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참 못된 질문’이 나오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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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설명할 것이 있다. ‘질문하지 않는 기자’, ‘제대로 질문하지 않는 기자’에 대한 비판이 많다. 일부 비판받아 마땅한 경우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많은 경우 상황에 대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는 설명은 덧붙이고 싶다.

질문은 상대에게 답을 듣기 위해 하는 행위다. 상대가 답하지 않으면 질문은 의미를 잃게 된다. 때문에 보통 취재 상황에선 기자보다 취재원이 상황적으로 우위에 선다. 물론, 상대가 ‘절대로’ 또는 ‘당연히’ 답하지 않을 것이 예상되어서 질문하는 행위에 의미를 두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를 제외하면 (대답 내용은 별개로 하고)상대의 답을 얻어내는 게 기자의 역할이다.

기자 입장에선 가급적이면 상대방이 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련되면 가장 좋다. 수세적 상황은 해소되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자리로 마련됐기 때문에, 취재원은 답하기 싫은 질문에도 어떤 식으로든 답을 해야 한다. 기자간담회, 브리핑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간담회, 브리핑 같은 공식적인 자리라고 해도 한계는 있다. 취재원이 중요 인물일수록 질문을 하려는 기자는 많고 시간은 제한되기 때문이다. 질문 기회는 많아야 2회고, 할 수 있는 질문도 3개를 넘기기 쉽지 않다. 기자들은 제한된 기회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적절한 질문을 해야 한다.

그래서 내 경우엔 가급적 뒷순서에 질문을 하려고 한다. 여러 질문을 준비하고, 준비된 질문을 다른 기자가 하면 남은 질문을 하거나, 앞서 나온 질문에 답변이 미진하다면 보충 질문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한된 기회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나름의 노하우다.

‘못된 질문’도 그 과정을 거쳐 나왔다. 홍준표 의원은 지난달 31일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도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홍 의원은 ‘시정개혁단’을 만들어 1년 동안 대구 시정을 대대적으로 개혁하겠다고 했다. 추가적인 질문이 필요했다. ‘개혁’은 좋은 의미로 읽히지만, 자칫 전임 시장의 시정을 모두 개혁 대상으로 삼아버리면, 계속되어야 할 사업도 좌초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날 그 질문은 하지 못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2대구의료원 건립에 대한 홍 의원의 입장을 확인해야 했다. 경남도지사 시절 진주의료원을 폐원한 그이기에 코로나19 이후 추진되는 제2의료원 건립에 대한 의견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다른 기자들이 제2의료원 건립을 물었다면 ‘못된 질문’은 그날 조금 더 낮은 수위로 이뤄졌을 거다.

‘못된 질문’이 이뤄진 그날도 비슷한 패턴이었다. 이날은 홍 의원이 주요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였고, 자연적으로 시정 개혁을 포함한 여러 정책에 대한 질답이 이어졌다. 홍 의원은 여러 답변을 ‘시정을 인수한 뒤에’ 하겠다며 미뤘다. 그의 별명이 ‘홍카콜라’라는 걸 고려하면, 참 김이 빠지는 답변이었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시정 개혁을 하겠다는 주장은 톡 쏘는 콜라처럼 강조했다.

김 빠진 콜라와 톡 쏘는 콜라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될까? 두 가지 경우로 생각됐다. 시정을 인수한 뒤에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이미 ‘개혁 대상’으로 정해놓고 답을 미루는 것이거나, 개혁을 하겠다는 시원한 주장이 사실은 내용 없는 김 빠진 콜라거나. 그래서 물었다. “시정을 잘 모른다고 반복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어떻게 시정 개혁을 하겠다는건지도 말씀을 부탁드린다”고.

개인적으론 ‘못된 질문’이라는 그의 지적보다 이어진 답변이 더 우려스럽다. 그는 “대구 시정이 침체되고, 피폐되고, 무사안일이고. 그거 대구 시민들이 다 안다”고 힘줘 말했다. ‘침체’, ‘피폐’, ‘무사안일’ 이라는 표현은 모두 추상어다. 구체적인 사실과 정책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국민의힘이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을 비판한 주요 논지가 ‘전임 정부의 모든 것을 적폐시 한다’ 임을 상기하면, 홍준표의 ‘추상적인 시정 개혁’ 방침도 국민의힘이 그토록 비판한 ‘적폐 청산’의 재탕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든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