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8배’ 선거구의 탄생? 해법과 대안은 없을까

국회의원은 대선거구에서, 시군별 관점은 지방연합회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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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현재 국회는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았다. 다만 오는 3월 11일 재외선거인명부를 확정해야 하는 등 선거구 획정이 초읽기에 들어갔기 때문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출한 원안대로 선거구가 획정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이번에도 관심을 모으는 것은 초대형 선거구의 등장이다. 중선관위 원안에는 강원도 속초·철원·화천·양구·인제·고성이 한 선거구로 묶여 있다. 이전에도 이미 전국 농어촌 각지에서 여러 군이 하나의 선거구로 편성되는 것은 흔한 일이었지만, 강원도의 30%, 서울의 8배에 달하는 면적(4,872㎢)이 하나의 선거구를 이루는 것은 초유의 현상이다.

▲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가 국회에 제출한 2024년 총선 경상북도 선거구.

농어촌 의석수 늘리기는 비현실적이며 바람직하지도 않아
초대형 선거구에서 1명 뽑느니 대선거구제로 여러 의원 갖는 게 더 나아

항간에서는 지역소멸 위기에 처한 농어촌에 더 많은 의석수를 부여하는 배려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표의 등가성’은 중대한 가치다. 한국의 소선거구제는 유권자가 전체 지역구 의원(현 253석) 중 1명만 결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한 선거구가 20만 명인 곳도 있고 5만 명인 곳도 있다면, 한 표가 가진 결정력의 편차는 1 대 4까지 벌어지게 된다. 헌법재판소도 2014년 지역구 인구 편차를 2 대 1 이내로 유지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저촉되는 선거구 획정은 불가능하다.

1~2개 군이 한 명의 국회의원을 보유하려면 의원 정수가 현재의 2배 이상은 되어야 한다. 의원 정수 대폭 확대는 여론의 반발 때문에 비현실적이거니와 이뤄진다고 해도 도시-농어촌간 의원수 비율은 그대로다. 1~2개군당 1명의 국회의원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니다. 농어촌 위기는 지역을 넘어 도시 주민들까지 합세해 국가적으로 대처해야 할 사안이며, 지방 본연의 일은 군수와 군의회 등이 지방자치로 할 수 있다.

오히려 농어촌 선거구 문제는 광역단위 전체를 하나의 선거구로 묶거나 광역단위내 2개의 선거구를 가지는 대선거구제로 푸는 것이 더 낫다. 강원도 30%의 권역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느니 강원도 전역에서 8명의 의원을 뽑는 것이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지역구 주민들과 여러 군수, 군의원들이 한 명의 국회의원만 쳐다보게 되고, 국회의원은 지역 영주 비슷한 입장이 된다. 지역내 다양한 여론이 반영되지 않으며, 의원이 국가적 관점을 갖기 어렵고, 지방자치는 국회의원에게 위협받을 수 있다(농어촌에 오히려 대선거구제가 필요한 여러 이유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조). 

시군별 관점 국가 정치 투영 필요하지만
지방분권은 지역간 불평등 되고, 양원제는 정치 ‘결박’

그래도 시군별 관점이 국가의 중앙정치에 투영되어야 한다면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 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아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국회를 양원제로 바꾸자는 주장이 있다. 의회를 두 개 만들어, 한 곳에서는 표의 등가성을 지켜서 의원을 선출하고, 다른 한 곳에서는 모든 지역에서 1명의 대표자를 선출하자는 것이다. 양원제 주장은 대개 ‘연방(에 준하는) 수준의 지방분권 국가로 만들자’는 취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양원제에는 큰 위험이 있다. 첫째, 한국을 굳이 연방 수준의 지방분권 국가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연방제는 지역간 문화와 제도의 이질성이 큰 나라에서 지역간 차이를 존중하되 통합국가를 만들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한국은 이에 해당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래야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지방분권은 지역간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인구와 국토에 관련된 국가적 기획을 어렵게 만든다.

둘째, 양원제는 정치적 교착 상태를 더욱 굳혀놓는다. 그러지 않아도 현재 한국정치는 행정과 의회의 분립 속에 의회 다수파의 법안 통과-대통령의 법안 거부권 행사를 연달아 목도하고 있다. 여기에 상원과 하원의 견제와 대결까지 겹치면 한국정치는 교착을 넘어 ‘결박’ 수준이 될 것이다. 이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하는 미국에서도 양원제와 대통령제가 만드는 정치적 교착에 대해 심각한 우려와 반성이 제기되고 있다.

