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부려대구 시즌2] 활동가란 무엇인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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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부려대구]는 대구‧경북에서 먹고, 일하고, 놀고, 잠자는 청년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갖고 있는 고민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 모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지역 현안부터 사회 문제, 실 없는 논쟁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룰 예정입니다. 정리된 이야기는 뉴스민을 통해 소개합니다.

보현: 오늘(7월 31일) 모임은 김나빈(분홍돌고래도서관), 김인혜(더폴락), 박경순(민주노총 금속노조 경주법률원), 성민아(정의당 대구시당), 이미애(민주노총 대구본부)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씨부려대구 시즌2] 활동가란 무엇인가 (1) (23.08.09.))

다음 이야기 주제는 ‘성장’입니다. 개인의 성장은 저의 주요 화두이기도 한데요. 비서울이라는 조건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겠죠. 경주에서 오신 박 노무사님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경순: 김 기자님도 서울에서 일하다 다시 대구에 왔다고 들었어요. 저도 서울의 민주노총 법률원에서 7개월 정도 경주에 내려오기 위한 트레이닝을 받았어요. 경주 사무실을 개소하면서 내려왔는데, 확실히 (개인이) 성장할 만한 사건, 다양하고 재밌는 사건, 대중적으로 알려져서 끓어오를 수 있는 사건은 서울에 많죠. 지역에는 비교적 일반적인 사건, 생계에 가까운 사건이 많다 보니 기계적으로 변하기도 해요.

서울에선 다양한 산업을 접하고 고민할 기회가 많았어요. 금속노조 안에도 제조업, 서비스업 등 여러 산업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지역에 와선 성장에 좀 무뎌진달까요. 고민이긴 한데, 서울의 친한 노무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크고 다양한 사건을 많이 하는 반면 탁상업무적으로 돌아간다 더라고요. 저는 단순한 사건을 많이 접하지만 반대로 현장에 있는 주체들을 접할 기회가 많아요. 서면을 쓰는 기술이나 판례를 고민하는 건 서울의 친구들이 나을 수 있지만, 현장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제게 강점이 있다고 느껴요. 한 번씩 서울에 가서 이전처럼 (큰 사건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은 해요. 중앙에서 큰 맥락을 만들어 주고 지역에선 그 방향에 맞춰 실무를 진행한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전체를 보고 함께 논의하고 고민할 수 있는 영역은 확실히 서울이 크죠.

▲박경순 민주노총 금속노조 법률원 노무사 “서면을 쓰는 기술이나 판례를 고민하는 건 서울의 친구들이 나을 수 있지만, 현장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은 제게 강점이 있다고 느껴요”

민아: 정책을 공부하는 쪽의 역량을 높이고 싶으면 서울에서 일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정당에서 일하는 영역은 특히 더 그런 것 같고요. 전국적인 이슈에 대응하는 건 확실히 중앙이 빠르죠. 다른 한편으론 경순 님이 이야기한 것처럼 지역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해요. ‘지역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중앙에서 왜 고려하지 못하지? 지역에서 일 안 해 봐서 그렇구나’라는 생각이 한 번씩 들거든요.

경순: 전국적인 이슈가 터졌을 때 서울의 구성원이 모여서 회의를 열고 내용을 정리하는 게 2시간이면 공유가 끝나요. 하지만 그 내용이 지역까지 내려오는 시차가 있는 거죠. 법률원도 전국조직이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세미나나 토론회를 하는데 실질적으로 비서울 구성원이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서울은 싫든 좋든 물리적으로 붙어 있으니까 회의에 참여하게 되는데 지역은 그게 안 되는 거죠. 시대가 좋아져서 줌도 열어주지만, 그거론 충분치 않죠.

#비서울, 더 많은 전문가가 필요하다

보현: 큰 회사 이야기를 들어봤으니 이제 작은 회사 노동자와 자영업자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나빈: 20살에 독립을 해서 10년째 월세로 살고 있는데요. 전셋집을 얻을 수 있음에도 얻지 않는 건 ‘올해는 떠나야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사실 20대 중반에 제가 서울에 있을 줄 알았어요. 갈증이 컸어요. 사회생활을 예전 더폴락 공간 맞은편의 극단에서 시작했거든요. 연극이 잘 돼서 서울에 올라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문화 충격을 받았거든요. 일단 관객이 있었어요. 대구의 지하 극단에선 한 명이 안 와서 연극을 못 올린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서울에는 일단 관객이 있고, 이걸 즐기려는 태도가 너무 좋은거예요. 당시 제겐 이 모든 게 고급스러운 문화처럼 느껴지고 선진화돼 있다고 느껴졌어요. 이후에도 서울에 문화생활을 즐기러 다니며 그런 욕구가 커졌죠. ‘트렌드의 발상지, 나는 저기 빠져들어서 살아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죠.

