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계절의 소리를 듣는 공동체, 치유농업공동체 토담토담

치유농업공동체 토담토담 우승연, 승민 공동대표
나의 치유를 모두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과정
연속된 토담토담의 계절···몸으로 느끼는 기후위기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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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에는 살구를 수확하고 옥수수밭 잡초를 뽑았다. 정수리가 뜨거운 계절엔 제철 작물을 수확했으며, 장마가 끝나는 계절엔 배추 모종을 땅으로 옮겨 심었다.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계절엔 땅콩을 수확해 땅콩버터를 만들거나 담가 놓은 포도주를 꺼내 나눠 마셨다.

토담토담의 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보다 섬세하게 나뉘었다. 도시가 보지 못하는 계절과 계절 사이를 이곳에선 몸으로 느꼈다. 밤이 되면 모든 불이 꺼지는 농촌과 몸을 움직여 땀을 내는 농업은 토담토담의 공동대표 우승연(29살), 우승민(26살) 자매를 치유농업으로 이끌었다.

‘치유농업공동체 토담토담’은 흙 토(土)와 말씀 담(談) 자를 써서 자연에서 치유하는 대화의 장이라는 뜻을 갖는다. 농업체험‧대화공동체 프로그램인 ‘계절공동체’, 비건요리 수업 ‘채식구’ 외에도 야외요가, 집단상담 등 여러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3단계에 걸쳐 총 1,000만 원을 지원하는 ‘대구청년 소셜리빙랩’ 최종 단계에 선정됐으며, 올해는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준비하고 있다.

토담토담의 활동 기반은 경북 경산시 자인면이다. 27일 저녁 토담토담의 공동대표 승연, 승민 자매를 자인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월역에서 20분 간격으로 운영되는 990번, 399번을 타고 40분을 가 종점에 내리면 나오는 이곳의 옛 이름은 남을 여(餘), 양식 량(糧) 자를 쓴 여량이다. 넉넉한 먹거리를 생산해왔다고 풀이되는 이곳에서 두 사람은 계절의 소리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토담토담이 만들어지기까지
나의 치유를 모두의 경험으로 확장하는 과정

자매는 코로나19가 확산되던 2020년 전후로 고향인 경북 경산의 아버지 집에 다시 돌아왔다. 승연, 승민 둘 다 20살 이전에 집을 떠났기에 가족 모두가 모여 사는 건 낯설고 어색한 일이었다.

▲토담토담의 활동이 주로 이뤄지는 공간. 동생 승민(왼쪽)과 언니 승연(오른쪽).

승연은 대구, 미국, 서울 곳곳을 옮겨 다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면서 고향에 돌아왔다. 승민은 매여있는 걸 싫어해 충청도, 강원도, 제주도 등 전국을 다녔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 있던 곳은 경기도 광주의 한 리조트 지하 3층 사무실이었다. 밥이 잘 나오고 일도 편했지만 종일 지하에 있다 보니 우울증이 심해졌다. 서먹하던 언니와 카카오톡으로 이야기하다가 일단 집으로 왔다.

승민은 ‘서로의 거리를 이해하게 됐다’고 표현했다. 억지로 좁히려 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아버지랑 빙어낚시를 가거나 마스크를 벗고 동네를 걸으면서 마음이 안정을 찾았던 것 같아요. 축산업을 하는 아버지 자원 안에서 놀다 보니 ‘여기서 뭔가 해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우울증을 오래 앓으시면서 가족 개개인이 상처가 많았거든요. 모여서 대화를 하다보니 서로를 조금씩 알고, 나아가 나를 이해하게 됐어요. 이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토담토담을 기획했죠”

먼저 집에 돌아온 언니 승연은 환경 관련 책을 읽는 모임을 1년 넘게 운영하고 있었다. 평소 창업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환경단체에 들어가는 것보다 좀 더 실천적인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고향에 내려온 승민과 뜻이 맞았다. 2021년 초 초창기의 토담토담 계절공동체 활동은 단발성이었다. 자발적으로 자문위원을 맡은 아버지의 땅과 지인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짜고, 참가자를 모집했다. 자매가 하고 싶은 활동에 초대손님을 모시는 방식이었다.

