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두 집 살림’, 서울공화국과 변경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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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쥐와 시골 쥐’ 애니메이션 장면을 보고 손뼉을 탁 쳤다. 어떤 경우에는 복잡한 논증보다는 간결한 직관이 더 심층부에 닿곤 하는데 딱 제격으로 들어맞는 경우다. 특히 본 작품에선 인용한 동화에서 부모님 말씀 알고 보면 전부 지당했다는 지극히 교훈적 결말을 채택하는 대신, 평소에 가져보지 못한 것, 누려보고 싶은 것에 대한 동경이 앞선 나머지 낯설기 짝이 없는 도회지에 대한 두려움을 뛰어넘어 화려한 도시로 향하는 시골 쥐의 심경을 발췌 편집해 선보인다. 한국말로 더빙된 해당 장면에서 엄마 쥐의 간곡한 설득을 외면한 채 위험천만한 도시로 떠나겠다고 폭탄선언을 던지는 시골 쥐의 풍경은 자연스럽게 주인공의 이후 행보로 연결되는 구성을 취한다. 김보미 감독의 자전적 경험담을 재구성한 단편 다큐멘터리 <두 집 살림>의 시작이다.

▲영화 ‘두 집 살림’ 스틸이미지

◆ 무엇을 위해 시골 쥐는 위험한 서울로 향하는 걸까

영화는 대구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마친 주인공이 서울로 상경한 이후 겪게 되는 경계선상의 삶을 다룬다. 서울로 상경해 취업과 독립을 꾀하는 (시골 쥐 포지션인) 주인공은 운수 좋게 주거지원도 받은 덕분에 고시원 라이프를 면한다. 주거문제도 해결했으니 취업스펙 쌓을 겸 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서울생활을 본격적으로 개시한다. 외관상으로 보자면 그럭저럭 제법 순탄한 유학생활인 셈이다. 하지만 외형상 보이는 조건이 전부일 리 없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는 주인공 ‘의식의 흐름’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화면에 선보여지는 당사자의 상황은 썩 좋아 보이진 않는다. 초반부터 셀프카메라로 주인공은 고대의 도량형 측정기준을 재연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바로 손바닥 측량이다. 한 뼘 한 뼘 그는 자신의 방구석 면적을 측정하기 시작한다. 딱히 측량이라 할 것도 없다. 몇 번 손바닥을 옮기지 않아도 비좁은 공간은 금방 측정이 가능하니 말이다. 그렇게 사방 꽉 막힌 답답한 사각형 큐브 안에 갇힌 것 마냥 주인공에게 부여된 (이 정도면 ‘중박’은 된다는) 주거공간은 침대에서 세탁기나 냉장고 문을 여닫을 수 있는 사이즈다. 실제로 그것이 가능함을 주인공은 시연해 보이기도 한다.

▲영화 ‘두 집 살림’ 스틸이미지

그렇게 주인공이 처한 물리적 상황을 보여준 뒤에는 다소 빤한 상투적 묘사가 이어진다. 냉장고엔 상해서 흐물흐물해진 슬픈 운명의 오이와 4캔 1만원 편의점 맥주만이 횅하게 자리해있다. 그는 맥주를 들이켜고 냉장 보관한 오이도 썩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고 독백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고 독립생활은 만만찮은 통과의례를 요구하는 중이다. 주인공은 동물원에 갇힌 대형 동물이 앞뒤로 왔다갔다 반복하며 정형행동을 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몸부림과 휴대전화를 향한 집착을 이어간다. 별로 길지 않은 상황 묘사에도 보는 이들의 숨이 턱 막히는 풍경이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은 시골 쥐의 충동적인 상경 동기와 자신의 상경 과정이 별반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자조한다.

물론 기회는 지방에 비해 서울에 활짝 열린 게 맞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바늘구멍 같은 기회를 움켜쥐고 서울에서 살아간다는 게 행복과 자아실현에 들어맞는 걸까? 주인공은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물론 본인 스스로 지방에서는 자신의 꿈을 펼칠 무대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절실히 체감했기에 주인공의 번민은 단순히 서울 와 보니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는 걸 뒤늦게 깨닫는 부류와는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그렇게 악착같이 고생해서 취업하고 기회를 얻어내는 세속적 성공기준이 온전히 자신이 원하던 것인가 의문은 점점 깊어만 간다.