그 이후엔 문화 영역이 아닌 중간지원조직, 시민단체 등 다양한 곳에서 일했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생각을 만났죠. 다 저 같지 않더라고요. ‘사람은 무조건 서울에 가서 살아보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는 지역을 더 좋게 만들면 되지 굳이 떠나야 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만난 거죠.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더라고요. 내가 사는 곳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만드는 일을 하면 굳이 떠날 필요는 없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미애: 곧 전셋집 계약을 하시겠네요.

경순: 서울에 살아보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고시 공부를 한다고 서울 신림동, 서대문에 있어 봤거든요. 서울의 에너지를 느껴보고, 내가 이곳과 맞는지 안 맞는지 판단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 같아요.

인혜: 저도 비슷해요.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갑갑해서 안 되겠다’ 싶어 내려왔어요. 대구에 와선 문화 영역의 일을 시작하면서 여기까지 왔죠. 결국 선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서울이 잘 맞는 사람도 분명 있더라고요. 특히 문화 영역은 더 그런 것 같아요. 기획할 때 베이스가 되는 인재가 많은 반면 대구는 한 명을 데려오려 해도 그 배의 비용을 들여야 하죠. 정확히 내가 원하는 사람이 없을 수도 있어요. 그럼에도 저는 지역만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느껴요. 요즘 로컬리티라는 말이 유행이기도 하잖아요. 대구는 재밌는 게 많아요. 무엇보다 대구를 좋아합니다. 음악, 영역, 출판 등 인디 영역엔 독특한 분들이 많아요. 성장의 측면에서도 비서울이 저에겐 더 유리하다고 본거죠. 한편으론 ‘치이고 고통받으면서, 나를 깎아가면서 성장하는 게 과연 성장인가’라는 생각을 하다 지역을 선택한 것 같아요.

▲김인혜 더폴락 대표 “지역의 이야기가 매력적이라고 느껴서 선택했어요. 서울에선 ‘치이고 고통받으면서, 나를 깎아가면서 성장하는 게 과연 성장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민아: 최근 ‘당신의 강릉’ 출판사를 운영하는 김민섭 작가가 출판 펀딩을 시작했더라고요. 프로젝트 이름이 ‘서울놈들에게 추천하는 지방살이 에세이’인데요. 작가 글 중 강의를 나갈 때 지방 사람은 ‘죄송하다’고 부르는데 서울에 있는 사람은 ‘서울에 사시는 것 아니냐’라며 연락이 온다는 부분이 있어요. 교통비 지급 관련 내용이었는데, 어쨌든 지역에도 사람이 살잖아요. 대구는 광역시지만 지방이라는 이중적인 부분도 있죠.

몇 년 전부턴 지역에도 사람과 활동이 있다는 걸 알리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지역을 잘 알고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리는 전문가가 필요한 거죠. 청년 대상 생활경제상담을 하면서 느끼게 됐어요. 대구뿐 아니라 울산, 창원 등 타지역도 가거든요. 울산, 창원은 지역 내에 생활경제상담사가 없고 대구와 비교적 가깝다는 이유로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생활경제로 상담을 하려니, 그 지역을 모른다는 어려움이 생기더라고요. 예를 들어 대구는 집세, 임금수준, 문화분위기 등을 제가 체득해서 알잖아요. 감이 탁탁 맞으면 라뽀 형성도 잘 돼요. 반면 울산은 대부분 청년이 정규직으로 시작할 수 있고 임금이 안정적이니 저축에 대해 궁금해하는 등의 특징이 있더라고요. 이런 경험을 하면서 ‘가장 좋은 건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잘 아는 생활경제상담사가 있는 것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온라인으로 전국 상담을 할 땐 ‘사는 거 다 똑같네’라는 생각도 해요. 그래도 그 지역을 가장 잘 아는 건 ‘나고 자라서 오래 산 사람들’일 수밖에 없고, 이들이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서로를 위한 전문적인 사람들이 필요해요. ‘내가 어떻게 살 건가, 내가 사는 곳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방향이 서면 그걸 달성하기 위한 여러 수단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서울에 갔다 올 수도 있고, 지역의 자원을 동원해서 나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봐요. 지역의 전문가가 많아지면 굳이 서울에 가는 기회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겠죠.

