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시민의 정치 무한도전, 권영국과 사람들

권영국 선거운동본부에는 사람냄새가 난다

18:43

12일 선거운동이 막을 내리는 날. 오후 9시경, 마지막 힘을 짜내 경주시 황성동 배스킨라빈스 네거리에서 신명 나게 유세를 펼치는 권영국 선본을 보고 한 시민이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교복 차림의 딸과 함께 한참을 서서 연설을 지켜본 참이다. “즐거워 보인다. 집에 가야 하는데. 계속 말을 듣게 된다. 맞는 말 같다.”

전야제가 된 마지막 유세. 운동원이 네거리를 마름모꼴로 둘러쌌다. 검은 도시에 개나리 빛깔 장(場)이 펼쳐졌다. 퇴근하고 나온 시민, 장보고 돌아가는 주부가 손뼉 치며 환호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은 운동원 사이에 끼어 같이 춤을 췄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구호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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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무모한 도전이었을지도 모른다. 당락으로만 따진다면. 어쩌면 수많은 성공인지도 모른다. 고개 끄덕인 사람의 수만큼. 가진 것도, 기반도, 경험도 없이 총선에 뛰어들었다. 얼마만큼 성공을 거뒀을까. 무모한 도전이 남긴 과실은 무엇일까. <뉴스민>은 수십 일 경주 바닥에 몸을 던진 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수행비서 이종표 씨
“즐거웠다. 변화에 대한 시민의 갈망을 봤다”

이종표 씨는 눈물을 보였다. 선거 운동을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다면, 권 후보에게 더 잘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컸다. “만감이 교차했어요”.

경주시의원 역임, 두 번째 도전에서 근소한 차이로 탈락한 이 씨. 이 씨는 권 후보가 선거운동을 진행하면서 보수적인 경주의 특수성을 바꿔내지 못한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만큼 절실했다. 절실한 만큼 시민들도 반응했다. 조금만 더 할 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크다.

이종표 씨
▲이종표 씨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회활동도 열심히 해야겠어요. 그렇지만 의미도 있습니다. 선거를 통해서 경주 지역의 많은 사회단체와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함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어요. 그리고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바꾸자는 취지 아래 시작한 것이라서요. 권 후보가 와서 알려낸 것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변화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도 봤습니다.”

희망은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염원이었다. 13일 어떤 결과를 보더라도 이 씨는 “정치든 운동이든 어떤 형식으로도 경주에서 신중하게, 차곡차곡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비록 정치가 ‘혐오’ 대상이 되었다 하더라도, 수도세 하나, 전기세 하나 결정하는 것도 정치이기 때문이다. 이 씨는 시의원 생활 속에서 몸으로 깨달았다.

“정치는 우리 가까이에 있어요. 모든 것의 터미널은 정치입니다. 앞으로 작은 부분이라도 실천해나가는 정치활동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번 선거는 나에게도 권 후보에게도 큰 배움이 됐습니다”

택시기사 정준호 씨
국회의원 출마 노동자···“택시기사의 감을 보라”

정치는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라고 했던가. 정준호 씨는 택시 기사다. 재미삼아 물어봤다. 이번 권 후보 득표율은 얼마로 보십니까?

“14% 예상합니다. 이 정도라도 엄청난 성과입니다. TK에서 정당도 기반도 없이. 기간도 짧았고···어쨌든 얼마나 이 지역에서 그다음을 생각할 수 있는 정치적 토대를 넓혔느냐가 중요합니다”

정 씨는 대구 사람인 기자에게 경주 사람들의 정서도 알렸다.

“TK 정서가 있지만, 그래도 김석기 찍는다고 얘기하기는 창피스러워합니다. 후보감이 안 되잖아요. 공천받은 게 다인데. 택시 타고 들어보면 알아요. 새누리당 지지해도 남들 앞에서 김석기 찍는다고 말하기는 창피스럽다는 게 바탕에 깔렸어요. 택시기사들도 김석기 찍을 바에야 안 찍겠다는 사람도 많아요”

정준호 씨
▲정준호 씨

그의 정치 지론은 현장 노동자가 직접 정치하는 것이다. 어려운 말로는 ‘정치세력화’. 이를 위해 그는 과거 국회의원에 출마하기도 했다.

정 씨는 이번 선거를 지켜보며 정당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찍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봤다. 반면, 선거 기간이 짧아 더 많은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권 후보를 통해 지역 여러 단체가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며 함께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풍산금속 해고자 정종길 씨
“권 후보, 정의에 미친 사람···내보다 인물은 못해도”

정종길 씨는 풍산금속 해고자다. 권 후보와 같이 투쟁하다 해고됐다. 이후에는 농사를 지었다. 농사꾼의 여유일까? 다소 퉁명스런 말투에도 유머가 묻어났다.

