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주69시간 근무제, 지금 우리의 노동 어젠다는

단기간에 노동시간 늘리면 경쟁력 늘어날까
플랫폼·특고·5인미만 등 사각지대 타격 클 것
노동시간 말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어젠다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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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2주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김보현: 오늘 주제는 ‘주 69시간 근무제’입니다. 올해 초부터 대한민국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노동시간에 대해 폭넓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지난 17일 논의가 마무리되지 않은 채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이 종료됐죠. 정부는 노사가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고 있지만 쉽진 않아 보여요. 먼저 각자의 일터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나오는지 말해볼까요?

이명은: 대선 전에 한참 주 4일 근무가 이슈였잖아요. 저도 저희 임원분들께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우리도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거든요. 제가 일하는 직장은 상근자가 1명인 시민단체니까 오히려 선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조영태: 저희도 작년 대선 때 ‘주 4일제 근무 할까?’ 이야기는 나왔는데 안 됐어요. 모임 구성원들은 시민단체, 노동단체, 언론사에서 일하니까 ‘주 69시간제’에 찬성하는 일터는 없을 것 같은데…. 그렇죠?

이학선: 제 일터인 민주노총은 ‘주 69시간제’에 대응하는 게 저희 사업이에요. 그게 저희에게 적용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없죠. 저희는 파업할 때 일을 제일 많이 하잖아요.

▲명은 “주 4일 근무, 선진적으로 우리 일터가 도입하자고 얘기했었다”

보현: 저는 기자라는 직업 특성상 일과 일이 아닌 것의 구분이 모호한 편이에요. 점심에 취재원과 밥을 먹었다면 이건 휴게시간이라고 볼 수 있는가, 기사가 아닌 칼럼을 마감해야 하는 날 밤을 새웠다면 연장근무로 볼 수 있는가라는 애로가 있는 거죠. 그래도 우리 회사는 위로 갈수록 업무량이 많고 노동 시간이 길어서 불만이 없습니다.

명은: 사용자는 어쨌든 일을 더 많이 하는 게 본인의 선택이라 볼 수 있는데 근로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잖아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노동조합이 특히 업무량이 많다던데. 어떤가요, 학선님?

학선: 일단 다른 산별은 모르겠지만 저흰 연차 사용이 자유로운 편이에요. 어제 야근을 했다면 ‘11시에 출근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거든요. 일이 많아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연차를 보장해 주겠다고 사용자 쪽에 들어가는 임원분들이 이야기하고 실제 장려하지만, 일이 많아서 어려워요.

단기간에 노동시간 늘리면 경쟁력 늘어날까
학선 “민주노총은 그렇게 해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아는 조직”

영태: 활동가의 노동시간 얘기를 잠깐 하고 넘어갈까요? 최근에는 많이 좋아졌는데 여전히 기성세대와 우리 세대 간 인식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녁 시간 회의를 노동으로 봐야 하는가에 대해?

보현: 맞아요. 몇 년 전 얘기지만 활동가가 노동절에 쉰다는 것에 부정적 인식을 가진 분들도 만난 적 있어요.

학선: 민주노총은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선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걸 노동조합이 가장 뼈저리게 알고 있는 것 같다는 거죠. 사람을 쥐어짠다고 해서 뭐가 나오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아는 거죠. 실제 일이 많아서 못 쉬는 건 또 다른 문제긴 해요.

보현: ‘압축적으로, 단기간에 노동시간을 늘리면 경쟁력이 늘어날까?’라는 질문을 던져봅니다. 정부 주장인데, 사실 업종마다 차이가 있을 것 같긴 해요. 윤석열 대통령이 주로 이야기하는 건 게임회사예요. 크런치모드(업무 마감 시한을 앞두고 수면, 식사, 기타 개인생활을 희생하면서 연장 근무를 하는 형태)가 계속 문제가 돼 왔음에도 게임회사 예시를 자주 들더라고요.

학선: 예전에 공장에 다닐 때 상사 아저씨들이 다른 회사랑 비교해서 우리가 우위를 점하고 돈도 많이 벌려면 야근이 불가피하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때 전 무슨 생각을 했냐면, 그래서 노동시간은 정부가 건드려야 하는구나. 사기업에 재량을 주고 지원을 한들 자기들 스스로 줄일 리가 없구나. 정부가 나서서 줄이지 않는 이상 경쟁력 논리가 계속해서 살아있을 수밖에 없다고 봐요.

영태: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줄인다고 했을 때 직접적 영향을 받는 직종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봐요. 시민단체 활동가나 기자, 노동조합 상근직은 사실은 일터의 지향, 목표와 맞춰서 입사를 했기 때문에 69시간제 이슈와 조금 떨어져 있다고 봐요. 또 일반 사무직 노동자 중에도 연장근무에 맞춰서 성과급을 주고 대체휴무를 주는 곳은 대기업에 한정되겠죠.

