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항쟁 77주년 위령제···“역사 기록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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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금) 오전 10시 대구10월항쟁 77주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 73주기 합동위령제가 위령탑(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28번지)에서 열렸다.

식전행사로 류희연 불교무용연구원장의 살풀이, 김수경 국악밴드 나릿 대표의 진혼가를, 혜원스님(대한불교조계종 법흥사 주지스님), 송병구 목사(색동교회), 성용규 신부(신평천주교회 주임신부)가 종교의례를 진행했다.

이어 제주에서 올라온 4·3평화합창단이 노래했고, 평화를 노래하는 가수 우창수&김은희가 만든 ‘시월이 동백에게’를 답가로 불렀고, 가수 박성운이 10월항쟁추모곡 ‘10월의 그리운이여’를 불렀다.

▲6일(금) 오전 10시 대구10월항쟁 77주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 73주기 합동위령제가 위령탑(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28번지)에서 열렸다. 채영희 유족회 이사장이 눈물을 닦고 있다.

채영희 (사)10월항쟁유족회 이사장 재배를 시작으로 대구지역 유족과 제주4.3유족회 영남위원장 등 전국의 한국전쟁민간인 희생자 유족이 전통제례를 지냈다. 위령제에는 200여 명이 참석했고, 10월문학회 회원들이 시 걸개를 전시했다.

채영희 이사장은 “요즘 유가족이 자꾸 세상을 떠나고 있다. 그래서 10월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역사에 기록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다행히 올해 10월항쟁 77주년을 맞이하여 희망이 빛나고 있다. 10월을 기억하는 젊은이들, 시민단체 등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고 함께 가자고 한다”고 말했다.

▲6일(금) 오전 10시 대구10월항쟁 77주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 73주기 합동위령제에 제주 4.3평화합창단원들이 노래공연을 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의 추도사는 이재홍 대구시 행정국장이 대독했다. 홍 시장은 추도사를 통해 “보다 많은 시민이 10월항쟁과 한국전쟁 전·후 대구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민간인 희생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랑하는 가족을 억울하게 잃은 유가족의 아픔에 공감하며 마음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김일수 10월항쟁유족회 이사(경운대 교양학부 교수)는 “10월항쟁의 현재적 의미는 ‘냉전을 넘어 공존 내지 평화’의 정착에 있다. 담대한 10월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며 “동시에 10월항쟁으로 인한 희생의 진상규명에 대한 명예회복, 거기에는 유족에 대한 보상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날 저녁 7시 한일극장 건너편 차도에선 10월항쟁 77주년 행사위원회 주최로 10월항쟁 77주년 진실규명, 명예회복 및 정신계승 대구경북시도민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달 ’10월 항쟁 77주년 기념사업’이 대구 곳곳에서 전개된다. ’10월 항쟁을 기억하는 시민모임’ 및 ‘시월합창단’을 희망한다면 사진전 현장 가입 또는 구글폼(클릭)을 통해 신청 가능하다.

▲6일(금) 오전 10시 대구10월항쟁 77주기,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희생 73주기 합동위령제가 위령탑(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128번지)에서 열렸다.

10월항쟁은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퍼져나간 해방 이후 최초의 민중항쟁이다. 1946년 9월 24일 대구에서도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의 총파업에 동참한 노동자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9월 30일 미군정의 식량 정책에 항의하는 시민 400여 명이 쌀을 요구하는 시위도 벌어졌다. 10월 1일 경찰 발포로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미군정의 식량 정책과 친일 경찰 중용 문제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에 나왔다.

한국전쟁 전후 10월항쟁 참가를 이유로 희생이 이어졌다. 1950년 7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던 10월항쟁 참가자들은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가창골, 경산 코발트 광산 등지에서 적법절차 없이 처형됐다. 경찰의 집단 처형 인원은 1,438명으로 추산된다. 좌익에 있다가 전향한 사람을 가입시켜 정부가 만든 국민보도연맹원을 적법절차 없이 처형한 사건도 벌어졌다. 확인된 희생자 숫자만 4,934명, 대구는 99명이다. 학자들에 따라 의견이 다르지만, 최소한 10만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2009년 진실화해위원회가 10월 대구사건과 대구보도연맹 관련 사건이 공권력에 의한 희생이었다는 진상규명 결과를 결정했고, 10월항쟁유족회가 결성됐다. 유족회는 이때부터 많은 희생자가 나온 가창골에서 합동위령제를 지냈다. 때마침 2010년 3월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 책임을 인정한 뒤 정부 쪽에 사과와 위령 사업 지원을 권고하면서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

10월항쟁유족회에 따르면 10월항쟁 및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족 100여 명이 2기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상규명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