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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3부작의 마지막 남은 조각, ‘아빠’를 찾아서
감독은 한국 사회 소수자 문제에 천착한 작업을 이어가는 것과 병행해 성인이 되어 독립한 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가족들에 관한 기록작업을 진행했다. 엄마의 늦깎이 배움 도전 과정을 담은 <어머니가방에 들어가신다>, 치매를 앓으며 시골집에서 생의 황혼을 묵묵히 이어가던 할머니를 관찰한 <늙은 연꽃>에 이어, 가족을 기록할 때 가장 어정쩡한 위치이거나, 대개 친밀도가 확연히 낮은 대상, ‘아빠’가 마지막 주자로 등판한다. 3번째이자 마지막 가족 관찰영화, <공사의 희로애락>이 그렇게 출발을 개시한다.
화면에는 지역 어딜 가나 구석진 동네에서 흔히 볼 법한, 딱히 용무가 없다면 대개 들를 일 없을 작은 공장지대가 등장한다. ‘중소’ ‘제조업’이라는 정의에 마치 FM 마냥 맞춤 형상인, 다해 봐야 10명 채 안 되는 금속 가공 공장에 카메라는 한참을 머문다. 중년 남성 노동자들은 묵묵히 묵직한 강철을 자르고 이어가며 작업에 매진한다. 한동안 고단한 노동 현장을 비추는 카메라와 병행해 아마도 그곳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화면에 깔린다.
그 목소리는 자신이 살아온 길을 묵묵히 돌아보며, 마치 노동자들의 대변인처럼 왜 그들 세대는 오직 일, 일, 일에만 매달리는지 본인의 생애사 해설을 통해 풀기 시작한다. ‘놀 줄 모르는 세대’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제목으로 적격일 듯하다. 대선을 앞두고 툭 하면 튀어나왔다가 사라지는 주 4일제, 4.5일제, 52시간 노동 같은 담론이 아직 먼 나라 이야기로만 아득하게 멀던, 아니 상상 저편에 있던 시절, 전 국가적 에너지가 오로지 ‘잘살아보세’와 빈곤 탈출, 경제성장에 집중하던 시절 한국인의 평균치 삶이라 봐도 좋을 내용이다.
주 6일제, 잔업과 야근이 당연하던 시절에 ‘회사형 인간’으로 사는 데 추호도 의문을 품을 수 없었던 목소리의 주인공, 그가 속한 세대는 ‘놀 줄을 몰랐다.’ 급한 경조사가 생기건 말건 시킨 일 묵묵히 감당하는 게 사회적 미덕이던 시절, 그나마 주 1일이라도 얌전히 휴식이 보장될 경우 그가 할 수 있는 건 밀린 수면을 보충하고 최소한의 사회적 관계망 유지를 위한 공적-사적 활동을 위해 오롯이 바쳤다. 우연히 뜻밖의 휴일이 생겨도 달리 계획을 수립하지도, 행운을 상상해 본 적도 없기에 오히려 당황하기만 했다. 해외여행 계획을 연 단위로 계획하고 차근차근 준비하는 걸 당연시하는 세대에겐 상상하기 힘든 삶이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는 계속된다. 서서히 관객은 그가 감독과 사적으로 깊은 관계라는 걸 깨닫는다. 둘은 부녀 관계다. 전작의 주인공이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음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아마도 본 작품의 시작점일 테다) 노모와 작별을 경험한 그는 ‘늙어간다는 것’의 허무함, 상실감을 담담히 토로한다. 자신도 노모도 일평생 오로지 일만 하며 가족을 지키는 삶에 매진했지만, 이제 나이듦과 더불어 쓸쓸하고 허탈한 회고 내용은 묵직하게 바닥에 깔리는 분위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인생 헛살았다는 회한이 화면에 가득하다.
경상도 중년 남성의 생애와 노동을 재구성하다
화면에 주인공이 등장한다. 영화 제목이 자막으로 제시되고, 다큐멘터리의 전형적 장면처럼 공장에 붙은 작은 사무실을 스튜디오 삼아 감독은 아빠와 인터뷰를 사적 친밀함을 바탕에 깔고 이어간다. 틈틈이 공장의 일상과 그곳의 사람들을 닮은 구석구석의 풍경이 등장한다. 세월의 흔적 묻어난 주름과 상처가 조명되고, 첩첩이 쌓인 손때 묻은 도구와 남에게 보여질 것이라곤 전혀 고려하지 않은 내부 환경이 공개된다. 질팍한 노동과 삶의 현장이다.
작업을 멈추고 작업장을 빠져나가던 사람들은 동료 혹은 상사의 자식일 감독에게 간간이 인사를 건넨다. 자신을 찍는 카메라가 거북하진 않은지 이번에는 뭘 촬영하느냐 가볍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건 ‘그림’이 안 나올 텐데 하는 생각이 말에 묻어난다. 하지만 감독은 아빠가 그저 그런 사회적 초상의 한 조각에 불과할 어떤 세대 생애사에 본격 도전할 기세다.
공장을 벗어난 카메라(를 든 감독) 다음 코스는 아빠와 함께 자동차를 타고 출발한 ‘로드무비’의 시간이다. 부녀의 흔치 않은 동행은 여러 번에 걸쳐 이뤄졌을 테지만, 이 촬영 분량을 편집해 마치 ‘국토 대장정’처럼 솜씨 좋게 이어붙인다. 아빠의 인생 여정이 그렇게 재구성되기 시작한다.
