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두환 죽음, 광주 그리고 경북 안동 /허승규

17:04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대한민국 대통령을 역임한 전두환 씨가 사망했다. 역사적으로 논란이 많았던 인물의 죽음과 함께 경북 안동시민들이 기억해야 할 이야기를 드리고자 한다.

전두환 조문을 둘러싼 거대 양당의 사회적 합의
‘공식적인 조문과 국가장은 하지 않는다’

전직 대통령이 사망하면 그 공과를 떠나서 국가적인 예우를 갖추어 장례를 치른다. 그런데 전두환 씨는 1979년 12.12쿠데타로 집권했기에 집권의 정당성 문제가 있다. 또, 1996년 내란죄로 구속되어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가 박탈됐다.

특히, 1980년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에 대한 역사적 책임이 너무나도 크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후신인 국민의힘도 공식적인 조문을 가지 않았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도 조문은 가야 하지 않겠냐는 발언을 번복했다. 전 씨에 대한 공식적인 조문과 국가장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된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당선되었고, 장남 노재헌 씨가 여러 번 광주에 대해 사과를 했던 노태우 전 대통령과는 다른 모습이다.

▲2021년 11월 29일 대구 동화사에서 진행한 전두환 삼우제

경북도민들은 광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우리 지역민들은 광주의 아픔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을까? 여전히 많은 지역민은 광주를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호남인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다. 한국현대사의 지역갈등, 동서갈등의 본질은 호남 차별과 배제의 역사다.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한국현대사의 비극과 호남 차별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북도민들의 역할이 있다.

우선, 역사적 사실과 그러한 일이 발생한 구조를 인식해야 한다. 1980년 5월로 돌아가 보자. 당시 신군부에 의해 많은 광주 시민들이 잔혹하게 희생되었다. 스마트폰도 없고, 언론도 통제되던 시절, 많은 국민들은 나중에서야 진실을 알게 되었다. 1980년 5월, 광주는 역사적 비극 자체로 아팠고, 있었던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역사 때문에 더 아팠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가 등장한 이후, 전국적인 민주화 열풍이 일어났다. 유신 체제가 붕괴한 1979년 10월 26일 이후부터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조치 전까지 시기를 ‘서울의 봄’이라고 한다. 1960~70년대 유신 체제를 겪은 시민들은 좀 더 자유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을 기대했다. 쿠데타로 등장한 신군부에 대한 저항은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신군부 입장에서는 ‘서울의 봄’이 난처했다. 본인들의 취약한 정통성 때문에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이후, 여러 지역에서 저항이 일어났는데, 왜 광주에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

1980년 대한민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였다. 냉전 시기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서방 국가들과 우호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했다. 국제무역 의존도가 높았던 대한민국은 그래도 외신들의 눈치는 보는 국가였다. 서울은 인구도 많고, 해외통신사, 외국 대사관 등이 많은 곳이다. 보는 눈이 많은 수도였다. 대전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웠다. 대구는 신군부 세력의 지지 기반이었고, 부산은 민주화 인사였던 김영삼의 지지 기반이자, 1979년 부마항쟁을 겪었던 곳이다. 자칫하면 영남 지역 지지기반이 갈라질 수도 있었다. 서울에서 지리적으로 멀고, 외신들이 주목하는 곳도 아닐 뿐더러, 신군부의 지지기반인 영남도 아닌 광주를 신군부가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5월 광주의 비극은 광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신군부가 지지 기반과 아닌 지역을 나눠서 통치하려는, 분할 통치 전략이 담겨 있다. 한국현대사의 뿌리 깊은 상처인 지역 문제는 갈등이라기보다, 권위주의 정권의 호남 차별과 배제 전략이다. 그래서 광주의 비극은 경북의 문제이기도 하다. 지역과 지역을 갈라치기 했던 아픈 역사가 깃들어 있기에, ‘1980년 5월’은 우리 지역민들도 기억해야할 역사다.

그런데 경북 안동 시민들은 1980년대 왜곡된 정보만 접했기에 광주의 진실을 더더욱 알기 어려웠다. 평범한 광주 시민들은 갑자기 신군부에 의해 폭도가 되었고, 간첩이 되었다. 당시 신문사, 방송사는 진실을 보도할 수가 없었다. 왜곡된 기사들이 쏟아졌고, 광주 시민들을 두 번 죽인 꼴이 되었다. 광주 인근 지역민들이 아니면, 잘못된 정보를 통해 광주 시민과 호남인을 인식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전라도 차별 인식을 키우게 되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자. 갑자기 동네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가족을 학살한 일만으로도 충격이 클텐데, TV와 신문에서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서, 다른 국민들이 내 지역을 비하하고, 왜곡하면 어떨까? 죽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까? 많은 광주시민들이 한을 품고 돌아가셨다.

▲1980년 5.18광주민중항쟁 당시의 모습 [사진=518기념재단 홈페이지]

광주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다

1980년 5월, 한국인들은 진실을 알기 어려웠지만, 지구 반대편 독일인들은 진실을 알 수 있었다.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인 독일인 힌츠펜터 기자가 목숨을 걸고 취재한 영상이 독일 공영방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걸고 나섰다. 몇몇 대학생들은 목숨을 끊으며 광주의 진실을 호소했다. 광주의 진실은 음지를 통해 전해지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에야 양지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한다. 1988년 국회에선 ‘광주청문회’가 열렸다. 1990년대 국민드라마였던 <모래시계>에도 광주가 등장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란죄로 구속되었다. 2000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5.18 기념식에 참석한다. 정부 차원의 광주에 대한 명예회복, 진상규명과 함께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는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계속 진행 중이며, 여전히 수많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공존하며 살고 있다.