보현: 실제 통계를 보면 10명 중 6명이 초과 수당을 못 받는다고 해요. 더 일을 시키면서도 돈은 안 주는 곳이 60%라는 거죠. 그 이유는 대체로 포괄임금제이기 때문인데, 포괄임금제를 적용받는 직장인의 90%는 ‘노동시간 산정을 할 수 있는데도 포괄임금제로 한다’고 답했더라고요. 아니, 정부는 이런 현실을 몰라서 주 69시간제 같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제도를 내놓은 걸까요?

학선: 노동시간 산정에 관해 재밌는 이야기가 있어요. 호주인가, 해외에선 최저임금 산정을 할 때 산정이 가능한 직종은 그대로 적용하지만, 그렇지 않는 직종도 기준을 만들어요. 예를 들어 딸기를 딴다면 ‘딸기를 몇 개 땄다’에 대한 시급을 적용해야 하잖아요. 숙련된 노동자가 200개를 따는데 1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그 200개에 대한 걸 1시간으로 정하는 거예요. 그 얘기를 듣고 나선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말도 어폐가 있다는 생각도 했죠.

보현: ‘노동시간이 늘면 경쟁력이 올라갈까’라는 질문에 대해 전 좀 다른 관점을 던지고 싶어요. ‘어떤 경쟁력을 우리가 얘기해야 할까’인데, 일면 기업 경쟁력은 늘 수도 있다고 봐요. 계속 얘기하지만 직종마다, 사업장마다 다르겠죠. 하지만 ‘국가 경쟁력’을 보자는 거죠. 지난 토론에서 우리가 저출생 얘기도 했지만, 이런 관점에서 노동 시간을 늘리면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까? 전 아니라고 봐요. 다수의 여성은 고용 형태가 불안하고 임금이 낮은 업종에 종사하는데 노동시간이 늘어서 아이 돌봄에 대한 부담이 늘면 일을 그만두거나 아예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겠죠.

▲학선 “정부 안에서도 조율 안 되는 모습, 내지르고 수습한다는 방증”

학선: 맞아요. 하나만 보고 둘은 못 보는 거죠. 돈 쓸 시간이 없으니 내수 경제 활성화에도 좋지 않겠죠. 전 추진 과정에서 대통령의 말이 바뀌는 것도 흥미롭게 봤거든요. 노동부에서 ‘대통령의 의중이 그렇지 않다’고 발표했는데 바로 다음날 대통령이 나와서 반박을 하더라고요. 정부 안에서도 조율이 안 되는 거죠. 깊은 고민을 거쳐서 나온 게 아니라 그냥 내지르고 수습한다는 방증 아닐까요?

명은: 지지율을 높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노조 때리기처럼.

인공지능 발전하는데 생산성은 시간으로 높여라?
영태 “밸런스 무너지고 나면 동일한 시간 쉬어도 회복 안 돼”

보현: 우리가 챗GPT 토론도 했는데, 인공지능이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시대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건 완전 역주행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더라고요. 이 또한 일터마다 다르겠지만, 결국 생산성을 기술로 높이면서 노동시간은 줄이고, 사회 안전망은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거잖아요.

학선: 노동시간을 늘리면 실업자도 늘어나죠. 생산직 같은 경우는 본인이 나서서 더 많이 일하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그것도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자’는 불안이지, 본인이 정말 과로를 원하는 건 아니잖아요. 취업자는 과로로 죽어 나가고 그 와중에 실업자는 늘어나는 악순환인 거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사이 갈등도 생길 수 있죠. 한 가정으로 보면 아버지는 자기 가족을 부양해야 하니 과로하고, 그 덕에 아들은 취업을 못 하고···. 아버지는 정년이 지나서도 일하겠죠.

영태: 우리가 월·화·수 바짝 일하고 목·금·토 쉰다고 해서 피로가 다 풀리나요? 아니죠. 적당히 쉬고 적당히 일하는 게 몸의 밸런스에 맞는 건데 몸이 망가진 시간만큼 쉰다고 회복되는 게 아니거든요.

학선: 주기적이지 않은 휴식, 예를 들면 주야 교대를 한다거나 하는 노동 형태가 발암의 원인이래요. 그 자체만으로 69시간제가 임금 보전이나 휴식 문제를 떠나서 발암의 원인이 된다는 거거든요.

명은: 지금까지 우리 얘기만으로도 정부의 모든 부처가 반대하고 들고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요.

