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OK목장의 결투’, 서부극의 정서를 소환하는 한국적 현실의 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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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부개척시대’라는 만들어진 신화

서부극은 역사가 일천한 미국의 ‘신화’다. 1776년에 동부 13주가 독립전쟁을 통해 영국에서 분리되었으니 이제 200여 년 남짓한 짧은 역사에 불과한 미국이다. 유럽에서 종교적 박해를 피해 상륙한 소수 이민자들이 결국 선주민인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몰아내고 빼앗은 땅인지라 오랜 역사가 성립될 리 없다. 하지만 광대하고 비옥한 땅의 선물과 비등한 경쟁상대가 없는 천혜의 조건 덕분에 이민자들은 자신들이 ‘명백한 운명’을 신에게서 사명으로 받고 그 대가로 ‘신대륙’을 영유할 권리를 얻었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 맹목적 사명감으로 대륙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끊임없이 정복을 이어나갔다. 그 결과물이 오늘날 북미대륙을 제패한 미합중국이다.

풍요와 강성함을 만끽했지만, 역사가 짧다는 건 어찌해볼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걸 다 가졌지만, 유서 깊은 역사의 무게감만은 어쩔 수 없다. 벼락부자, 시쳇말로 졸부행세에 불과하다고 그들이 유래한 땅 유럽의 오래된 강국들은 뒤에서 천박한 ‘양키’라며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20세기 전반에 양차 세계대전을 거쳐 유럽열강이 자멸할 때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원조를 베푼 미국은 초강대국으로 등극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이제 ‘제국’이라는 패권과 ‘민주주의’라는 이념을 동시에 거머쥐려 했다. 형용모순인 두 개의 과일을 한 번에 틀어쥐려 한 것이다. 그런 가운데 현대에 만들어진 신화가 등장했다. ‘서부개척시대’라는 신화다.

◆ ‘서부극’의 신화가 미국 대중문화에서 점유하는 위상

우리에게 ‘서부개척시대’는 흔히 ‘서부극’ 또는 ‘카우보이 영화’로 국한되지만, 실은 전 세계로 뻗어나간 미국 대중문화 콘텐츠 전반에 그 기본골격이 녹아들어 있기에 은연중에 의식도 못한 채 서부극의 서사에 익숙해져 있음을 문득 발견하게 된다. 쉽게 예를 들자면 20세기 대중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 중 하나가 된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 연대기는 배경만 외우주로 옮긴 서부극 설정의 이야기다. 특히 시리즈 전체의 주역이라 할 스카이워커 가문, 특히 오리지널 3부작의 주역인 제다이 기사 루크 스카이워커와 그의 고향 사막행성 타투인은 장소만 외계 행성일 뿐 서부극의 배경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한다면 의외로 서부극의 전통이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초의 서부극은 ‘명백한 운명’과 미합중국의 건국 서사를 결합한 것이었다. 청교도 이민자들이 갖은 고난을 겪어가며 진취적인 개척자 정신을 발휘해 (원주민이 있다는 건 쏙 빼놓고) 광활한 대륙으로 진출해 나갔다. 아직 연방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서부에서 개척자들은 자신의 가족과 목숨 걸고 피땀 흘려 얻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총구를 들이대는 무법자나 머리 가죽을 벗겨간다는(!) ‘야만적’ 원주민들에 맞서 싸워야 했다. 건국 과정의 견해 차이에서 촉발된 지역 간 대립구도는 ‘남북전쟁’이라는 참혹한 ‘내전’의 상처를 통해 비로소 정리되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광활한 대륙의 끝까지 나아가는 것이었다. ‘서부개척시대’라는 신화적 시공간의 탄생이다.

