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2년째 이어지는데, 발달장애인 대책은 허울만

대구 장애인 주간보호센터에서 집단감염
발달장애인 생활 지원 인력 없어
비감염 가족이 함께 격리되고, 감염돼

15:36

경북 경산에 사는 이순화(55) 씨는 지난 8일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발달장애인 아들(29)이 코로나19에 확진됐다는 소식이다. 대구 동구의 한 주간보호센터를 다녔는데 그곳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아들까지 감염이 된 거였다. 관할 보건소에서는 아들이 기저질환을 앓아서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아들이 낯선 환경에 놓이면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때론 도전적인 행동을 하기도 해서 돌보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 씨는 3일 동안 보건소와 협의 끝에 자신이 아들과 함께 병원에 입원하기로 했다. 협의하는 사이 이 씨도 결국 감염된데다 보건당국 차원에서 아들을 돌볼 인력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지난 12일 이 씨는 아들과 함께 안동의료원에 입원했고, 14일에는 다시 정신과 진료가 가능한 대구의료원으로 전원했다. 그 사이 이 씨는 낯선 환경에 처한 아들의 도전적인 행동 때문에 실신하는 일을 겪었다.

“병원에 있는 것조차 너무 불안하고 치료하는 것보다 아이하고 같은 공간에 생활한다는 게 너무 두려운 나머지 실신을 했다. 실신을 하는 사이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겠나? 이대로 내가 먼저 죽는구나. 내가 죽고 나면 아이도 바로 따라 죽겠지. 집에 남은 아빠는 대체 어떻게 살까. 누군가 빨리 와서 아이를 안정시켜주고 나를 구해주길 바란다. 그러는 시간이 1년이고 2년 같이 느껴졌다”

이 씨가 실신하자 병원은 이 씨의 남편에게 연락을 했고, 이 씨를 대신해 남편이 아들을 돌보게 했다. 그 탓에 결국 남편도 지난 14일 감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아들의 감염으로 그 부모까지 모두 감염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씨와 비슷한 사례는 동구 주간보호센터를 통한 감염 사례에서 여럿 확인된다. 동구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안 모(31) 씨의 경우 지난 8일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생활 지원 인력이 없어서 어머니가 함께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했다. 감염된 아들과 함께 생활하던 어머니는 며칠 못가 확진 판정을 받았고, 이어 아버지, 발달장애를 가진 형(33)까지 감염됐다.

수성구에 거주하는 김 모(27) 씨의 경우에도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할 경우 생활 지원 인력 없어 보호자가 함께 입소했고, 감염됐다. 유 모(30) 씨는 지난 7일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 생활치료센터에 입소하면 생활 지원이 가능하지 않아 하루 앞서 확진돼 생활치료센터에 있던 아버지가 퇴소해 함께 자택격리를 해야 했다. 동구에 거주하는 이 모(29) 씨는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됐지만 역시 생활 지원이 가능하지 않았고, 함께 확진 판정을 받은 생활 지원 교사가 함께 병원에 입원해 그를 돌봤다.

지난해부터 2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유행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마련한 장애인 확진자 치료 지침이 현장에선 전혀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지난해 6월 ‘장애인 대상 감염병 대응 매뉴얼’을 처음 내놨고 지난 4월에는 개정판도 냈지만 무용지물이다. 지난해 12월에 장애인 전담병상 마련 등 별도 계획도 내놨지만 마찬가지다.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23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장애인에게 실효적인 코로나19 대응책 마련을 요구했다.

23일 대구장애인차별처철폐연대(대구장차연)는 국가인권위원회 대구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전히 장애인은 감염병 사태에서도 차별적인 상황에 처해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대구장차연은 “정부는 2020년 12월 장애인 확진자에 대한 대책이 부재하다는 비판에 대응하여 장애인전담병상의 마련과 순차적 확대, 병원 및 생활치료센터 입원 시 활동지원사를 배치하여 장애인 돌봄 지원 등을 계획으로 발표했으나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는 여전히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병원 및 생활치료센터에 활동지원사 배치를 위해 관련 인력이 사전에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 장애인, 가족, 활동지원사, 활동지원기관, 병원 등 5개 주체 합의가 필요하나 실제로 감염병관리법과의 상충과 인력관리 부담으로 이 지침은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피해자들은 보건소 및 구군청에 장애인 확진자 보고 및 관리 체계 안에서 장애인 확진자 지원에 대한 어떤 절차나 정보도 듣지 못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후 ▲장애인 확진자 발생 시 병원 및 생활치료센터 내 지원인력 배치 지침의 실질적인 작동 대책 ▲장애인 확진자의 재택치료 시 지원체계 마련 ▲도전적 행동 등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발달장애인을 위한 감염병 전담병상 등 지원체계 구축 등을 요구하며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