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 칼럼] 스포츠 꿈나무? 나무도 없다

14:49
Voiced by Amazon Polly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한창이다. 국민들은 최근 한국 국가대표팀의 기량이 ‘아시아의 맹주’라는 위상과 같이 압도적이지 못해 실망하면서도 축구 특유의 극적인 승부를 통해 그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대표팀의 위상은 외국 프로리그에서도 뛰어난 경기력을 과시하는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이면에 그들의 몸값이 천문학적인 액수라는 점이 자리하고 있다. 손흥민이나 김민재 선수 한 명이 상대 팀 선수 전체의 연봉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사실은 과거 우리 대표팀이 늘 당하던(?) 상황의 반전이라 짜릿하기까지 하다. 그래서인지, 제2의 손흥민, 김민재를 꿈꾸는 어린 친구들은 너도나도 동네 축구클럽에 가입하며 ‘혹시나’ 하는 꿈을 키우는 중이다.

하지만 축구를 제외한 다른 종목을 들여다보면 처참하다. 시골 학교들이 학생이 없어 줄줄이 폐교하듯이 오랜 전통의 학교운동부가 선수가 없어 문을 닫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체육 단체, 체육 전문가들은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에 따른 피치 못할 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그대로 두면 국제 스포츠 경쟁력이 약화된다, 운동부를 신규로 창단하면 운영비를 지원하겠다, 국가적인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는 둥 돈과 관련한 이야기만 나올 뿐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체육계가 운동부 해체 원인을 학령인구 감소에서만 찾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해결책이 만들어 낼 수 없다. 내부의 문제는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필자부터 내 아이를 운동부 시킬 마음이 없다. 아이가 체육교과 우수상도 자주 받아올 만큼 운동을 좋아하고, 또 잘하는데다, 원했던 적도 있다. 더구나 전공자로서 운동이 주는 이점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평소 아이가 운동을 열심히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기에 가벼운 스포츠클럽 정도는 적극 권장하지만, 엘리트 운동부를 안 시키는 이유는 온전히 내부에 있다. 학습권 박탈, 선수로서의 불투명한 미래, 못 미더운 지도자, 입시, 취업 등과의 연관성 등 아이를 운동부로 보내기에 불안한 요소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필자만의 것일까?

교육부에서 매년 조사하는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는 수년째 운동선수가 차지하고 있다.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란 소리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운동선수처럼 흉내라도 낼라치면 공부는 자연스럽게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어느 부모가 반길까? 요즘의 부모들이 자식의 미래에 대해 많은 정보를 입수하고, 적극적으로 판단해 나간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아직 인생의 선택지가 넘치는 아이들에게 운동부라는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을리 만무하다는 것이다.

스포츠꿈나무를 키우는 학교운동부에 꿈을 꿀 나무조차 없는 끔찍한 상황에서 다시 꿈나무들이 자라게 하려면 운동부가 ‘엘리트 꿈나무 양성의 요람’이라는 소리부터 접어야 한다. ‘엘리트’라는 소수 정예의 운동기계를 만드는 전략은 구시대적일 뿐 아니라 그 혹독한 시스템에 들어가고 싶은 자원도 남아있지 않다. 학교운동부는 자발성을 전제로 다양한 수준에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경쟁은 치열하되, 교육적인 목적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학업을 우선으로, 자기 수준에 맞는 운동부에서 학교 안과 밖의 경쟁을 경험하고, 승리와 패배의 교훈을 교육적으로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건이라면 누구도 운동부를 주저할 이유가 없다. 또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진 수준 높은 친구들은 마치 국위선양의 모든 것을 책임진 것처럼 지원과 기대를 독식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낮은 수준에서 경쟁하는 친구들의 목표가 되어야 하며, 그에 걸맞은 지원으로 키워져야 한다.

현장에서 운동의 좋은 점이 부각되고, 지금의 관행으로 인한 부작용들이 없어지면 나중에 그 ‘학생’이자 ‘선수’는, 선수로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스포츠의 좋은 점만을 기억하며, 평생 스포츠를 즐기는 건강한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국민 모두는 스포츠가 좋은 문화라는 것을 알기에 학업을 고려하여 축구교실, 태권도장 등을 다닌다. 심지어 자비를 들여 말이다. 학교 운동부 시스템이 다양한 수준의 운동부로 만들어져 있다면 참여 안할 이유가 없지 않겠나 말이다.

그리고 덧붙여 체육계는 지원이 부족하다, 엘리트 시스템이 붕괴한다 등과 같이 위기를 조장하고, 지원만 바라는 단편적인 진단도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어차피 학령인구가 없어 엘리트 스포츠가 붕괴하고 있는데, 있지도 않은 엘리트 선수 양성에 무슨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이제 그 지원은 오롯이 엘리트 체육 시스템을 탈피하고, 모두를 위한 스포츠를 통해 저변을 넓혀나가는데 쓰여야 한다. 체육계도 이 정도의 자구적인 개혁도 없이 지원만 바라는 근성도 버릴 때가 됐다.

김현수 전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