학선: 그러니까 실제 정책적인 판단이라기보다 정치적인 판단인 거죠. 그 또한 실패한 것 같지만요.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 데뷔한 지가 얼마 안 됐잖아요. 당내 갈등을 다뤄본 적도 없고 정책을 구상해 본 적도 없으니까.

보현: 사실 주 69시간 개편안은 쉽게 통과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거든요. 정부도 생각보다 반발이 심하자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고요. 덕분인지 지난 대선 공약이던 ‘주 4일제’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노동시간은 괜찮은지’ 얘기해 보고 싶어요.

영태: 주52시간제 도입할 때 조선일보에서 기사를 하나 봤거든요. 어떤 회사 직원들이 사장의 ‘퇴근해’라는 말에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더 하면 안 돼요?’라고 했다고 해요. 더 남아서 업무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니, 대표가 “법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다”며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보냈다는 내용이었어요.

학선: 서사가 좋네요. 그런데 그것도 역시 불안과 저임금의 문제잖아요. 업무를 더 공부해야겠다는 것도 이직을 준비하든, 거기서 살아남기 위한 거죠. 노동시장 바깥으로 튕겨 나갈까 봐 그럴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는 건데, 그런 애기는 잘 안 되고 있죠. 민주노총이 사회보장제도를 이야기하는 이유기도 하거든요. 단순히 연대적으로 약자를 도와야 된다는 차원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이 근본적으로 나아지기 위해선 이 사회보장 제도가 제대로 돼 있어야 해요. 노동법, 근로기준법, 임금 체계를 바꿔도 사람들은 불안해하면서 일터와 삶터에서 불행하게 보낼 수밖에 없어요.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직,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사각지대 타격 클 것
학선 “과도기엔 정부가 지원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영태: 페북 광고 중 ‘일 잘하는 직장인의 숨겨진 비밀 클래스’ 이런 내용이 있거든요. 엑셀 강의 해주는 온라인 강의 같은 건데, 사실 노동자 개인이 자기 돈으로 공부하는 거잖아요. 회사에서 가르쳐줘야 하는 건데요.

학선: ‘회사는 학교가 아니다’라는 말도 있죠. 저는 그 말이 제일 싫어요. 학교가 아닌 건 알겠는데 이 사람을 통해서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알려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걸 학교가 아니라고 퉁쳐버리면 기업 좋은 일만 시키는 거죠. 우린 계속 불안에 시달리고요.

보현: 주 69시간제 도입이 플랫폼 노동자의 장시간 집중 노동을 더욱 심화시킬 거란 분석도 많아요. 특수고용직, 5인미만 사업장 노동자도 포함해서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는 사각지대의 이들이 먼저 타격을 입을 확률이 높겠죠.

학선: 그렇죠. 화물연대도 안전운임제가 그들의 최저임금 역할을 했던 거잖아요. 하지만 아직까지 유효기간 연장이 안 되고 있죠. 그럼 이들은 화물연대에서 화물 일을 하든, 이 외에 대리운전을 하든 전체 노동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거든요. 최근에 학교비정규직노동자 산재 증언대회를 갔는데, 그때 전문가 교수님이 이런 말씀 하신 게 기억에 남았어요. 급식노동자들이 아프면 병원에 오는데, 쉬라고 얘기할 수 없다. 쉴 수 없는 사정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 말이 모든 논의를 함축하는 것 같아요.

영태: 예전 미군부대 경비업무를 계약직으로 한 적이 있는데, 근무시간을 주 단위로 조정하는 형태였어요. 그중 유독 근무를 많이 하는 분이 있었어요. 한 달에 300시간까지도 했는데, 야간근무를 서고, 몇 시간 자다가 다시 나와서 낮 근무를 서는 식인 거죠. 그런데 도중에 문재인 정부로 바뀌었는데 노동시간이 이렇게 길어선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내부에선 반발이 있었어요. 애들 학원도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월급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반대하시더라고요.

▲영태 “주 300시간 일하는 동료 노동자, 노동시간 줄이는 것 반대하는 모습 봤다”

학선: 바로 그게 과도기적인 문제라고 봐요. 그걸 정부가 지원하면 되죠. 정책에 따라 회사가 노동시간을 줄이게 되면 정부는 회사에 보전을 해줘요.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때 회사에는 지원을 해주는 데 정작 노동자한테 직접 지원은 잘 안 하거든요. 아까 얘기한 사회적 비용을 다 고려하면 저는 남는 장사일거라 보거든요.

영태: 저는 좀 반대인데.

학선: 사회주의라고? (웃음)

영태: 아니, 그게 아니라 시간의 효율성 문제 때문이에요. 어떤 회사는 노동시간 대비 생산성이 낮을 수 있고 어떤 회사는 시간 대비 높을 수 있죠. 이런 조건을 다 고려해서 직접 지원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학선: 정교하게 해야겠죠. 어쨌든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 자체가 노동자한테 직접 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 같아요.