서부극의 1단계는 미국의 정당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프론티어 정신’을 긍정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선 역은 선량하고 신앙심 깊은 개척자와 이들을 보호하는 보안관, 그리고 기병대, 그리고 마초일지언정 기사도 정신을 발휘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카우보이들이었다. 그 대척점의 악역은 애꿎은 원주민, 부패하고 악랄한 멕시코 정부군, 선량한 개척민을 위협하는 무법자들로 채워졌다. 이 시기의 신화적 영웅의 대표 격은 연방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였다. 그리고 대항마로 ‘갱스터’이긴 하지만 反영웅적인 매력을 지녔던 무법자 ‘빌리 더 키드’가 동전의 앞뒷면처럼 역사책보다는 대중문화 콘텐츠에 끊임없이 소환되며 미국 근현대사에서 신화시대를 장식했다.

와이어트 어프에 대한 영화나 드라마는 숱하게 만들어졌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OK목장의 결투’라 불리는 1881년 애리조나주 툼스톤시 인근 OK목장에서의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전설적 사건은 이번에 소개하려는 단편영화의 제목으로 고스란히 대입된다.

◆ 경북 시골에서 재현된 ‘OK목장의 결투’

▲[사진=영화 <OK목장의 결투> 스틸이미지]

시골목장 한 구석에 자리한 주거용 컨테이너 안에서 소년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뚫어지게 화면을 응시한다. 바로 유명한 서부극 <OK 목장의 결투>다. 인근 마을에 군림하며 횡포를 부리던 ‘클랜턴 갱’에게 새로 부임한 연방보안관 와이어트 어프가 경고를 날린다. 두 적대하는 그룹 사이에 마침내 생사를 걸고 충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화면에 몰두하던 소년의 귓가에 시끄러운 바깥 소음이 들려온다. 소년의 아빠는 외지에서 온 남자들과 격한 언쟁을 벌이는 중이다. 목장 주변에는 부당한 토지수용에 항의하고 수도권과 동일한 기준으로 보상하라는 요구가 담긴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아마 차를 타고 온 남자들은 이들 부자의 목장을 강제로 수용한 기관의 직원들로 보인다. 이들은 소년의 아빠에게 보상금 수령확인을 요구하지만, 거센 항의에 직면할 뿐이다. 일단 물러나지만, 언제고 다시 쳐들어올지 모른다.

각성한 소년은 텔레비전 시청을 그만두고 마당으로 향한다. 은밀하게 구석에 숨겨둔 가죽 탄입대와 장난감 권총을 허리에 두르고 카우보이의 트레이드마크를 연상케 하는 모자를 눌러쓴다. 아빠가 트럭을 타고 어디론가 외출한다. 이제 곧 돌아올 외부의 침략자들에게서 목장을 지켜야 할 사명은 온전히 소년의 몫이다. 소년은 ‘육혈포’를 점검하고 결전의 각오를 다짐한다. 마을 주변을 정찰하던 소년의 눈에 동의서 수령을 위해 이웃집을 방문한 그들 주택공사 직원들이 포착된다. 곧 우리 목장으로 쳐들어올 것이라는 긴장감에 소년은 목장 진입로에 수레와 의자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숨어서 그들을 조준한다.

▲[사진=영화 <OK목장의 결투> 스틸이미지]

마침내 결투의 순간이 도래한다. 준엄한 경고를 날린 뒤 소년은 무례한 침입자와의 대결을 각오하지만 예상치 못한 소년의 공세에 움찔했는지 남자들은 졌다는 표시로 손을 든 채 그저 아빠에게 서신을 전달해 달라고 한 뒤 자리를 뜬다. 소년은 침입자를 물리쳤다는 승리감을 만끽하려 하지만 어째 찜찜한 감각이 든다. 그런 가운데 귓가에 들려오는 공사 소리는 그치지 않는다. 길쭉한 축사에 들어선 소년의 좌우엔 온통 소떼들의 울음만 들려올 뿐이다.