▲토담토담의 모든 활동은 그 계절에만 할 수 있는 일로 구성된다. (사진=토담토담)

모든 프로그램은 ‘그 계절에만 할 수 있는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건 토담토담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올해 4월의 계절공동체 ‘기다림의 끝’에선 밭을 갈고 감자를 심었다. 트랙터를 타고 벚꽃을 구경한 건 보너스였고 감자전과 막걸리를 먹은 건 필수코스였다. 활동은 주로 아버지나 아버지 지인의 밭에서 하고 있다.

토담토담은 조용히 마을에 스며드는 중이다. 승민은 옆 동네를 지나가다 불쑥 차에서 내려 모내기하는 어르신을 섭외한 적이 있다. 마을 어르신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젊은이들이 왔다며 용돈을 주기도 했다. 자매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는 아버지 역할도 컸다. 함께 상담을 받거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자매와 아버지의 거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승연은 치유농업사 과정을 밟고 있다. “프로그램에 공동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일회성 모임에 그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농업 체험은 다른 곳도 많지만 그 안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하고 치유하는 시간을 갖는 활동은 잘 없어요. 각각의 프로그램에 늘 다른 구성원이 모이기 때문에 ‘오늘 여기서 이 구성원 그대로 모여서 고구마를 캐는 활동은 다신 할 수 없어요. 현재에 집중해주세요’라고 말해요. 그럼 집중도가 올라가고 마음을 열더라고요. 예기치 않게 아이가 오거나 강아지가 참여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에요”

연속된 토담토담의 계절
몸으로 느껴지는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

올해 토담토담은 법인 설립을 준비하면서 프로그램을 정례화하고 있다. 작년 대구시 지원금을 받아 1년의 계절 프로그램을 돌려봤으니, 올해는 본격적으로 토담토담의 활동을 업으로 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무엇보다 토담토담은 두 사람을 조금씩 바꿔놓았다. 승민의 우울증은 여전히 기복이 있지만 더 이상 혼자 버텨야 하는 외로움은 없다. 승연에게 간헐적으로 찾아오던 공황도 줄었다. 여전히 대형마트에 가면 인공적인 불빛에 공황이 오기도 하지만, 아침엔 밝고 저녁엔 어두운 자연스러운 생활 속에서 자매의 우울증은 많이 좋아졌다.

▲캠프파이어, 야외요가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야외에서, 흙 위에서 진행된다. (사진=토담토담)

계절과 계절은 분절되지 않는다.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계절의 변화와 같았다. 이곳에서 손가락 하나로 바뀌는 TV 채널처럼 한순간에 변화하는 건 없다. 기대한 것처럼 자매의 우울이 완전히 나았다거나 많은 수익을 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순 없었지만, 정신 차려보면 지나가 있는 계절처럼 작고 큰 변화는 분명 생기고 있었다.

내년 결혼을 앞둔 승연에게 요즘 관심사는 건강한 삶과 쉼이다. 나를 챙기지 못하던 일상이 가족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발현할지 걱정되면서 부모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 지난해에 이어 승민의 고민은 청년우울 문제다. 자매의 고민이 확장됨에 따라 토담토담의 프로그램도 변화한다.

자매의 공통된 고민은 연속되는 계절 속에서 자연이 변화하는 모습이다. 승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작년과 올해가 달라요. 도시가 구호로 말하는 기후위기가 여기선 일상으로 나타나거든요. 올해는 특히 더위가 일찍 왔잖아요. 작년 6월 초엔 오디를 따서 오디주를 담그는 활동을 했어요. 올해도 그즈음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너무 빨리 시기가 지나가더라고요. 갑작스러운 한파에 갑자기 메밀꽃이 져버려서 프로그램을 변경한 적도 있어요. 책에서 알 수 없던 걸 경험하면서 배우고 있어요”

토담토담의 활동이 주로 이뤄지는 공간은 자인면 행정복지센터에서도 차를 타고 15분 정도 더 들어간 곳에 있다. 사진스팟으로 소개 받은 빈 집터 앞에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었고 주변에는 활동 참가자들이 심고 간 케일과 상추, 옥수수가 한여름 밤바람을 타고 자라는 중이었다. 입추를 앞두고 조용하게 넘어가는 계절 사이에서 자매와 토담토담이 삶을 꾸리고 있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