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한산·행주대첩의 숨은 영웅, 정걸 장군의 팔로워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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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발발 1년 전, 전라좌수사에 취임한 이순신(47세) 장군은 자신보다 31세 연장자이자 대선배인 정걸(78세) 장군을 자신의 조방장(고문)으로 초빙했다.

정걸 장군이 무과에 급제했을 때 이순신은 태어나기 1년 전이었다. 그는 전라좌수사, 경상우수사 등을 역임한 백전노장임에도 까마득한 후배 이순신을 상관으로 모시고 불패의 신화를 창조하는데 함께했다.

요즘 누구나 리더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리더를 리더답게 만드는 팔로워십은 리더십만큼 중요하다. 필자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연구해왔음에도 충무공을 보좌한 정걸 장군의 팔로워십을 잘 몰랐다. 정걸 장군에 대해 알면 알수록 리더십만큼 팔로워십도 중요함을 절실히 깨닫는다. 이것을 정걸 장군이 430여 년 전에 보여주었다.

임진왜란 발발 1년 전, 정걸 장군과 이순신 장군은 만나자마자 30년 세월의 벽을 단번에 무너뜨렸다. ‘왜적이 곧 침략할 것이다’는 확신을 공유했기 때문이다. 건물이 무너질 것 같을 때, 대부분 사람들은 대피 외엔 생각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건물 주인은 다르다. 어떻게 하든지 사람들이 안 다치게 하려고 동분서주할 것이다. 두 사람은 건물 주인처럼 절박한 심정을 가졌으니 벽이 있을 수 없었다.

정걸 장군은 전라좌수사의 자문에만 응하지 않았다. 임무를 찾아 나섰다. 지난 30년 동안 군 복무를 하면서 겪은 시행착오를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다 쏟아 놓았다. 1555년 을묘왜변 때 당시 왜구가 전남 바다에 출몰했을 때 목숨을 걸고 왜선을 격파하면서 전술과 취약점을 알았다. 이 경험을 토대로 판옥선을 더 튼튼하게 개조했다. 포의 사거리를 늘리고, 거북선을 건조하는데도 관여했다. 당시 후배들에게 ‘꼰대’소리 안 들으려고 얼마나 조심조심했을지 그려진다. 거북선 건조를 맡은 나대용 군관의 기를 북돋우면서 도왔을 것이다.

▲1555년 정걸 장군이 처음으로 건조해 사용한 조선의 판옥선 [사진=자유이용 저작물]

임진왜란 초기, 후배들이 왜적과 첫 전투를 앞두고 머뭇거리자 과감하게 옥포해전에 뛰어들었다. 한산대첩에선 왜적과 근접해서 싸우며 부상 투혼을 발휘했다. 79세 백전노장이 왜적과 지근거리에서 싸우는데, 함께한 장병들의 충천한 사기를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이후, 3도 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충청바다를 지키는 충청수사로 정걸 장군을 천거해 보직되자, 그는 인접 경시수사와 의병들과도 긴밀하게 협조했다. 오직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일념에서였다.

그 결과, 1593년 2월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적과 싸울 때 정걸 장군은 경기수사와 함께 판옥선 2척에 화살을 가득 싣고 지원했다. 행주대첩을 이루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다. 그는 충청수사에서 물러난 뒤에도 한산도에 머물며 이순신 장군을 도왔다. 정유재란 때 이러한 DNA를 이어받은 아들 연과 손자 홍록까지도 왜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백전노장 정걸 장군의 팔로워십은 지금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의 팔로워십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함경도에서 11년과 전라도와 경상도 바다를 지킨 20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체득한 것이다. 그랬기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30년 후배 장군을 보좌하면서 손자뻘 되는 장병들과 함께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팔로워십을 보기가 어렵다. 헌신적인 팔로워십을 유발하는 리더십도 보기 어렵다. ‘리더는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다’라는 말이 있다. 리더의 모든 것이 팔로워에 노출되어 있음을 강조한 말이다. 이제는 팔로워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는 정보통신의 발달로 그 누구일지라도 실시간에 공개된다.

어쩌면 리더와 팔로워 구분이 없을 것 같다. 과거 리더가 조정경기에서 방향타를 잡는 사람이라면 현재 리더는 래프팅에서 맨 선두에 선 사람이다. 급류를 타고 내려오는 래프팅은 바위에 부딪히다 막 돌면서 내려온다. 그때 맨 앞에 있는 사람이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는 래프팅의 예처럼 누구나 리더이고 팔로워이다.

정걸 장군을 보면 리더이든 팔로워이든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선한 목적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특히 국민의 피와 땀이 서린 세금을 운용하는 공직자들은 그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개혁의 주체’가 ‘개혁의 대상’이 되고 만다.

공직자는 오직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하며 달려가야 한다. 온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어떤 공직자가 진심으로 국민을 위해 달리는지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처럼, 정걸 장군의 팔로워십처럼 실천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