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사이코패서 감별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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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기영이 과거에 고양이를 수영장에 빠뜨리며 즐거워했던 영상이 공개되면서, 흉악 범죄자와 동물학대의 연관성이 화제가 되었다. 사이코패스에 관한 책들은 사이코패스의 특성으로 하나같이 동물학대를 꼽는다. 자신의 이름을 딴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로 유명한 로버트 D. 헤어는 『진단명 사이코패스: 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바다출판사,2005)에서 대부분의 사이코패스는 유년기 시절에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동물학대를 했다고 말한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는 프랑스의 정신과의사 필리프 피넬(Phillipe Pinel,1745~1826)이 처음 시작했다. 그는 철저하게 잔혹하고 자제력이 완전히 결여된 행동패턴을 ‘정신착란 증세 없는 정신 이상’이라고 정의하고, ‘일반인들이 저지르는 범죄와 구분했다.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가 19세기 초부터 시작되었던 것과 달리, 동물학대 연구는 역사가 짧다. 동물학대는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양태가 충격적인데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동물학대의 중요성이 외면되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인간에 비해 동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인간중심주의다. 인간 사회에는 동물학대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클리프턴 P. 플린은 『동물학대의 사회학』(책공장더불어,2018)에서 동물학대는 동물에게만 국한되고 마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폭력으로 연결되는 인간 사회의 문제라고 말한다. 또 가정폭력이 폭력 성향을 가진 남편의 개별 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사회의 관행과 연관되어 있듯이 동물학대 역시 사회적 맥락을 갖고 있다. “동물학대는 개인의 특성만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사회제도나 문화적 규범 등을 포함한 사회적 요인까지 함께 검토함으로써 사람들이 왜 동물을 학대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동물에 대한 고의적인 방치, 가해, 고문, 살해는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동물을 학대해 본 적이 있는 사람과 한 번도 동물을 학대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비교한 연구에서, 동물학대를 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강도ㆍ절도ㆍ방화ㆍ위협 등 반사회적 행동을 더 많이 저질렀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 성폭력살인범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성폭력살인범들은 예외 없이 동물학대를 저질렀다. 동물학대를 한 적이 있는 학생은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아동 체벌에 더 관대하며, 남편이 아내의 뺨을 때려도 괜찮다는 태도를 보였다. 학생들이 귀띔해준 두 가지 사항은 동물학대와 가정폭력이 함께 일어난다고 암시해준다. 아동기에 동물학대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소년은 여성ㆍ아동ㆍ동물 모두에게 폭력적이게 된다.

동물에 대한 폭력은 젠더화되어 있다. 남성의 아동기는 여성에 비해 더 많은 동물학대를 저지를 뿐 아니라 동물학대를 더 많이 목격했다. 동물학대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성차는 남성성과 남성의 사회화가 지배와 공격성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0대 소년은 자신의 남성다움을 증명하기 위하여, 또래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하여, 사회적 또는 개인적인 박탈감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동물을 학대한다. 반면 여성의 동물학대는 폭력의 형태가 아닌 호딩(hoarding)의 형태로 나타난다. 과도한 수의 동물을 기르면서 동물을 열악한 환경에 방치하게 되는 애니멀 호딩(animal hoarding)은 역설적이게도 여성의 모성본능이나 파트너와 사별한 후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지 않으려는 생활방식에서 비롯한다.

사이코패서는 이상성욕범죄자나 연쇄살인범 속에서만 발견되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을 좌우하는 사이코패서는 모두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다. 변호사ㆍ의사ㆍ정치인ㆍ사업가ㆍ증권분석가ㆍ예술가ㆍ언론인 등등, 사이코패서는 어디에든 있다. 동물학대자는 반드시 피해야 할 사이코패서가 맞지만, 개나 고양이의 반려인이라고 해서 사이코패서가 아닌 게 아니라는 것이 사이코패서 감별의 어려움이다. 열일곱 명의 소년을 성폭행하고 죽인 제프리 다머는 오로지 자신이 키운 개에게만 인간적인 감정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