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칼럼] 2024 한국 스포츠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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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시행된 스포츠기본법은 “스포츠의 가치와 위상을 높여 모든 국민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나아가 국가사회의 발전과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제 목적을 흔들림 없이 달성하기 위해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이하 정책위)를 두도록 했는데, 법 시행 1년 6개월이 지난 올해 12월 20일에 이르러서야 첫 회의가 열렸다.

정책위의 위원은 국무총리를 공동위원장으로 무려 15개 부처의 장관(급)과 대한체육회장, 대한장애인체육회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을 당연직으로 하고, 민간위원을 포함, 총 25명 이내로 구성된다. 이번 1기 민간위원에는 이애리사(전 태릉선수촌장), 허구연(KBO 총재), 이종각(전 체육과학연구원장), 박종훈(가톨릭관동대 교수), 김석규(동국대 교수), 김기한(서울대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대한체육회(회장 이기흥)는 2023년 12월 27일(수) 제27차 이사회를 개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업무 행태에 대한 이사회 명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는 민간위원의 위촉에 있어서 체육계 원로들이 추천한 자들이 선발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으며, 당연직인 대한체육회장이 사직서를 제출하기도 하고, 각종 체육 관련 단체를 줄줄이 나열하며, 모든 대한민국 체육인의 중지가 모인 듯 번갈아가며 성명을 발표했다. 자신들의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면 추후 장관 퇴진 운동 등 실력행사까지도 예고했다. 성명서에는 문체부와의 갈등 관계를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물론, 최근 논란이 된 해병대 캠프까지 ‘뭐가 문제냐’는 식의 격앙된 반응도 담겼다. 이에 대해 문체부도 이례적으로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체육계의 이런 갈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스포츠를 주도하는 이들은 소위 말하는 엘리트 체육인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이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체육인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자임하며, 각종 요구를 관철하는데 능숙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번 체육회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련의 대처 방식도 기존의 레퍼토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같은 편’을 주요 자리에 ‘꽂는’ 자리싸움에 민감한 것도, 누군가 이견을 보인다면 ‘현장’을 모르는 소리로 일갈하는 모양새까지 한결같다.

이들이 자기 밥그릇에만 특별한 관심을 갖는 사이, 한국의 풀뿌리 스포츠는 고사 직전에 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한국은 워낙 스포츠 강국이다 보니 마치 대단한 저변이 갖추어진 가운데 우수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나가 연일 승전보를 올리는 것 같지만, 실상은 선수가 없어 지역대회 개최는 엄두도 못내고, 있는 선수, 없는 선수 긁어모아 전국대회만 근근이 치루는 종목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어떤 종목에서는 참가실적을 위해 경기를 해본 적도 없는 일반 학생을 경기장에 가만히 세워두는 ‘꼴’까지 보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다. 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현장’에는 비인기 종목 지도자들의 선수 유치가 눈물겨울 지경이다. 태권도 학원처럼 방과 후에 운동을 시키고, 다른 학원 픽업도 해주는 데다가 무료로 운동할 수 있다며 선수를 모으고, 사재를 털어 밥도 챙겨먹이며, 고단한 학부모들의 육아를 덜어주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한 명이 아쉬운 운동부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지도자들이 적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최근 운동부에 들어오는 학생은 다문화 또는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많은데, 공부만 시키려는 한국 학부모들의 ‘조바심’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언감생심이기 때문이다. 축구나 야구와 같은 인기 스포츠가 아니라면 이런 현상은 다른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멋진 스포츠 선수를 꿈꾸며, 운동부에 들어오지만 선수등록에서부터 한국 사회의 텃세를 맛보기도 한다.

눈을 돌려보면 무료한 주말, 마을 어귀 다리 밑에는 운동할 시설을 임대할 돈도, 방법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터에 크리켓 경기장을 만들어 놓고 그들만의 주말 운동회를 즐기고 있다. 지방의 지자체장과 담당자들은 부족한 일손을 구하기 위해 해외로 발품을 팔며 애를 쓰지만, 그들이 한국에 와서 운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남들이 안보는 공간을 찾아들어 가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행정이다. 과거 이민자가 급증한 프랑스는 일찍이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방법을 통해 스포츠 저변과 실력을 모두 잡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진짜 현장’에 있는 풀뿌리 지도자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한국 사회 스포츠 저변을 지탱하는 ‘진짜’ 원동력이다. 몇 명을 추려 ‘운동기계’를 만들던 과거 방식으로 지속할 수 있는 것들은 얼마 남아있지 않다. 오징어 게임의 주최자 할아버지의 외침 “이러다 다 죽어~!!”가 생각난다. 정권에 따라 엎치락뒤치락 말고, 꿋꿋하게 한국 스포츠의 미래를 세우고, 밀고 가라는 의미에서 어렵게 만든 ‘국가스포츠정책위원회’는 개혁에 실패하고 진부함만이 남은 구태의연한 자칭 ‘체육인’ 세력의 자리싸움 따윈 외면하고, 더 많은 아이들이, 더 많은 이민자들이,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권을 향유할 수 있는 ‘진짜’ 방법부터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김현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