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플라톤 추방] 알고도 모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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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메이 다메히토의『나쁜 여름』(아프로스미디어,2023)은 제2017년 37회 요코미즈 세이시 미스터리 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일본의 추리소설이 실시간으로 번역되어온 사정에 비추어보면 꽤 늦은 출간이지만, 실업급여를 손보겠다는 현 정부의 시도와 맞물려 오히려 때맞춘 출간이 되었다.

후쿠오카 시청 생활복지과의 신출내기 과원 사사키 마모루의 주 업무는 생활복지과에서 ‘케이스워크(casework)’라고 불리는 생활 보조금 수급자의 가정 방문이다. 이 일은 계원 각자에게 배당된 생활 보조금 수급자를 정기적으로 만나, 그들이 보조금을 받기에 합당한 상황인지를 살피고, 아울러 보조금 수급자가 새 직장을 구하거나 직업 훈련을 하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다. 그가 맡은 수급자가 가운데 한 명인 야노 키요코 노파는 외아들과 연이 끊긴지 오래라서 보조금 없이 생활이 불가능하다지만, 이웃의 제보에 따르면 아들이 타고 온 벤츠가 그녀의 집 앞에 자주 주차되어 있다. 또 전직 택시 운전사인 야마다 요시오도 허리가 아프다지만 꾀병처럼 보인다. 그는 파친코를 드나든 흔적을 마모루에게 추궁을 당하자 이렇게 항변한다. “생활 보조금 받는 사람은 도박하면 안 되는 거야?” 야마다는 일을 할 생각이 없다. 그는 보조금을 용돈으로 쓰며 야쿠자 조직의 말단에서 마약을 배달하고 있다.

마모루와 같은 부서의 선배 다카노 요지는 카바레에 놀러 갔다가 자신의 케이스워크 상대인 아이미를 만나게 된다. 스물두살 난 미혼모인 그녀는 친구의 부탁으로 알바를 뛰러 왔다가 마모루에게 들킨 것이다. 품행이 방정치 못한 다카노는 아이미를 찾아가 수입이 따로 있으니, 보조금을 끊겠다고 을러대어 정기적인 성 상납을 받고 매달 3만엔(27만원 상당)씩 무마비도 뜯는다. 아이미는 다카노의 횡포를 견디지 못하고 야쿠자와 사귀고 있는 친구 레이카에게 해결을 부탁한다. 후쿠오카 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야쿠자인 가네모토는 레이카의 부탁을 받고 기발한 사업을 구상한다. 먼저 노숙자를 긁어모은 다음, 다나카를 협박하여 생활 보조금을 신청하는 노숙자마다 신청을 통과시키게 한다. 그러면 한 사람당 월 7만엔(60만원 상당)의 밥값이 나간다고 치고, 열 사람의 노숙자만 관리해도 월 70만엔(600만원 상당)의 수입이 생긴다. 다다익선이 아닌가.

케이스워크에 진력이 난 마모루는 어느 날 생활복지과 미네모토 과장에게 일본의 생활 보조 제도는 부정 수급자를 걸러내지 못할 만큼 물러터진데다가 부도덕하다고 푸념을 한다. 미네모토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지난 7월 12일, 국민의힘 노동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에서 개최한 실업급여 제도 개선 공청회에 발표자로 나온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실업급여 업무 담당자는 “실업급여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가고, 일했을 때 자기 돈으로는 살 수 없던 샤넬 선글라스나 옷을 사며 즐기고 있다”며 제도 개선에 맞장구를 쳤다.

작가가 게이로 설정한 미네모토 과장의 대답은 이렇다. “선진국들은 어디든 생활 보호 제도가 있고, 그런 사회 안전망이 있어야 민주주의가 성립돼. 부정 수급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도 작은 구멍을 찾아내서 나쁜 짓을 하는 인간들은 생겨나거든. 하지만 그런 놈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의 생활 보조금은 정말로 그것이 필요한 사람에게 지급되고 있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지. 그래서 우리나라는 우수한 국가라고 생각해.”

마모루의 관찰에 따르면, 생활 보조금 신청 수리 여부는 “그 자리의 퍼포먼스에 좌우”되었다. 말 잘하는 영업사원이 일거리를 따내듯이 말 잘하는 신청자가 보조금을 땄다.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해 준 사례가 후루카와 카스미다.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초등학교 4학년생인 아들을 키우던 그녀는 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고, 마모루의 질문에 요령 있게 응대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시도에 퇴짜를 맞았던 그녀는 극빈의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아들과 함께 자살을 했다. 나라를 좀먹는 해충을 박멸해야 한다는 병적인 정의감에 사로잡힌 마모루는 귀중한 관찰을 얻고서도 현장에서 활용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