◆ 개별적으로 체감하는 지방의 위기를 보편화하려는 시도

▲영화 ‘두 집 살림’ 스틸이미지

여기에서 주인공(이자 감독)은 두 번째 발췌 영상 삽입을 활용해 본인의 개인적 방황을 사회적 의제와 접속하려 도전한다. 이를 위한 방편으로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 <명견만리>에서 “지방의 위기” 편을 가져온다. 해당 영상은 대부분의 한국사회 구성원들이 인지는 하고 있지만 둔감해진 사실관계 관련 환기하는 임무를 소화한다. 대구와 서울의 일자리 기회가 구체적인 데이터 수치로 비교되고 이 수치를 확인한 지역 대학생(그중에는 주인공도 포함되어 있다)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관계 체크가 이어진다. 모두가 알긴 하지만 체감수준은 각자 달랐던 수도권의 일자리 기회 편중이 다시 한번 경각심을 선사한다. 그래도 국내 4번째 대도시인데도 격차는 상상을 가뿐히 초과할 만큼 극단적이다. 다소 편의적으로 이미 검증된 영상 이미지를 활용하는 방식은, 중간에 언뜻 선보이는 주인공과 지인들의 대화 장면 등이 조금 더 강조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해당 지점에 대해 주인공은 더 극심한 악조건에 처한 ‘아래’가 존재함을 부인하지 않는다. 화면 속에는 본인의 ‘스펙’이 정직하게 숨김없이 공개되는데, 이게 딱 경계선상의 아리아…가 아니라 중간에 딱 ‘낀’ 형상이다. ‘지ㆍ거ㆍ국’이라 속칭 표현되는 지방거점국립대학교 중에도 상위권의 비교적 인기 높은 전공학과 출신이다. 사회적으로 선망되는 직종인 언론방송계 지망생인데다 서울 주거문제도 해결된 조건이다. 누군가에겐 질시의 대상이자 ‘배부른 소리’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도 명확히 직시한다. 대구광역시만 해도 대구경북권의 광대한 영역에선 ‘기득권’으로 통하기에 모자람이 없으니 말이다. 예전에 본인이 참여했던 지역 영화제에서 소위 ‘SKY’ 재학생들의 취업동아리 내 고민과 갈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소개했을 때 ‘대기업 인턴 자리라도 얻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지역에서 무슨 절박성을 갖는가?’하는 반응에 당황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지만 주인공 스스로 솔직하게 인정해버린 덕분에 자칫 민감해질 수 있는 측면은 적당히 퉁치고 넘어가게 된다. 본인 역시 그런 질시를 받을 수 있다는 상황이라는 것쯤 인지하지만 해당 주제가 화두가 되어버리면 이야기가 더 진행이 안 된다는 점을 마치 양해를 구하려는 듯 태도다. 물론 작품의 본령이 그건 아니기도 하다. 전국 평균으로 놓고 본다면 중상위권이라 봐줄만한 ‘광역시-지ㆍ거ㆍ국-신방과-주거문제 해결’의 조건을 갖췄다고 해서 미래가 선명하진 않으니 말이다. 누구나 일단 자신이 처한 상황에 바탕을 둔 채 좌우를 살필 수밖엔 없지 않은가. 자기객관화를 통한 사회적 연대로 가기 위해선 일단 ‘지피지기’부터 성립되어야 한다.

▲영화 ‘두 집 살림’ 스틸이미지

주인공은 비좁고 답답한 ‘서울 집’과 ‘시골 집’을 오가는 일상을 반복한다. 시골이란 표현에 발끈할 이들도 생길법하다. 대구광역시를 응시하는 경북 중소도시 주민들의 심정이라면 말이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이니 이 부분에 민감하면 더 이상의 이야기 전개가 불가능해지니 양해해주시라. 주인공은 다소 상투적이긴 해도 효과적인 장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상화한다. KTX 입석 혹은 자유석이라는, 자신에겐 확정된 자리가 없는 이동 간 처지를 사회적으로 본인이 속한 상태로 치환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고생해가며 도착한 대구의 본가는 서울의 라면상자 같은 방과는 상당히 대비되는 환경과 조망을 당사자에게 흠뻑 제공한다. 일단 집이 넓고 환하다. ‘집 같은 집’이라 할 수 있겠다. 베란다에 서면 바깥 풍경이 환하게 펼쳐지고 흔히 고시원이나 원룸에 기본옵션으로 들어가 있는 1도어 미니 냉장고와는 비교를 불허하는 양문형 냉장고에는 무언가 먹을 게 가득 들어차 있다. 오랜만에 유학 중인 자식을 먹이느라 준비했을 갈비찜에 감독은 그야말로 탐닉한다.

