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알기를 거부하는 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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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偏見)에는 좋은 편견과 나쁜 편견이 따로 없다. 편견은 근거 없는 판단과 적대 감정으로 이루어진 태도이며 믿음이다. 그런데도 타 인종이나 종교에 대한 편견은 떳떳할 뿐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나라)과 전통을 지키는 숭고한 행위로 둔갑하기도 한다. 유럽 내의 유대인을 말살하려고 했던 나치가 그랬고, 흑인에게 공공연히 린치를 자행했던 KKK단이 그랬다. 인종적 편견에서 출발했던 반유대주의와 흑인 차별은 제노사이드와 짐 크로법(Jim Crow law)을 낳았다.

심리학자들은 이방인을 범주화(=일반화)하고 외부인에 적개심을 갖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버릇이라고 말한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기압계 수치가 떨어지면 비가 올 것이라 예단하고 우산을 챙긴다. 거리에서 성난 개가 달려들면 ‘미친 개’로 범주화하고 피한다. 병에 걸려 의사를 찾아가면 의사가 우리를 어떠한 방식으로 대하리라 예상한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경험을 예외 없이 범주화하며, 질서 잡힌 삶은 범주화 과정에 의존한다. 또 사람들은 자기 종족과 짝을 맺고, 동종의 무리 속에서 먹고 놀고 거주한다. 사람들은 자기 종족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예배하고 싶어 한다. 이와 같은 습관적 결합은 대부분 편리하기 때문인데, 그만큼 이방인은 부담스럽다. 인간은 범주화와 동류(동족) 안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문제는 이방인에 대한 범주화가 항상 과잉 범주화라는 것이다. 민족적 특성을 소재로 삼은 허다한 농담들도 여기에 기반한다.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했다. 선장은 사람들을 어떻게 바닷속으로 뛰어들게 할지 고민했다. 미국인에게는 입수하지 않는 것은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프랑스인에게는 입수는 멋지다고 말했다. 독일인에게는 입수는 명령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는 서양인을 이기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웃음은 대상과의 밀착이나 연상에서 일어나지, 대상과 떨어지거나 연상에 실패하고서는 생겨나지 않는다. 저 농담을 들으며 당신이 네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다면, 저 농담이 당신이 알고 있는 네 나라 민족의 특성을 다시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농담과도 같은 과잉 범주화가 현실에서는 흉기가 된다.

탁구에서는 탁구대 끝 모서리를 살짝 스치며 불규칙하게 떨어지는 공을 에지볼(edge ball)이라고 한다. 그런데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 에세이스트 서경식에 따르면, 한때 일본에서는 에지볼을 ‘조선커트’라고 불렀다고 한다. 일본 학생들은 서브를 넘길 때 “자아, 내 공 한번 받아보라구. 이번엔 조선커트로 간다”라고 하거나, 상대의 스매싱을 받아치지 못했을 때, “야아, 치사하게. 조선커트잖아”라고 불만을 토했다. ‘조선’은 만사가 공정하지 못한 것, 조잡한 것, 어딘지 뒤끝이 씁쓸한 것, 볼썽사나운 그 무엇을 가리키는 대명사였기 때문이다. 과잉 범주화는 편견으로 굳어지고, 편견은 더 이상 알려고 하는 열정을 가로막는다.

일본의 혐한단체로 악명 높은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는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은 물론이고 일본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의 시민적 권리를 부정하고 공격한다. 이들과 대구 대현동 이슬람 사원 건립을 반대하는 일부 한국인은 다를까? 재특회는 조선인학교 교문에서 확성기로 이렇게 소리친다. “범죄 조선인.”, “조선 야쿠자 나와라.”, “북조선 스파이 양성기관.”, “밀입국자 자손이 아니냐.”, “약속이란 인간끼리 하는거다. 조선인과는 약속이 성립되지 않는다.”, “김치 냄새 난다.” 이 구호는 이슬람 사원 건립을 반대한다면서 삶은 돼지머리를 공사 현장에 놓아둔 이들의 구호와 발상이 비슷하다.

고든 올포트는 『편견』(교양인,2020)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 분야의 고전에서, “편견은 단지 특정 집단에 관한 특정 태도가 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전반적인 사고 습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종적ㆍ종교적 편견을 가진 이들은 이 문제에서만 아니라 인지 작용 전반에서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며 “내집단과 외집단의 구분을 강조”한다. 어떤 문제에서든 비관용적이고 보수적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