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선우] 재밌는 설정, 놓친 통찰 ‘왓 위민 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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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기획자 닉 마샬(멜 깁슨)은 승진을 앞두고 있다. 한껏 기대를 품고 회사에 출근하지만, 상사는 그를 외면한다. 닉이 승진에서 미끄러진 이유는 유력한 소비자인 여자들의 마음을 모른다는 것 때문이다. 그는 남성우월주의를 선호하는 바람둥이다. 여성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탓에 아내와 이혼하고 딸과 사이 역시 원만하지 않다.

그런 닉 앞에 직장상사 달시 맥과이어(헬렌 헌트)가 나타난다. 여성 직장상사도 달갑지 않은데, 달시는 직원을 모아 여성고객을 대상으로 여성용품 연구를 권한다. 그날 저녁, 잔뜩 술에 취한 닉은 여성이 되어보려고 여성 용품을 사용한다. 그 과정에서 닉은 헤어드라이기가 물에 빠져 감전사고를 당하고, 여성들의 속마음을 들을 수 있는 초능력이 생긴다.

닉은 이내 여성들의 마음을 휘어잡기 위해 초능력을 마음껏 사용한다. 마음에 드는 여성과 데이트에 성공하고 달시를 끌어내리기 위해 그녀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렇게 속물적인 모습만 보이던 닉도 우여곡절을 겪으며 진심으로 여성을 이해하면서 딸이나 달시와도 새로운 관계가 형성된다.

<왓 위민 원트>는 여성 감독 낸시 마이어스가 두 번째로 연출한 영화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에는 ‘여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남자’라는 설정이 독특했다. 닉이 여자의 마음을 읽게 되면서 겪는 에피소드는 꽤 코믹하다. 하지만 영화는 통찰력을 담지는 못하고 진부한 로맨틱 코미디에 머물고 말았다. 영화처럼 여자의 마음이 단순하진 않기 때문이다. 여성용 영화를 표방하지만 시종일관 닉과 팽팽하게 대립하던 달시가 ‘속물’로 낙인찍힌 그에게 단번에 넘어가는 부분도 설득력을 잃는다.

기억에 남는 것은 닉과 달시가 만든 영화 속 나이키 광고다. ‘달리기 전 거울 앞에 서보지 않듯이 당신이 어떤 옷을 입든 길은 신경 쓰지 않는다. 농담을 듣고 웃긴 척을 할 필요도 없다. 섹시한 복장이라고 해서 달리는 것이 더 쉽지는 않다. 길은 당신이 립스틱을 바르지 않아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당신의 나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당신은 길보다 더 많은 돈을 벌기에 길 앞에 당당하다. 그리고 언제나 원할 때면 길을 찾는다. 데이트한 지 하루가 지났든 몇 시간이 지났든 상관이 없다. 길이 신경 쓰는 건 오직 당신이 이따금 찾아와 준다는 것이다. 나이키, 게임이 아닌 스포츠다.’

손선우 전 영남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