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규 칼럼] ‘굼벵이 장교’가 ‘번개 참모’로 변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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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 뒤에는 밝은 태양이 빛나고 있다. 태양이 빛나는 한 먹구름은 곧 지나간다. 누구나 한 번은 먹구름 같은 캄캄한 시련을 만날 수 있다. 인생길에서 어둠이 몰려올 때 옆에 있는 동료에게 힘든 상황을 속 시원하게 말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먹구름 뒤에 있는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다. 태양을 보는 순간 희망의 빛을 품는다. 이 빛이 어둠을 몰아낼 것이다. 빛을 이기는 어둠은 없다.

▲먹구름에 가렸던 태양 [사진=전병규]

사람 인 ‘人’ 자는 둘이 기댄 모습이듯이 사람은 서로 기대면서 살아가는 존재이다. 혼자 2m 넘는 큰 수저로 밥을 떠먹을 수 없다. 두 사람이 서로 떠먹여 주면 가능하다. 동화이지만 진리이다. 서로 도우면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필자는 1999년 육군 9사단에서 참모로 근무할 때 개인적으로 뼈아픈 경험이 있다. 혼자서 문제를 껴안고 끙끙 앓다가 급기야 심한 피부병까지 걸렸다. 일반대학원에 위탁교육을 마치면 통상 방학(휴가)을 보내고 보직 받은 부대로 복귀한다. 그런데 근무할 9사단에서 미리 와서 근무하기를 원하여 인사 명령과 달리 1개월 먼저 근무했다.

정식 보직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근무하느라 사단장께 중요 사안일지라도 적시 보고하지 못했다. 사실 휴가 중에 근무하기에 칭찬받을 줄 알았는데 질책을 받으니 의욕을 다 잃어버렸다. 이런저런 사정을 사단장께 말씀드리면 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혼자 속앓이했다. 지금은 ‘전설의 고향’ 같은 얘기지만 그때는 그랬다.

이 무렵 설상가상으로 함께 사셨던 어머님께서 위독하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하셨다. 갓 태어난 둘째도 원인 모를 병으로 서울 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야간에 혼자 세브란스 병원과 아산병원에 들렀다가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사무실 소파에 뻗어 버리곤 했다.

파김치가 된 몸으로 아침 상황 보고에서 업무 파악을 잘못해 참모장에게 숱하게 혼나기도 했다. 함께하는 부서 장병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이러한 악순환은 피부병을 불러왔다. 얼굴에 붉은 반점까지 생겨나 대인기피증까지 겪었다. 결국 굼벵이 장교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실무진이 사단장께 필자의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사단장은 매사에 철저히 규정 준수를 강조했다. 담당 실무진은 자초지종을 차마 보고 할 수 없었다. 돌아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어느 전우가 사단장께 소상하게 보고를 한 것 같다. 그간 고생한 만큼 깊은 신뢰로 보상을 받았다. 또한,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절하게 깨달은 계기였다.

덕분에 2005년 전방 5사단에서 근무할 때 ‘번개 참모’라는 별명을 얻었다. 9사단에서 체험한 ‘불통’의 뼈아픈 체험이 보약이 된 셈이다. 상하동료 간 두루 잘 소통했다. 지휘관도 이런 모습을 좋게 보았던지 필자에게 파격적인 권한을 위임해 주었다. 소통은 협력과 비례했다. 추진하는 업무마다 인접부서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상하동료들은 먹구름 뒤에 빛나는 태양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도움으로 한때 ‘굼벵이 장교’가 졸지에 ‘번개 참모’로 불리게 되었다.

먹구름 뒤에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다면 어떠한 시련도 이겨낼 수 있다. 태양이 빛나는 한 먹구름은 곧 사라진다. 자신에게 먹구름이 몰려올 때 누군가와 터놓고 얘기해 보라. 어쩌면 소통하는 과정에서 먹구름 뒤에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다. 빛나는 태양은 희망의 빛이다. 요즘 앞날이 어둡다고 한다. 힘들어 지친 사람에게 소통의 힘으로 희망의 빛을 보여 주자. 그가 희망을 잡는 순간 그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