모은 것. 지금의 병영 현실과 다른 상황일 것”이라고 불쾌감을 나타냈다. <강철부대>나 <진짜사나이> 등 강인함과 전우애를 강조하던 프로그램과 다르게 군이 은폐하는 면을 다루기 때문일 것이다.

“군대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말은 여전히 공허한 변명에 불과하다. 드라마의 배경은 2014년 가을이다. 그해 유독 군대 내 사건·사고가 많았다. 집단 구타로 숨진 ‘윤 일병 사망 사건’과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임 병장 총기 난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건 7년 전이고, 2019년부터 일과 시간 후 병사들의 영내 휴대전화 사용이 허용되어 병영문화가 개선됐다는 지적이 따를 수 있다. 정말 지금 군은 드라마와 다른가?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2020년 1,710건의 상담 신청이 접수됐다. 이 중 상해, 폭행 등 구타와 모욕, 폭언 등 언어폭력 피해를 호소한 상담이 각각 96건, 273건으로 2019년보다 각각 11.6%, 12.8% 증가했다. 강간, 준강간 등 성폭력 피해의 경우 16건으로 전년(3건)보다 4배 이상 늘었고 성희롱 피해 역시 55건으로 2019년 11건에서 25% 늘었다. 간부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공군·해군·육군에서 연속적으로 여군 부사관 성폭력 사건이 드러났다. <D.P.>에 군필자들이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그들이 실제 겪었지만 제대하면서 애써 가슴에 담아둔 부조리를 세상 밖으로 제대로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부정부패와 불합리성, 가혹행위 등 공공연한 군대 내 부조리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다. 국방부가 이례적으로 드라마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아도, 여야 대선 주자들까지 군대 내 폭력에 대한 정책을 내놓아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 ‘방관’하기 때문이다.

권위에 맞설 자신이 없어서, 대신 피해가 갈까 봐, 조용히 지내고 싶어서,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아니면 이 또한 지나가면 다시 겪을 일이 아니니 모른 척한다. 이렇게 등을 돌린 탓에 가혹행위와 부조리로 뭉친 병영 문화는 수법만 달라졌을 뿐 폭력성은 여전하다. 고통과 무력감으로 절절한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어느 사회에서나 마땅히 견뎌내야 할 조직문화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 부적응자 내지는 남들 다 괜찮은 것에도 신음하는 나약한 사람이란 낙인을 새긴다.

그러니, 변하지 않는다.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맞던 어머니를 외면한 안준호(정해인)는 군에서 방관한 것을 반성하고 자기 신념을 지키며 현실을 개선하려 애쓴다. 하지만 현실의 양심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만 좇았다. 그들은 한호열(구교환)을 이상적인 선임으로 추켜세우지만, 자신은 호열처럼 한 번도 그랬던 적 없을 것이다. “바뀔 수도 있잖아. 우리가 바꾸면 되잖아”라는 호열의 호소보다, “수통에 적힌 날짜가 1953년이다. 6·25 때 쓰던 수통도 안 바뀌는데”라는 조석봉(조현철)의 냉소가 공감이 가는 이유다. 우리는 대리만족이나 쾌감이 아니라 교훈을 얻어야 한다. 지금 군은 드라마와 다른가?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