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속편의 욕심이 무너뜨린 개연성, ‘토르:러브 앤 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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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사막을 걷는 한 남성의 품에 어린 딸이 안겨있다. 죽을 고비의 딸을 보듬고 있는 남성이 찾는 건 신(神)이다. 자신이 아니라 딸을 살리기 위해 물과 식량을 갈구한다. 신은 응답하지 않고 딸은 끝내 세상을 떠난다. 절망하던 그의 앞에 숲이 나타난다. 풍족한 물과 과일은 남성이 숭배하는 신의 것이다. 고통 끝에 신을 조우한 남성은 실망한다. 신은 인간의 고통을 유희로 여길 뿐 사랑과 자비를 베풀 생각은 전혀 없다. 마지막까지 신을 믿었던 그가 ‘신을 버리겠다’고 다짐한 순간 손에는 신을 죽일 수 있는 고대의 검 네크로소드가 주어진다. 남성은 모든 신을 살해하겠다고 다짐한다. 신 도살자 고르(크리스찬 베일)의 이야기다.

<토르:러브 앤 썬더>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출발한다. 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은 고대로부터 많은 종교에서 제기되는 질문이다. 유신론자는 신의 부름에 쓰일 수 있도록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교리를 지킨다. 무신론자들은 신이 실재한다면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는 데 구경만 하진 않을거라며 신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한다. 인간이 고통받을 때 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답을 단정할 수는 없다.

자못 진지한 질문으로 시작한 진중한 분위기는 천둥의 신 등장으로 가벼워진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는 타노스와 전투가 끝난 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합류했다. 새로운 동료들과 모험을 벌이고 새로운 사랑을 찾지만, 그를 떠나거나 목숨을 잃었다. 토르는 마음 한구석 공허함을 달래지 못한다.

토르의 옛 연인 제인 포스터(나탈리 포트만)는 암 투병 중이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인류를 위해 연구에 매진한다. 제인은 가망을 찾으려 노력하지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던 중 묠니르의 주인이 되면 건강을 회복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뉴아스가르드를 찾은 그의 앞에서 묠니르가 복원되면서 새 삶을 얻는다. 제인은 묠니르를 손에 쥐면 ‘마이티 토르’가 된다.

고르는 지구에 있는 뉴아스가르드를 공격하다가 갑자기 신의 자식들을 머나먼 행성으로 납치해 간다. 토르와 마이티 토르 제인, 발키리(테사 톰슨), 코르그(타이카 와이티티)는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신들의 신인 제우스(러셀 크로우)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가 실패하고 고르에 맞선다. 이 과정에서 토르와 제인은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토르:러브 앤 썬더>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토르가 출연한 8번째 영화이자, 토르 단독 주인공 영화로는 4번째다. 1편에서 토르는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다. 무리한 시도를 벌이다가 신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지구로 쫓겨났다. 2편은 토르가 다크 엘프로부터 제인과 아스가르드 왕국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다룬다. 3편에서 토르는 아버지 오딘(안소니 홉킨스)이 발할라로 떠나고 죽음의 여신 헬라(케이트 블란쳇)에게서 아스가르드의 백성을 지키기 위해 행성을 파괴하고 지구로 달아난다.

망치의 힘에 의존하던 토르는 천둥의 신으로 각성한다. 그동안 치기 어린 청년은 어느새 중년으로 성장했다. 앞뒤 가리지 않고 일을 벌이던 토르는 이제 없다. 오딘이 물려준 왕위의 무게감과 책임감이 큰 부담이 된 것이다. 또 역경과 시련을 거치면서 좌절감에 시달렸다. 그 후 왕위를 발키리에게 물려주고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정을 떠났지만, 고르의 침공을 막기 위해 결국 아스가르드의 수호자로서 돌아온다. 책임감을 떨쳐버리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토르: 러브 앤 썬더>에 대한 평가는 기대를 밑돈다. 액션, 웃음, 감동이 배합됐으나, 전작 이상의 재미를 주지 못한 탓이다. 유쾌한 토르와 진지한 고르는 조화되지 않고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 든다. 분위기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고르의 행선지가 작위적이라서다. 고르의 목표는 모든 신을 죽이는 것이다. 신앙의 믿음을 배신당한 대가로 신을 죽이겠다는 이가 향하는 장소는 온갖 신들이 모인 옴니포텐스가 아니라 고작 뉴아스가르드다.

네크로소드는 토르와 연관성이 전혀 없는데, 고르에게 아스가르드로 가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토르, 마이티 토르와 맞붙은 고르는 뉴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납치한다. 이때부터 신을 도살하는 고르와 이에 대적하는 토르의 설정에서 난데없이 아이들의 구조로 서사가 바뀐다. 믿었던 신의 배신과 자녀의 죽음으로 인한 분노에 맞서려면 대립되는 명분과 논리가 필요하다. 이를 찾지 못한 탓일까?

신들의 신 제우스와 황금빛에 둘러싸인 신들의 고향 옴니포텐스는 신들의 도살을 알고도 고르를 막지 않고 외면한다. 아직 자신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위협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위기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위만 좇는 신의 모습은 인간의 이기심과 닮아 있다. 신을 본따 빚은 인간과 전지전능한 신이 다르지 않다는 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충분히 다뤄져 왔다. 그렇다면 신성모독을 피해서도 절규하는 고르에 맞서 신의 존재 이유를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뉴아스가르드의 아이들을 내세워 5편의 여지만 남겼다. 속편에 대한 욕심이 개연성과 설득력을 무너뜨렸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