노동시간 말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어젠다
학선 “있는 법이나 잘 지키자”
영태 “효율성을 높여야”
보현 “격차 줄여나가는 게 국가경쟁력”
명은 “서울에 갇혀 있는 이슈, 다양한 노동환경 봐야”

보현: 이제 마지막 질문으로 넘어가시죠. 장하준 교수가 최근 KBS 라디오에서 ‘노동의 질 즉 생산성과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지 고민해야 할 21세기에 노동시간을 어젠다로 삼는 것은 1980년대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라고 말하더라고요. 영감이 되어서 적어 왔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노동에 대해 지금 어젠다로 삼아야 할 게 뭘까? 각자 떠오르는 걸 말해보죠.

학선: 사실 주52시간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는 주 40시간을 채택하고 있거든요. 노동법에서 예외적으로 12시간을 허용한다고 하는데 그 구절이 법에 들어간 이후 계도기간이니 뭐니 해서 잘 안 지켜지고 있죠. 그런 상황에서 69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건 사회적 합의에 대한 배반 같아요.

▲명은 “시대에 맞는 관점 전환 필요, 들여다볼 노동환경 많아”

영태: 저는 효율성이요. 세탁기, 청소기, 식기세척기, 건조기가 우리 삶을 많이 바꿨잖아요. 일도 마찬가지로 AI나 엑셀, 스마트 오피스 등 같은 일도 빠르게 할 수 있는데 옛날처럼 시간을 두고 논의하는 건 생산성과는 어쩌면 거리가 먼 이야기죠.

학선: 산업혁명 시대에도 ‘기계를 가진 사람만 행복해질 것인지, 모두가 행복해질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해요. 그럼 이제 정부는 노동에 있어서 산업 전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고 깊숙한 논의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AI가 도입됨으로써 생산성이 높아지고 그로 인해서 돈도 벌어요. 그럼 그 돈을 어떻게 분배해서 다 같이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그 사람의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그 삶의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정책적으로 보좌할 것인가가 핵심인 거죠. 그 AI 기술을 가진 사람이 그 기술을 자기 이윤만으로 쓸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제하고 정비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고요.

보현: 저는 같은 맥락에서 격차를 줄여나가야 하는데, 좀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남성과 여성의 임금 격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동 환경 격차 같은 거죠. 최근에 ‘커리어와 가정’이라는 책을 봤거든요. 그 책에선 여성이 가정을 나와서 일자리를 얻게 된 계기는 청소기와 세탁기이고 일자리를 넘어서 커리어를 얻게 된 계기는 피임 기술의 발전이라고 해요. 그렇다면 지금의 여성들이 온전하게 커리어를 좇을 수 있는 환경이냐 하면 ‘그건 아직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커리어와 가정을 동시에 좇아야 하는 여성이 포기하는 건 우리나라에선 출산인 거죠. 즉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노동시간을 줄이고 여성을 둘러싼 여러 격차를 타파하는 게 시급하다고 봐요.

학선: 학교비정규직 산재 증언대회에 갔다가 들었던 생각인데 급식 노동자가 겪는 산재가 10년 전과 지금이 같아요. ‘기술이 발전했는데, 식기세척기를 더 정교하게 만들거나 식판을 가볍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왜 아직이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노동자는 힘을 좀 덜 쓰고 산재도 덜 당하고, 좋은 반찬을 만드는 데 노동력을 투입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게 생산력 향상이라고 봐요.

명은: 저는 최근에 경향신문 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봤거든요. 저는 생태에 긍정적인 직장에 있다 보니 농촌 공동체에 대해서도 좋은 인식이 있었거든요. 공유지라던가, 품앗이라던가. 그런데 그 책에선 농촌의 여성 노동문제가 나와 있더라고요. 우리가 긍정하는 농촌 공동체의 모습이 알고 보면 여성의 노동으로 뒷받침된다는 게 핵심이었어요. 부부가 같이 밭일을 하고서 집에 오면, 집안일은 여성이 다 하는 거죠. 그래서 ‘시대에 맞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AI가 있고 일의 즐거움에 대해 말하는 21세기에도 들여다 볼 노동 문제가 많은데 ‘어떻게 일하는 시간을 더 늘릴 것인가’로 고민하는 시대는 아니라고 봐요. 이런 측면에서 69시간제 이슈도 서울 안에서, 판교의 게임회사 안에서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농촌의 상황, 지방의 일자리 상황, 작은 사업장의 상황을 골고루 종합해서 정책을 낸 것 같지 않아요.

정리=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