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타는 여자들’, 잊혀진 평화시장 여공의 청춘을 위로하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관객과 대화
신문기사 한 줄 찾기 힘든 잊혀진 투쟁
‘9‧9사건’에 주목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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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엔딩크레딧으로 소개되는 이름 하나하나를 읽는 듯 조용했다. 몇몇 관객이 훌쩍이는 소리도 들렸다.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은 전태일로만 기억되는 1970년대 평화시장의 ‘여공’을 기억하는 영화다. 중년이 된 여성 노동자들은 흑백사진 속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사회가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그때’를 구술했다.

6일 저녁, 대구 오오극장에서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상영과 함께 이혁래, 김정영 감독이 참여하는 관객과 대화(GV)가 진행됐다. 진행자로 정은정 ‘대구노동세상’ 대표가 나섰고, 관객들은 오픈채팅을 통해 자유롭게 질문했다.

정은정 대표는 “영화가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영화 속에서 출연 배우들이 굉장히 존중받는 느낌”이라며 “지금도 전태일 열사의 길을 알리는 여러 행사를 하고 있지만, 청계피복노조를 만들고 그 정신을 가장 올곧게 계승한 것은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아니었나 생각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 6일 저녁, 대구 오오극장에서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상영과 함께 이혁래(가운데), 김정영(오른쪽) 감독이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GV)가 진행됐다. 진행자로 정은정 ‘대구노동세상’ 대표(왼쪽)가 나섰다.

신문기사 한 줄 찾기 힘든 잊혀진 투쟁
‘9‧9사건’에 주목한 이유

김정영 감독은 ‘9‧9사건’을 영화로 다룬 이유를 묻자 “도서관이나 신문에서도 찾기 힘든 이야기였다. 사회적 반향도 크지 않고, 어떤 분은 ‘실패한 투쟁’이라고 했다”며 “그렇지만 노동교실을 지키기 위해 어린 여성 노동자들이 했던 일이 아닌가. 그분들이 영화를 통해 사건의 퍼즐을 맞추고, 해원(解冤)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9‧9사건’은 ‘청계피복노조 노동교실 탄압사건’으로도 불린다. 전태일 열사 분신을 계기로 만들어진 청계피복노조가 노동자 권익을 위해 운영하던 노동교실을 군사정권이 탄압하고, 이에 맞선 피복노동자들의 격렬한 투쟁이 이어졌던 사건이다.

전태일 열사 분신 이후 7년 뒤, 1977년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노동 운동으로 구속됐고, 정부는 노동교실을 폐쇄했다. 이에 반발한 노동자 200여 명은 9월 9일 경찰의 제지를 뚫고 노동교실을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갔다. 당시 재판부는 ‘북한 건국절인 이날에 왜 그런 일을 벌였나, 누구한테 지령을 받았나’고 물었다.

‘7번 시다’ 혹은 ‘1번 오야 미싱사’ 등으로 불리던 신순애(68) 씨는 청계피복노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노동교실에 와서 처음 자신의 이름을 쓸 수 있었다. 노동교실에선 모두 이름을 가진 동지였다. 학교 대신 생업 전선에 뛰어든 10대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동교실은 꿈을 키우는 학교였다.

당시 15세 나이로 옥살이를 했던 임미경(59) 씨는 그때 일만 생각하면 여전히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 그때 검사가 작성한 공소장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다. 믿었던 ‘판사님’ 마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혁래 감독은 “평화시장의 노동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잘 알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했던 노력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며 “열악한 노동 환경을 상징하는 다락방과 함께, 10대 여성들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노동교실도 함께 기억되길 바랐다. 그 공간을 잃어버리게 된 사건인 그날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포스터 (사진=영화사 진진)

함께 노래하고, 그때를 이야기하며
하고 싶었던 그들의 말 “미안하다, 괜찮다”

당시 ‘청계피복노조’ 교육선전국장이었던 이숙희(70) 씨를 비롯해 신순애, 임미경 씨를 주요 화자로 영화는 그들의 얼굴을 그리고, 함께 노래하고, 그때의 동료들을 만난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한 관객은 “열사 정신, 투쟁 정신을 기록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로 이어질 수 있도록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신 것 같다”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 많은 고민과 생각을 안고 간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혁래 감독은 “그 사건 이후에 청계피복노조를 떠났던, 잊혀졌던 많은 여성 조합원이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출연자 선생님들이 어렵게 출연하겠다고 한 이유도 다시 만나셔서 그동안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미안하다고 하면 미안해할 필요 없다고 ‘괜찮다’고 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감독은 “가족들끼리도 같이 힘든 일을 겪으면 그 이야기를 안 하는 것처럼, 이분들도 그 사건 이후로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다”며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만나 이야기하고, 또 편집을 통해 맞춰지면서 그제서야 그때의 경험을 공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정영 감독은 최근 출연진들이 매일 아침 관객 스코어를 열심히 찾아본다고 근황을 전하며, 한 출연자의 N차 관람기가 인상 깊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출연하신 이순자 선생님은 지난해 10월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혼자 와서 처음 영화를 보셨다. 그다음 시사회 때는 남편분과 그다음에는 아들 내외와 함께 오셨다. 개봉 이후에는 지역 친지들을 모시고 여러 차례 N차 관람을 하셨다. 그게 저희한테는 약간 숙제 검사 같았다. 영화를 잘못 만들지는 않았구나 했다.(웃음)

김 감독은 영화가 주는 위로의 메시지에 대해 “이분들이 빛나는 시절을 그리고 싶었다”며 “우리가 위로한 것이 아니라 그분들 스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완성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분들이 ‘9.9사건’을 이야기할 때는 슬프고 힘들지만, 한편으로 노동교실에서 10대 임미경, 20대 신순애, 이순자가 경험한 빛나고 아름다운 경험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며 “어린 시절의 자신을 되돌아보며 위로하는 시간이 됐으면 했다”고 강조했다.

▲ 당시 ‘청계피복노조’ 교육선전국장으로 리더 역할을 하던 이숙희(오른쪽) 씨를 비롯해 신순애(중간), 임미경(왼쪽) 씨를 주요 화자로 영화는 그들의 얼굴을 그리고, 함께 노래하고, 그때의 동료들을 만난다. (사진=영화사 진진)

마지막으로 정은정 대표는 우리 사회가 여성 노동자의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하길 기대했다.

어떤 영화 리뷰를 보니까 70년대 이분들의 노동에 대한민국이 기대어 있었고, 40~50년이 흘러도 여전히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했다. 요즘은 고령 여성 노동자들이 돌봄 노동을 담당하고 있는데, 제대로 존중받지 못한다. 여성들의 노동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평가될 수 있는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특히 우리 대구 지역에서 이루어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장은미 기자
jem@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