경순: 서울의 대형 로펌들과도 공방도 해보고 했는데, 서울에 있다고 다 서면을 잘 쓰는 건 아니더라고요. 사람이 많아서 그런가, 서울엔 엉망진창인 사람이 더 많더라고요. (웃음) 꼭 서울에서만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도 편견이죠. 대구에도 특이한 사람, 내공이 깊은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신념’이란 단어가 사라지는 시대, 활동가의 의미

보현: 정의에 강박이 있는 진행자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활동가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나눠보면서 마무리하죠.

▲김나빈 분홍돌고래도서관 매니저 “신념이라는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어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죽은 단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는데, 어쨌든 활동가들이 있는 한 단어가 없어지진 않을거라 생각해요”

미애: 이 일을 하면 친구들에게 ‘너는 자아실현을 하잖아’라는 선망을 받아요. 그럼 전 ‘너의 선망은 고마운데 안 힘든 건 아니다’라고 답하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왜 이렇게 괴로운가. 내 발로 들어와서 도망갈 데가 없다. 핑계 대기도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민아: 멋있는 말을 준비했습니다. 최근 뮤지컬 ‘레드북’을 봤는데 이런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내가 나라는 이유로 지워지고 나라는 이유로 사라지는 티없이 맑은 시대에 새까만 얼룩을 남겨 나는 나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가사의 노래입니다. 활동가는 ‘우리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티없이 맑은 세상에 나로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잘 존재하지 못할 때, 얼룩을 남겨서 변화시키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론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잖아요. 6시 30분 퇴근인데 7시부터 정당 연설을 준비해야 할 때 사람들이 ‘늦게까지 일해서 어떻게 하냐’, ‘야근수당 나오냐’ 물어보거든요. 그럼 전 ‘총무국장을 퇴근하고 당원으로 출근하는 것’이라고 대답해요.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여기 오는 당원들은 돈을 안 받고 그냥 나오니까요. 직장 활동가와 사회를 좋게 하기 위한 괜찮은 시민으로서의 나를 분리하는 게 활동가들에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다음 필요하면 쉬는 것도 물론 필요하죠. 내 발로 갔다고 얘기하시지만 사실 모든 직장이 나의 구직활동으로 가는거 잖아요. 쉼과 충전에 대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전 마흔에 모든 활동을 일시에 한 번 정리하는 게 목표에요. 여러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나빈: 언어도 생겨나고, 소멸한다고 하는데 요즘엔 신념이란 단어가 사라지고 있다 해요.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죽은 단어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직업이든 직업이 아니든 활동가는 신념과 가치를 위해 이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잖아요. 전 활동가가 있어서 이 단어가 없어지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경순: ‘다음을 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들이 있기 때문에 저도 민주노총에서 일하고, 한편으론 청년유니온의 후배에게서 배우는 것도 많아요. 우리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상, 혁명이든 노동자 세상이든 올지 안 올지 모르지만, 나의 세대에는 안 올 가능성이 높지만 다음 사람들에게 멍석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는 이들은 필요한 것 같아요.

인혜: 활동가가 제 정체성은 아닌 것 같아서 조심스럽긴 해요. 시민사회에서 발언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라고 생각해 왔거든요. 전 기획자, 에세이스트, 예술가, 서점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지만 항상 애매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다만 과거보단 확장된 뜻을 갖고 있다 생각해요. 우리 윗세대에선 운동권을 뜻하는 말로 쓰였잖아요. 지금은 ‘공동체’의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을 포괄하는 말 같아요. 말하자면 옛날 사회과학 서적을 몰래 읽으며 불만을 키운 이들이 지금 서점을 운영하는 거죠. 단어의 쓰임을 더 확장하자면 ‘싸우는 사람들’이라고도 생각해요. 작든 크든 자기 영역 안에서 누구나 싸움을 하죠. 책 읽기, 글쓰기 모임을 하면 내가 사는 곳을 조금 더 나아지게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와요. 그들 모두 활동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정리=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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