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대구원스톱지원박람회에서 만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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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엑스코 3층 넓은 전시 공간에 낮게 벽을 만든 부스가 자리 잡았다. 부스 안에는 캐주얼 양복을 입은 남성과 상대적으로 어려 보이는 여성이 나란히 앉았다. 어떤 부스는 남성이 어려 보이기도 했지만, 남성이 안쪽 자리를 차지 했고, 여성은 바깥에 앉아서 심부름을 하는지 부스 안팎을 분주하게 오갔다.

지난 19일 ‘2023 대구원스톱기업지원박람회’를 찾았다. 기업을 위한 구매상담회, 수출상담회 같은 프로그램이 메인이지만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하는 ‘채용상담회’를 취재했다. ‘원스톱’은 홍준표 대구시장이 밀고 있는 ‘구호’인데, 기업 투자 관련 행정절차를 빠르게 처리해 투자 유치를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아무튼 채용상담회가 열리는 행사장을 설렁설렁 돌며 스타트를 끊어줄 인터뷰이를 물색했다. 바쁘지 않은 것 같은 젊은 여성 옆에 살포시 엉덩이를 붙였다. 힐끗 보니 목에는 ‘○○직업전문학교’라고 써진 네임텍을 걸고 있었다.

인터뷰가 가능한지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단번에 오케이 답변이 돌아왔다. “어떻게 알고 왔어요? 와 보니까 어때요?”라고 물었다. “학원에서 다 같이 왔어요. 막상 와보니까 면접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더라고요. 한 군데에 이력서 제출하고 다른 친구들 기다리고 있어요. 물류‧CS 관리직군 상담 받으러 간 기업도 지게차를 모는 현장 일이 가능해야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하더라고요. 기왕이면 남자를 뽑겠다는 거죠.” 이날 채용상담에 참여한 기업 중 30% 수준이 생산직군만 채용했다. 나머지는 IT·데이터, 마케팅, 연구, 해외영업 직군 채용도 기업도 많았지만, 규모가 1~3명 수준이었다. 경력직을 채용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18~19일 대구엑스코 서관에서 ‘2023 대구원스톱기업지원박람회’가 열렸다. 기업에서 나온 인사담당자는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대기 의자에 나란히 앉아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이는 24살이라고 했다. 3년제 대학에 다니다가 치위생사로 일하다, 지금은 사무직 일을 알아보고 있었다. 그는 1년 가량 취업 준비를 이어오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능하면 대구에 있고 싶은데···.” 대체로 말끝을 흐렸다.

치위생사로 일하는 건 어땠는지, 친구들은 어디에서 일하는지, 일터와 일자리의 조건을 어디까지 따지는지도 물었다. “가능하면 안정적이었으면 좋겠어요. 치위생사도 병원을 자주 옮기거든요. 병원이 작으니까 사람들 눈치도 많이 보이고, 연봉은 많이 바라진 않는데, 월 200만 원 정도 받음 좋죠. 일자리가 불안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새로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어요. 친구들 일하는 데야 뻔하죠. 친구 중엔 치위생사도 많고 네일숍, 미용실이나 공장에서도 일해요. 그런데 다 자주 옮겨요.”

주최 측에서 마련한 증명사진 부스, 퍼스널컬러 부스 앞에는 정장이나 교복을 입은 청년들이 길게 줄을 섰다. 부스 안에 앉아 있는 기업 관계자들도 인터뷰를 했는데, ‘찾는 인재가 없다’, ‘경력직을 찾는다’, ‘방문한 취준생들이 생각보다 어렸다’는 이야기를 비슷하게 했다. “아무래도 남성을 선호하죠. 현장에는 남자 직원이 많아요. 여성 지원자도 10~20%로 좀 늘긴 했는데 아직은 남성 지원자가 대부분이죠.” 생산설비 직군을 뽑는 한 기업 관계자가 말했다.

대구에 여성 일자리가 부족한 건 고질적인 문제다. 산업구조상 그렇다. 대구행복진흥사회서비스원 여성가족본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연구보고서 ‘대구지역 MZ세대 여성일자리 지원방안’에 따르면 대구 산업은 제조업과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서비스업 위주로 구성돼 있으며, 대구의 여성 실업률은 3.8%로 전국과 동일하나 고용률은 48.9%로 전국 51.2%보다 낮다.

취업자 분포를 보면 좀 더 명확하게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구지역 MZ세대는 남성인구가 여성에 비해 많은데, 여성의 순이동자는 남성보다 많다. 20대 남성은 제조업 취업자가 많고 여성은 보건업 및 사회복지서비스업 종사자가 많은데 대부분 월 급여가 전국 대비 낮다. 업종별 월급여 전국대비 비중을 살펴보면 제조업 월급여는 전국대비 89.6%이고, 도·소매업은 80.2%에 불과했다. 일자리가 적은데다 급여도 낮으니, 특히 여성은 보수가 높은 타지역으로 유출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산업구조 전환, 신산업 투자 유치는 원스톱으로 하더라도 일자리 정책은 섬세해야 한다. 남녀 성비 불균형, 기업-취준생 미스매치, 중소기업 노동환경 개선, 일터 안전 문제 같은 디테일을 살피면서 가지 않는 일자리 정책은 유명무실하다. 전국 평균보다 10% 이상 낮은 임금의 일자리, 제조업 중심의 지원 정책이 늘어난다고 해서 미래 세대를 파워풀 대구시로 이끌 수 없다. 그래서 채용상담회는 동상이몽이었다. 내가 만난 인사담당자와 취준생이 서로 다른 의미로 공허했다.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