◆ 경계인의 슬픈 초상 속에서 불투명한 안개 같은 미래상

하지만 정작 그렇게 서울 생활과는 비길 수 없을 만큼 안정되고 풍족한 대구 본가에서 주인공은 마땅히 할 게 없다. 부모세대가 경제성장기에 땀 흘려 노력해 장만한 자기주택과 안정된 임금급여 및 퇴직 후 보장은 자신이 속한 세대에겐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수혜다. 그걸 너무 잘 알기에 처음엔 편안하던 시골 집 라이프는 금방 무료하고 권태롭게 변한다. 부모에게 기대는 ‘니트족’이 되지 않으려면 이곳에 계속 머물면 안 되겠다는 공포가 스멀스멀 몰려온다. 결국 자신이 적당한 수준의 노력으로 확보할 수 있는 ‘자리’의 부재는 다른 모든 이점을 상회해버린 것이다. ‘서울공화국’을 뺀 대한민국의 나머지 주변부가 공통으로 처한 슬픈 운명이다.

▲영화 ‘두 집 살림’ 스틸이미지

주인공은 본 작품에 제목을 붙인 그대로 ‘두 집 살림’ 중이지만, 집이 두 채라 여유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다. 반대로 두 곳 모두에서 주인의 자격을 획득하지 못한 채 사랑 혹은 행랑채에 더부살이하는 기분이다. 그런 기분은 자연스럽게 태도로 변환된다. 시골집에선 자신이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히 서기 위해 자립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 않고, 서울 집에선 그 기회가 어슴푸레 신기루처럼 보일락 말락 할 뿐, 어느새 목적과 수단이 뒤엉켜버린 기분이다. 그렇게 주거공간에 대한 회의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세대가 처한 사회적 상황을 투영하는 ‘담론’ 영역으로 확장되어간다.

영화는 수미상관의 대비 효과를 적절히 활용하는 편이다. 초반에 살짝 출연했던 시사교양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은 지방의 취업난에 대해 원론적인 답변을 했었다. 후반에선 성공적인 서울생활 진입 이후에도 계속 방향을 잡지 못하는 상황에 조언을 청하고자 수강 중인 대학원 전공교수와 상담을 가진다. (화면에선 세부정보가 소개되지 않지만) 어쩌면 주인공이 서울에 정착하게 될 경우 동 세대 사이에선 최고치 성공 사례라 할 케이스 – 동향에 지방대학교 출신 대학교수 자리를 차지한 – 인 전공교수와의 상담내용은 씬-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교수 자신도 과연 서울에 계속 머물게 될지 퇴임 후 어디에 정착할지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상담자로서는 맥이 탁 빠지는 순간일 수 있겠지만, 젠체하지 않는 교수의 진솔한 토로는 상대적으로 나은 조건을 가진 이들이라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절대다수가 해답에 이르지 못하는 사회적 현실을 확인시켜준다. 그리고 주인공은 여전히 버지니아 울프가 한 세기 훨씬 이전에 골몰했던 자기만의 방을 갖기 위한 번민을 이어간다.

▲영화 ‘두 집 살림’ 스틸이미지

본 작품은 ‘브이로그 풍의 평범한 전개’라는 기본 얼개 vs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연결’시키는 의제 확장성을 꾀하는 작가적으로 야심찬 장치, 2개의 축이 기묘하게 맞물리며 흥미로운 구석을 선보인다. 작품 속에서 전혀 해결되거나 풀리지 못한 문제는 지금도 아마 주인공이 여전히 벌이고 있을 생존투쟁의 결과가 답해줄 테다.

<작품정보>

두 집 살림
2018|한국|다큐멘터리|20분
연출/기획/촬영 김보미

2023 1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초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