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세 번째 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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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3월 5일, 63세의 대통령 박정희는 49세의 육군 소장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에 임명했다. 군단장급 직위인 보안사령관은 중장 이상의 장성에게만 주어져 왔으니 전례 없는 파격이었다. 박정희는 이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하고 난 7개월 뒤에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10·26 거사를 일으킨 김재규의 인신을 확보한 전두환은 그 행운을 놓치지 않고 대통령 시해사건을 조사하는 합동수사본부장을 꿰찼다. 그에게 이 경험은 분명 초유의 것이었지만, 처음처럼 느껴지진 않았다.

전두환이 느꼈을 기시감旣視感·Déjà vu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은 1961년 5월 16일 새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켰던 때, 31세였던 육군 소위 전두환은 서울대학교 ROTC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날 새벽, 동기생으로부터 쿠데타 소식을 들은 전두환은 아침 일찍 혼자서 육군본부로 달려갔다. 그는 박정희에게 혁명 성공을 위해 육사 동창회가 혁명 지지 의견을 내겠다고 제안했다. 쿠데타 성공 여부를 두고 초조해하던 박정희는 반색하며 그에게 혁명군 완장을 채워주었다. 혁명군의 일원이 된 전두환은 육사로 달려가서 교장 강영훈에게 육사 생도의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요구했다. 강영훈이 허락하지 않자 전두환은 “육사생도들의 혁명 지지 시가행진이 공군사관학교나 해군사관학교보다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논리로 육사 생도 대장(총학회장)을 설득해 시가행진을 성사시켰다.

박정희는 민첩성과 저돌성, 출세욕과 승부욕, 그리고 주도면밀함까지 갖춘 이 당돌한 육군 소위를 군사혁명위원회 의장 비서관으로 삼았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비서가 되어 쿠데타 세력으로 꾸며진 군사혁명위원회가 어떻게 정권을 찬탈하는지를 배웠을 뿐 아니라, 박정희의 총애를 받고 초고속 승진과 군내 요직을 두루 차지했다. 싹수부터 정치군인이었던 전두환에게 10·26으로 생겨난 권력의 공백은 38년 전의 박정희와 자신을 동시에 떠올려 주었다. 박정희가 했던 것을 이번에는 그가 할 차례였다.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 그는 왜 무릎 꿇지 않았는가』(사이드웨이,2023)를 쓴 정아은은 박정희가 대통령이 되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전두환의 “미래의 자아상은 필시, 최고 권력자의 모습이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만일 10·26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김재규가 쏜 총에 맞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정권을 유지했을까?”라고 묻는다. 1970년대 후반부는 박정희 정권이 금세 막을 내릴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런 상황에서 박정희가 생존해 1980년대를 맞았을 경우 신임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박정희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역할을 도맡았을까. 그래서 “그깟 이백만 죽인다고 까딱있겠습니까?”라고 큰소리쳤던 차지철의 말을 현실화시켰을까. 반대로, 민심을 등에 업고 쿠데타를 일으켜 박정희 정권을 뒤엎는 일에 가담했을까.

“어떤 선택을 했을지는 순전히, 가능성의 정도에 달렸을 것이다. 힘의 향방에 대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감각을 지녔던 전두환은 어느 쪽이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쪽에 가담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미 보안사령관이라는 고위직에 올라 있는 그가 가만히 앉아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관전만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점이다.”

12·12와 5·18이라는 다단계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 자리에 올랐던 전두환은 1988년 퇴임하여 ‘전직 대통령’으로 33년을 살다가 91세의 나이로 자택에서 사망했다. 김영삼 정권 때인 1995년 12월, 내란죄로 무기징역이 확정되었으니 원칙대로 하면 그는 감옥에서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제15대 대통령 당선인인 김대중의 요청으로 김영삼 대통령이 1997년 12월 전두환을 사면하고 말았다. 바로 이 때문에 “대한민국 현대사는 전두환이라는 인물에게서 비롯된 1980년대의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2년 남짓한 감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한 전두환은 유죄를 선고했던 법원의 판결을 모두 뒤엎었고, 스스로를 국난을 극복한 “구국의 영웅”으로 치켜세우며 수십 년간 국민에게 모멸감을 선사했다. 전두환의 세 번째 쿠데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