지역 구도와 정치 구도의 잘못된 만남

지역 구도와 정치 구도가 묘하게 결합하면서,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면 호남을 정치적으로 적대시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정치 경쟁 구도가 호남 배제와 결합했다. 김대중을 욕하면서 전라도를 비하하고, 빨갱이란 딱지를 붙였다. 과거 식민지 시절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비하하던 모습과 유사하다.

신군부 세력은 본인들의 집권을 위해 ‘우리가 남이가’식의, 특정 지역에 자원을 몰아주고, 특정 지역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전략을 부추겼다. 호남 차별과 배제의 역사는 호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함께 공감하고 이해해야할 우리 현대사의 비극이다. 피해 지역이 아닌, 어쩌면 신군부로부터 혜택을 받은 경북 지역에서 호남 문제를 올바르게 인식해야 국민통합도 가능하다. 이는 호남이 불쌍해서 도와준다는 시혜적인 차원이 아니고, 우리 지역 발전을 위한 일이기도 하고, 보수 정치를 바로 세우는 일이기도 하다.

광주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 지역을 위하는 일

첫 번째, 어느 지역이든 소외된 지역이 될 수 있고, 중앙정부로부터 차별을 받을 수 있다. 어느 지역이든 차별받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은 모든 지역을 위한 일이다. 경북 북부 지역도 인구가 적기에 낙동강 수리권을 둘러싼 문제에서 피해를 감수한 역사가 있다. 특정한 지역이 차별받는 구조에선 우리 지역 또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지역 구도와 정치 구도가 이상하게 결합되다보니, 일당 독점 구조가 생겼다. 영남에서도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고, 호남에서도 다양한 정치가 공존할 수 있다. 기득권 정치는 호남을 핑계로, 경북의 정치 독점 구조를 만들었다. 전라도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을 비판하면서, 내부적으로 기득권 정치 독점 구조를 만들었다. 정치 다양성, 견제와 균형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이것은 호남도 마찬가지다. 전두환 신군부 세력에 저항하기 위해 똘똘 뭉쳐야 했기에, 호남 내부적인 정치 다양성을 만들기 어려웠다. 외부의 적이 강하면 내부는 뭉쳐야 되는 것이다. 결국 지역 간 정치 구도를 타파할수록 지역이 건강해진다. 지방 분권과 주민 자치의 시대에 맞게 지역의 정치다양성을 회복해야한다.

전두환을 극복해야 보수 정치가 바로 선다

마지막으로 보수 정치의 중심인 경북에서 전두환을 극복해야 보수 정치가 바로 선다. 대한민국과 같은 작은 나라에서 호남이라는 특정 지역을 짓밟는 정치체제가 지속가능할까?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보편적 상식에 어긋난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는 인류 보편적 가치 안에서의 ‘진보와 보수’다. 인류 보편적 가치 바깥의 정치세력을 우리는 보통 ‘극우’나 ‘극좌’라 부른다. 국민의힘은 극우정당인가? 보수정당인가? 특정 지역의 희생을 강조하고, 특정 지역의 아픔을 왜곡하는 정치는 보수 정치가 아니다.

국민의힘 대표실에 가면 김영삼 대통령 사진은 있지만, 전두환 사진은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도 이것을 알고 있다. 오히려 나라가 잘못 되어갈 때 일어선 광주 시민들의 역사야말로 애국이자 호국이요,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구현한 것이 아닐까. 광주를 기억하는 일을 두고 한국 보수 정치 세력의 성과를 훼손한다고 걱정하지 마시라. 보수 정치답게 만드는 일이자, 국가공동체의 상처를 회복하는 정통 보수 정치의 길이다. 5.18은 진보가 아닌 보수의 과제다.

경북 안동에서 ‘5월 광주’를 기억하기

우리 지역에서도 5월 광주를 기억하자.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소년들은 어릴 때부터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가까이서 보고 배운다. 우리 지역에선 청소년보다 어르신들이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원로들, 책임 있는 정치인들, 각종 단체 임원들에게 당부드린다. 매년 봄과 가을, 읍면동의 수많은 단체들이 전국 곳곳의 관광지로 선진지 견학을 간다. 호남 지역 코스를 잡을 때는 5.18 관련 장소도 들려보자.

▲2019년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에서 다녀온 광주 기행 [사진=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

2019년, 지역 청년 공익단체 안동청년공감네트워크에선 10여명의 청년들과 광주에 견학을 갔다가 금남로 5.18기념관에 들렸다. 안동에 돌아와서 매년 5.18문화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광주까지 가기 멀다면, 지역사회에서 실천해보자. 특히, 보수적인 원로들, 정치인들이 먼저 5월 광주를 기억하고, 정치적 문제와 호남 문제를 구분해서 말씀해주신다면 더 많은 지역 시민들이 광주를 새롭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보수적인 것과 호남 차별에 공감하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정치적 문제와 호남 문제를 왜곡해서 말하는 원로들이 있다면, 지역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자중하시길 바란다.

1980년대, 그때 그 시절 광주의 아픔을 해결하는데 힘을 보태지 못 했던 수많은 안동시민들이 지금 2021년을 살고 있다. 41년이 지난 한국 현대사의 비극에 이제는 새롭게 손을 내밀어주시라. 한국 독립운동의 성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경북 안동에서 41년 전과 다른 역사를 만들어가자.

전두환의 죽음을 맞아 다시 한 번, 희생되신 광주의 영령들을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