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국군통수권자, 지지자만이 아닌 우리의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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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조국 대한민국과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 지난 2월 28일 육군3사관학교 57기 청년장교들이 임관식을 주관한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앞에서 외친 굳센 다짐이다. 군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청년 장교들의 함성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그 무엇이 청년장교들을 열광하게 하는 것일까?

정치에 중립을 지켜야 하는 군인에겐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이다. 최고 지휘관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개인적 기준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군인은 국군통수권자를 판단하지 않는다. 유사시 국군통수권자의 명령에 즉각 복종하기 위함이다.

필자는 군에서 33년 복무하고 전역한 지 2년이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대통령이 아니라 국군통수권자로서 보고 있음을 고백한다. 군 복무 동안(1987∼2020) 여덟 분의 국군통수권자를 뵈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어떤 측면에서 평가하든 군인이었던 필자에게는 절대적인 국군통수권자였다.

1987년 3월 임관식 때 꽃샘추위 속에서 전두환 대통령의 격려를 받았다. 이 행사를 무려 1개월 동안 준비했다. 당일에는 두 시간이나 연병장에서 기다리고 나서야 국군통수권자의 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평할 줄 몰랐다. 국민들이 ‘호헌철폐’를 외칠 때, ‘내 생명 조국을 위해’만 다짐했던 기억이 아직 선명하다.

1992년 노태우 대통령 퇴임 직전에 경호실 실무장교로 선발되었지만, 1993년 김영삼 대통령께서 취임을 앞두고 경호원을 전면 교체하는 바람에 기회를 얻지 못했다. 김 대통령께서 후보자 신분으로 전방 백골부대를 방문하여 용사들과 동석 식사를 할 때, 부대 참모로서 테이블 옆에서 뵈었다. 후보자께서는 단참에 식기를 비우고 ‘장병급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식단표 그대로 식사를 했다.

1998년 건군 50주년 국군의 날에 김대중 대통령을 먼발치에서 뵈었다. 대학원 위탁교육 중에도 자원해서 행사를 지원한 덕분이었다. 평소 대통령의 모든 저서를 탐독한지라 심리적 거리는 가까웠다. 대통령의 독서량을 따라잡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직 남아수독오거서(南兒須讀五車書)와는 거리가 멀기만 하다.

2004년 12월, 노무현 대통령께서 이라크 파병 자이툰 부대에 전격 방문했을 때, 취재진을 지원하며 대통령께서 장병들을 격려하다 눈시울을 적시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보았다. 국군통수권자로서 눈물이 아니라 부모님의 눈물로 보였다. 국군통수권자에게 보내는 장병들의 우렁찬 함성이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께서 취임 전에 국방부를 방문했을 때 가까이에서 뵈었다. 또 한 번은 한미연합연습 때 전시 지휘소에서 뵈었다. 모의 전시상황이지만 국군통수권자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무게감이 비쳤다.

2014년 4월, 박근혜, 오바마 대통령께서 한미연합사를 방문했을 때이다. 연합사령관이 양국 정상께 북한 상황을 브리핑할 때 연합사 부공보실장으로서 배석했다. 대통령 뒤에서 매스컴에 나온 것보다 양국 정상이 한반도의 평화를 굳건한 동맹으로 지키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자리에 동참한 것에 의미가 더 컸다.

문재인 대통령을 가까이서 뵌 적은 없다.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관련 지역 협력단장으로서 국군통수권자의 안보 의지를 간접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서주석 국방차관은 갈등의 현장에 일곱 번이나 방문했다. 이때마다 차관을 수행하면서 통수권자의 국방철학을 들었다. 국가안보는 국내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국제관계와도 깊은 관계가 있음을 체득했다.

필자는 지난 30여 년 동안 대통령을 국군통수권자로서만 보았다. 우리 국민들이 마음껏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도록 대한민국을 지켜 온 군인의 한사람으로서 자긍심을 갖는다. 내일 3월 9일은 민주주의 꽃이라는 제20대 대통령 선거다. 자칫 너무 과열되어 꽃을 피우지 못할까 불안하다.

그렇지만 지난 선거운동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대한민국을 위한다’는 뜻은 같다. 다만 표현이 거칠고 달랐을 뿐이다. 막말까지도 나왔지만 ‘대한민국을 위하는 마음’은 같음을 서로 인정하자. 아울러 한반도의 안보 상황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전쟁을 보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살펴보았으면 한다.

그리하면 선거 결과에 흔쾌히 승복할 수 있다. 서로를 기꺼이 포용할 수 있다. 대통령 후보자들은 개인의 영달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왔지 않는가. 이 대의를 생각하며 서로 용서하고 화합하자. 국가통수권자로서 대통령은 지지자만의 대통령이 아니다. 모두의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전병규 kyu9664@naver.com
육군에서 33년 복무하고 2021년 예편했다. 소말리아, 이라크에서도 근무했다. 전역 직전에는 대구, 경북을 지키는 강철사단의 부사단장을 역임했다. 대구과학대학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