“권 후보, 내보다 못생겼어. 기타도 못 치고. 그런데 불의라든가 독재에는 광분하는··· 미친놈이라고 볼 수 있지. 머리도 좋고. 한 10년 앞은 내다보고 있어. 권 후보는 87년 원산 공장에서 노조 하다가 발각돼서 내가 있던 안강공장으로 쫓겨났어. 거기서 다시 노조를 만들었지. 나중에 생긴 안강의 노조는 기존 원산 본조와 충돌했어. 회사와 독단적으로 단협 체결해서···그렇게 투쟁하다 둘 다?잘렸지”

정 씨에 따르면 경주지역은 여러 단체·사람들의 역량이 분산된?곳이다. 노조 조직률은 높은 편이지만, “개별적으로 탄압받은 적은 있어도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사람들이 흩어져 있었다”고. 그런 의미에서 권 후보가 경주에 온 것은 “여러 민주 세력이 함께했다는 중요한 의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정 씨는 이런 의미를 살려 앞으로도 힘을 하나로 모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쉬운 게?많아. 경험하지 못한 것이 많았고. 우리는 다 부족했으니까. 우리의 한계를 확인했어. 우물 안 개구리였고. 우리끼리도?터놓고 이야기 못한 아쉬움도 있어. 이런 한계를 확인하고 앞으로는 다시 하나의 힘을 만들어가야겠지”

경주 여성노동자회 회장 윤명희 씨
섬유공장 노조 하다 해고···”괜찮은 일꾼 왔다”

윤명희 씨도 해고 노동자다. 86년 삼도물산 섬유노동자였던 윤 씨는 노동조합 활동으로 해고됐다. 대우어페어럴 투쟁 당시 구로공단 ‘연대 투쟁’에 나선 윤 씨는 이후 대공과 조사를 받고 해고됐다.

해고에 반발해 노조원들이 합법적 절차를 밟지 않고 파업했다. 그 이유로 구속됐다. 낙인 때문에 어딜가나 어려웠고, 90년대 접어들어 다시 경주로 왔다. 정당운동, 여성운동도 했다. 여러 활동에서 한계를 느끼던 차, 권 후보가 경주 출마를 고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윤 씨는 대뜸 ‘권 후보 경주 유치’ 분위기를 만들었다.

“권 후보 풍산금속 당시 감명받았어요. 그런데 서울로 올라가길래 아쉬웠는데, 소식을 들어보니 여러 곳에서 자기 운동을 하는 게 보여서 좋았어요. 그런 권 후보가 다시 경주에 온다니 우리가 같이해야 한다고 내질렀죠.”

윤명희 씨
▲윤명희 씨

윤 씨 스스로도 이번 선거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동시에 큰 행운이었다고 한다. 부족함을 확인하고, 여러 사람이 함께한 경험도 중요했다. 민주노총이 혼신을 다해 운동하는 걸 보니 자신도 덩달아 열심히 하고 싶어졌다고 한다.

“권 후보가 경주에서 노동을 이야기했어요. 그 전에는 그런 말을 민주노총만 외롭게 했거든요. 선거에서 권 후보가 당당하게 말했어요. 이제 사람들의 마음을 모은 이곳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그게 작은 것이 되더라도요. 무리하지 말고 이제 함께해야 합니다”

왕년 호텔 프론트 보던 김우식 씨
“시행착오하고, 거기서 배우면 됩니다”

마지막 인물은 김우식 씨다. 지금은 민주노총 경북본부에서 일하지만, 첫 직장은 서울 로얄호텔 프론트에서 일했다. 주특기는 일어, 영어와 중국어도 능통하다. 그런데 노조 활동을 하다 해고됐다. 터가 안 좋았다. 호텔이 그 시절 명동성당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노조활동은 말할 것 없이 어려웠다. 여관에서 몰래 회의하고, 조합 활동도 숨어서 하는 시절.

90년도 중후반, 경주로 내려왔다. 이종표 씨를 만나 결혼했다. 이들은 ‘집에 쌀 떨어진 줄도 모르고’ 권 후보 선거 운동에 몰입했다. 매사에 꼼꼼한 성격. 돈 관리에 철저한 습관은 선거 운동에서도 소금 역할을 했다. 식당에서도 1식 식비를 맞추려 국수 한 그릇만 먹는다. 김 씨는 권 선본의 이번 선거를 ‘사공이 많아 호흡이 잘 안 맞았던 게 있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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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식 씨

“하긴 권 후보만 보고 모두가 모인 것도 아니다. 나는 경주 지역 민주노총의 진로에 사활이 걸린 시기라고 본다. 그래서 참가했다. 여러 생각을 가진 사람이 왔다.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한때는 의사소통이 잘 안 돼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이 이해타산을 따지지 않고 결국 함께 마무리했다. ‘뻔한 정답’이라고나 할까.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 12일 선거 운동을 마치고 김 씨는 건배사로 “우린 이미 과정에서 승리했다”고 말했다.

“여러 시행착오를 확인하고, 다음을 기약할 때는 번복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번은 여러 사정이 최악이었어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문제 될 일이 아닙니다. 큰 기대를 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선거운동을 돌아보면 계면쩍기도 하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김 씨보다 더 열심히 한 사람이 많아 보였기 때문. “한 날은 문자 많이 돌렸다고 자랑했더니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이 했더라고요.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어요. 허허허”

“다 흩어져 살다가 이번 선거로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만났는데. 그것도 좋았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이제 하나로 모였으면 좋겠네요. 함께 모여서 힘을 내야죠. 앞으로가 중요합니다”

권영국 선거운동본부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권 후보 선본에는 사람이 있다. 사람 냄새가 난다.

마지막 유세를 앞두고 바람잡이 역할을 맡은 정진홍 금속노조 경주지부장이 말했다. “시작이 곧 결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길을 만들어가는 책무를 다했다···이제 희망을 만들어가자”

권 후보도 답했다. “정치란 권력에 맞서 시민과 함께하고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권력을 탐하지 않고 권력과 맞짱 뜨겠다”

이처럼 권 후보 선본의 도전은 ‘권력 없는 이들’이 모여 ‘권력과 맞짱 뜨는’, 없는 자들이 지펴 올린 변화의 ‘밑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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