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과 함께 걷는 광막한 현대사···‘길 위에 김대중’

개봉 앞두고 대구서 시사회···김대중이 겪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고민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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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쿠데타나 암살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힘에 의해서 돼야 진정한 민주주의다.” (10.26 사태 직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고)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을 떠나, 국민을 일으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성패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국민은 결코 독재를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밑거름이 돼야 겠다. 뭔가 결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가택연금 중이던 김 전 대통령이 명동성당에 나타나 ‘민주구국선언’ 낭독을 결심한 배경)

“나는 늘 길 위에 있었다. 어디서든 부르면 달려갔다. 그래서 늘 고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연설과 삶에 박수를 보내고 격려했지만 돌아서면 외로웠다.” (김 전 대통령 회고 인터뷰 중)

길 위에 선 김대중은 민중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성공한 사업가로 살거나 독재 정권을 피해 망명할 수도 있는 길이었지만 김대중은 고난 속으로 들어갔다.

신안군 하의면에서 보낸 김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부터 87년 6월항쟁 이후 12월 13대 대통령 선거 직전까지. 김대중 대통령의 생애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길 위에 김대중'(명필름, 시네마6411 제작) 개봉을 앞두고 대구에서 시사회가 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시네마 6411 제공)

영화는 김대중이 겪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과 그 상황에서 김대중의 고민을 육성 회고를 통해 짚는다. 회고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외침이 공허한 외침으로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진전할 것인가’에 대한 김대중의 치열한 고민이 드러난다.

그의 회고와 연구자, 배우자인 故 이희호 여사 등 등장인물의 증언을 당시 기록된 사진·영상자료와 함께 듣다 보면 의회주의자이자, 평화주의자로서의 김대중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다양한 현대사 사건이 담긴 영화지만, 그중에서도 광주 민중항쟁의 비중이 단연 높다. 신군부가 김대중을 당시 항쟁의 배후로 몰아가면서 내란음모, 계엄령 위반으로 사형이 선고됐다.

“내가 죽더라도 반드시 민주주의로 돌아온다. 이런 일을 저지른 분들한테 보복하지 마라. 보복하지 말고 민주주의만 확고히 해라.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하라”라고 말한 김대중은 1987년 출소 이후 광주에 방문했다. 광주 민중 학살 소식을 감옥에서 들은 김대중은 출소 이후에야 광주 망월동을 찾을 수 있었다. 김대중은 광주 시민과 열사들의 무덤 사이에서 오열했다.

영화는 다양한 평가가 제기될 수 있는 1987년 대선과 ‘국민의 정부’ 집권 시기에 대해선 다루지 않는다. 최낙용 시네마6411 대표는 이에 대해 “고민을 참 많이 했다. 일대기를 다 담겠다는 목표였는데, 여기까지 다루는 데만 2시간이 걸렸다”며 “이후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도로 영화를 또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만든 것은 역사적인 지도자도 있었지만, 그들을 지지하고 지원했던 수많은 시민들, 기차를 따라가며 박수치고 광주에 모인 분들, 5.18 광주에서 돌아가신 분들. 그 이름 없는 분들이 만든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영화가 현재의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에 대한 물음을 받고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이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어떻게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추구했냐는 부분에 집중했다”며 “보시는 분들에 따라 해석할 수 있지,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이슈를 던지겠다는 목표는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 탄생 100주년인 2024년에 정식 공개되는 ‘길 위에 김대중’ 개봉일은 오는 1월 10일이다.

▲’길 위에 김대중’ 포스터(시네마 6411 제공)

박중엽 기자
nahollow@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