◆ 소년의 순수한 시선 vs 서부극 대립구도의 모순점

영화는 대개 대도시 구도심이나 재개발 추진지역에서 일어날 법한 상황을 그동안 그다지 소환되지 않던 근교의 농촌 지대로 옮겨서 재현한다. 부동산 개발 광풍 속에서 공공기관이지만 부동산 투기와 강제수용 등으로 대중적으로 썩 평판이 좋지 않은 LH 주택공사가 ‘빌런’을 담당한다. 일방적 주거단지 개발구역 지정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은 보상금만 받고 터전에서 내쫓겨야 하는 주민들의 사연을 어린아이의 시선을 통해 투영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대개 사회적 리얼리즘, 즉 현실의 단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데 주안점을 두곤 하는 한국독립영화의 관성 가운데 해당 작품은 서부극 코드와의 조합으로 처음부터 시선을 끌어당긴다.

▲[사진=영화 <OK목장의 결투> 스틸이미지]

여기에서 소년의 포지션은 해석에 따라 중의적으로 받아들여질 운명이다. 정통파 서부극이라면 그가 재연하고자 하는 역할모델은 자유롭고 정의로운 무법자다. 즉 현대에 재림한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처럼 기사도 정신을 지켜 약자를 수호하거나 삼국지나 수호지에 흔히 출현하는 협객 포지션에 해당한다. LH공사 직원들은 약자의 것을 빼앗는 부패한 이익집단의 전형에 속할 테다. 하지만 여기에서 일차적으로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만다. 즉 소년이 본으로 삼으려는 OK목장의 결투 스토리는 공권력의 대행자인 연방보안관이 지역의 토착세력을 물리치는 내용이라는 점이다.

OK목장의 결투는 수차례 영화로 옮겨졌다.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에 의해 1946년 <황야의 결투>로, 1957년엔 존 스터지스 감독이 <OK목장의 결투>로, 1993년 조지 P.코스마토스 감독은 <툼스톤>으로 각각 거의 동일한 배경으로 영화를 내놓았다. 다양한 해석과 가설이 후대에 덧붙여지긴 했지만 와이어트 어프가 연방보안관이라는 정부권력의 대행자였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그렇다면 엄연히 공공기관인 LH공사 직원과의 대립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저 서부극의 스테레오 타입 설정인 정의로운 카우보이 vs 무법자 일당 구도로만 이 영화는 설정을 삼고 있는 걸까?

◆ 서부극의 세대별 특성과 상반되게 교차하는 본 작품의 지형도

서부극의 다음 단계로 넘어가 다시 구도를 비교해 보자. 흔히 ‘수정주의’ 서부극이라 불리는 2세대 서부영화 작업들은 이탈리아 출신 감독 셀지오 레오네의 좌파적 시각이 투영된 경향성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기존의 확고부동한 선악구도 대신에 다양한 이면과 실제 역사적 사실의 반영이 이어지는 작업이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코믹해 보이는 장르 명칭과 달리 해당 시기 작품군들은 종래 선악구도를 탈피해 각 집단별 실제 역사와의 관련성이나 현실 정치와의 연결고리, 그리고 계급적 역사관을 가미해 다채로운 변주를 거듭한다. 흑인 카우보이의 존재, 원주민 학살의 치부, 남부와 북부 출신 백인들의 대립구도, 멕시코 민중혁명의 조명이 차례로 이어진다.

▲[사진=영화 <OK목장의 결투> 스틸이미지]