셋째, 선거제도와 권력구조, 정치체제가 개혁된다면 의회‘들’간의 견제는 더더욱 필요 없다. 다당제와 연합정치가 안착되면 단원제 의회에서도 특정당파의 독주는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지자체장으로 구성된 지방연합회의를 제안한다
법안 거부권, 법안 발의권, 국민투표 부의권 등 줄 수 있어

그렇다면 양원제에 이르지 않는 한도에서 시군별 관점을 국가 정치에 녹여낼 수 있는 방안은 없을까. 필자는 ‘지방연합회의’를 제안한다. ‘의회’가 아니라 ‘회의’인 것은 양원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처럼 국가 정치의 최종 결정권은 국회에 두면서, 이 국회를 어느 정도 견인하거나 견제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국회를 대선거구제 및 비례대표제로 선출하게 되면,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지역별 대표를 포함한 지방연합회의는 더더욱 명분을 얻게 될 것이다. 

지방연합회의의 구성원은 굳이 별도의 선거로 뽑을 필요는 없다. 도지사, 특별시 및 광역시의 시장, 시장, 군수, 구청장 등이 겸직하면 된다. 국회처럼 자주 회의를 여는 것은 아니므로 겸직을 해도 무방하다. 혹은 단체장이 사정상 참석할 수 없을 때는 단체장 위임을 받아 부단체장이나 해당 지방의회의장이 참석해서 발언하거나 표결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지방선거는 지방연합회의 선거의 성격도 겸하게 된다. 

지방연합회의는 어느 정도의 권한을 갖는 것이 적절할까. 다음과 같은 권한이라면 국회 단원제를 존중하는 가운데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국회에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 일정 이상의 구성원이 연서명한 안은 국회에 발의된다.
2
) 지방연합회의에서 과반 찬성으로 의결된 안은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해 일정 기간 이내에 표결하도록 한다.
3) 국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지방연합회의 표결에서 과반이 반대하면 국회는 이 법안을 재표결해야 한다. 국회에서 과반 찬성이 재확인되면 법안은 최종 통과된다. 다만, 지방연합회의의 2/3 이상이 반대하면 국회는 60% 이상이 찬성해야 법안을 재의결할 수 있다. (국회의 재의결 정족수 기준이 지방연합회의의 재의 요구 정족수 기준보다 낮은 것은 국회의 권한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4) 구성원 2/3 이상이 동의가 있으면 지방과 관련된 사안을 국민투표에 부의할 수 있다.
5) 그 밖에 결의안이나 건의안을 통과시켜 국회나 정부에 대해 요구를 할 수 있다.

큰 권한은 개헌 필요하지만 현행체제에서도 할 일 많아 
지자체 사무조합에 모든 지자체 가입하는 것도 가능  

현행 체제에서 법안 재의 요구권과 국민투표 부의권은 대통령만 행사할 수 있고 법안 발의나 국회 본회의 직회부에 관한 권한은 국회(의원)에게만 있다. 위의 권한을 가진 지방연합회의는 헌법 개정을 해야 만들어질 수 있다.

선거제도 개혁도 물거품이 되는 상황에서 개헌은 매우 요원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소선거구제에서도 선거구가 광역화되는 현실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시군별 관점이 국가 정치에 투영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지방연합회의 구성을 위한 개헌에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

또한 현행체제에서도 지방연합회의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의견 제시만 활발히 해도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의회와 행정부에 대한 영향력도 더 커질 것이다.

큰 권한을 주는 것은 개헌이 필요하지만, 국회 입법이나 정부의 행정 지원으로도 지방연합회의는 제법 넉넉한 터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 단체장들의 결의만으로도 임의단체로 출발할 수 있다. 지방자치법상 허용되어 있는 지자체 사무조합이나 행정협의회에 모든 지자체가 가입하는 길도 있다. 지자체 사무조합에는 지자체장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고 조합이 조합회의를 구성할 수도 있다(단, 광역단위를 넘어선 조합에는 행정안전부장관의 승인이 필요하다). 

김수민 객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