이런 흐름은 전혀 다른 배경을 지닌 동아시아에까지 상륙해 ‘홋카이도 웨스턴’, ‘만주 웨스턴’ 등의 하위 장르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홋카이도 웨스턴은 일본 근대 초기 북해도 일대 개척 과정에서 벌어지는 항쟁과 충돌에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대입되는 아이누 원주민을 등장시킨다. 만주 웨스턴은 청나라 붕괴 후 중국의 재통일 이전 만주국 시대를 배경으로 군벌과 일본제국, 독립군 등이 어우러지는 모험활극을 창조한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그런 장르의 대중적 재연일 테다. 셀지오 레오네의 작품들은 하나도 가볍게 풀이하기 난망하기에 별도의 해설은 생략한다. 그와 오래 함께 작업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로 일단락된 수정주의 서부극 흐름은 하지만 이 단편 <OK목장의 결투>가 내비치는 선명한 대결구도와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굳이 적용될 만한 경우를 들자면 ‘저주받은 걸작’으로 흔히 손에 꼽히는 1980년 마이클 치미노 감독의 <천국의 문>이 걸맞을 법하다. 1880년 와이오밍주에서 기득권세력이라 할 대농장주들이 새롭게 진출한 소규모 자영농들을 몰아내고자 권력을 동원해 공권력과 제도언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내전을 방불케 하는 폭력으로 이주민들을 학살하고 내쫓은 사건을 배경으로 한 작업이다. <디어 헌터> 같은 걸작을 만들었지만, 감독은 미국 역사 중에서도 가장 신화화된 서부개척시대의 추한 종막을 후벼 파낸 덕분에 상업적으로 철저히 몰락함은 물론 ‘반미영화’로 찍혀서 곤욕을 치러야 했다. 건드려선 안 될 걸 건드린 셈이다.

◆ 장르영화 문법과 사회문제 조명의 결합 실험은 계속된다

기이하게도 이 단편의 제목과 구도는 <OK 목장의 결투>를 배경으로 한 여러 편의 작품들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명한 선악 구도와 서부극에서 정의의 주인공이라면 중세 기사들이 ‘엑스칼리버’ 같은 명검을 휴대하듯 반드시 허리춤에 차고 있던 ‘콜트 싱글 아미’, 우리에겐 ‘육혈포’로 번역된 6연발 리볼버(실린더 회전식 수동 장전 권총)의 조잡한 장난감을 휴대한 것까지 정확히 일치한다. 하지만 실제 영화 속 설정만 놓고 보자면 오히려 <천국의 문>의 상황과 주인공의 처지가 닮은 셈이다. 공권력은 합법이라 들이대며 선량한 주민의 토지와 재산을 빼앗으려 하고, 주인공은 ‘자경단’이 되어 무력으로 항쟁에 나선 형국이기 때문이다.

▲[사진=영화 <OK목장의 결투> 스틸이미지]

과연 감독이 서부극이라는 미국의 가상신화 전통에서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배제하고자 한 것인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다. 하지만 감독이 어디까지 고려하고 기준점을 설정하려 한 것인지 사실관계 확인과는 별개로 이 영화는 서부극의 세대 및 경향성 분류를 대입하는 순간 작품의 범위를 초월하는 흥미로운 독해의 장이 열리는 체험으로 전환될 수 있다.

별도로 전해들은 바로는 감독의 원래 비전에서 제한된 제작환경과 자원 수급 때문에 부분적으로만 완성된 결과물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뭔가 이야기가 더 나아갈 것 같은데 하던 의구심이 일정 부분 해명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만약 온전한 원안으로 작업되었더라면 어떻게 해석될 수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미완의 작업이 되고만 셈이다. 장르영화 문법과 사회적 주제의식의 조화가 근래 한국독립영화에서 반드시 쟁취해야 할 고지 중 하나라면 좀 더 자세하고 세밀하게 시도가 정리되어야 할 테다. 좀 더 확장된 버전 혹은 후속 작업을 기다려봐야 확인될 건이다.

▲[사진=영화 <OK목장의 결투> 스틸이미지]

<작품정보>

OK목장의 결투 Gunfight At The O.K. Corral
2022|한국|드라마|16분
감독/각본/색보정 변석호
출연 서지완, 박진성, 신치영, 김동환
촬영/조명 김도완
PD/미술 이윤호
동시녹음 김태형
스크립터 홍소담
제작부 이진규, 이준호
촬영/조명팀 조성림, 김만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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