그 첫 단추는 이제 임무를 다 하고 서서히 쇠락해 가는 경북 구미의 공단이다. 1970년대 초 만들어진 수출기념탑을 지나며 아빠는 딸에게 자신이 사회인으로 첫 번째 걸음을 내딛던 당시를 감회에 젖어 풀어낸다. ‘너희가 그때를 알아?’와는 거리감이 있는, 하지만 흔히 포착되듯 자신들의 세대가 보릿고개를 극복하고 먹고 살 만하게 이룩한 위업을 자랑스럽게 추억하는 기류다. 그런 경험담이 가족사와 교차하며 아라비안나이트 첫 장처럼 봉인을 푼다.
구미공단에서 자동차는 남쪽으로 향한다. 차는 거제도에 도착한다. 물론 목가적인 해안가 전망을 보여줄 리 없다. 카메라에 담긴 풍경은 모 대기업 직장인 아파트 단지다. 사회 초년생이자 건축업에 종사하던 아빠가 경제개발 과정에 ‘복무’한 성취의 기록이다. 대화 중에 굳이 언급되지 않더라도, 예비군도 대기업 사업장의 경우 직장 단위로 편제하던 국가-회사형 인간으로 전 사회가 조직되어 있던 당시 시대상이 상상된다. 효과적 동원과 사내복지의 결합이던 그런 사택단지는 오늘날 노동시장 이원화와 함께 양극단으로 나뉜 노동 조건으로 계승되었음을 관객은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이제 ‘역사’가 된 과거를 향한 상호이해와 대화의 공론장
물론 감독은 아빠의 추억 회고가 ‘무용담’으로만 치우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제어한다. 내가 이것도 짓고 저것도 세웠다는 자랑에 그치지 않도록 주인공의 고단한 과거 노동의 나날을 끄집어낸다. 이는 그의 가족이 공유하는 부침과도 연결되며 회사형 인간이라도 피할 수 없는 질곡의 기억으로 통합된다.
이제 자동차는 거제에서 전라도 광주로 이동한다. 도로 위에서도 대화는 천일야화처럼 끝없이 계속된다. 광주에 도착한 부녀는 차창 너머로 국내 굴지 대기업 사무용 빌딩을 바라보며 아빠가 건설에 참여했을 그 건물 공사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애를 공유한다. 비좁은 차내는 이제는 뭐든 말할 수 있는 ‘대나무숲’이 되어준다. 과도한 업무량, 터무니없는 요구사항, 동료의 무사안일한 관성에 관한 실망, 사람에 치이고 지치며 속앓이하던 고통 가득한 기억이 속속 부활한다.
지금은 ‘달빛동맹’으로 불리며 수도권에 한참 뒤처진 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파트너십 형성하지만, 과거 지역감정으로 대립하던 시절엔 동서를 넘어 교류하는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호남 지역으로 여행만 가려 해도 만류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았다. 그 당시엔 대구와 광주를 연결하는 교통편은 오직 왕복 2차선 ‘88고속도로’ 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고속도로란 이름이 초라하게 유례없이 비좁은 해당 도로에선 악천후와 야간에 사고가 잇달았고 워낙 열악한 도로 사정 탓에 사고만 나면 목숨 부지하기 힘든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런 도로 형편을 감내하며 한 주에도 몇 번씩 원청 주문에 따라 이 ‘죽음의 도로’를 왕복하던 아빠의 노동은 그야말로 하루하루 목숨을 건 피로와의 사투였던 셈이다. 처절하게까지 들리는 그런 극악한 삶의 조건과 응어리를 듣다 보면, 관객은 대개 ‘그땐 다들 그랬지’ 하고 흘리기 일쑤인 가혹한 시대 개별이 감수해야 했던 무게를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아래로부터 재구성된 민중사의 범주로 전환 격이다.
아빠의 회고는 그가 전심전력으로 임했던 가족 부양과 자식으로서 도리를 정작 그 강제된 노동으로 온전히 감당하지 못한 사건, 어딜 가나 경험하게 되는 무임승차자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진다. 영화 초반에 그가 풀이하던 작업장 동료관과 통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성세대가 갖는 스테레오 노동관과 닮아 보이면서도 좀 더 심층적이고 일상에 깃든 내용이다. 그렇게 세대와 세대의 토론이 아빠와 딸의 대담 형태를 통해 확장을 겪는다.
가족 3부작 대단원을 마무리하는 3대의 만남
그렇게 산업화 세대의 모래알 같은 한 조각이 자신의 삶으로 체험한 기록이 남한 땅을 한 바퀴 빙 도는 여정과 더불어 이어진다. 그들의 차량은 이제 대구 수성구 황금네거리에 닿는다. 이 주변에는 수입차 매장이 곳곳에 있다. 그중 흔히 성공한 사람의 상징으로 취급되는 독일 명품 자동차 수입대행사 지점 앞에서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제 점점 영화의 기원인 가족 역사가 비중이 늘어난다.
다시 자동차는 그들 가족의 원류라 할 경북 예천으로 향한다. 읍내 시장 현대화 사업 일환으로 재래시장이라면 전국 곳곳에서 진행된 아케이드 작업도 자신이 담당했노라고, 작업 과정의 희비를 덤덤하게 풀던 아빠는 이제 주인을 잃은 할머니의 빈집을 찾는다, 부녀는 함께 산소를 방문하고, 아빠는 일거수일투족을 족족 카메라로 담는 딸 앞에서 폐가를 정돈하며 너스레를 부린다. 자신의 삶을 누군가에게 속 시원하게 회고한 이의 옅은 기쁨의 미소가 함께다.
한바탕 응어리를 토해내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는 듯 그는 모친이 삶의 마지막까지 놓지 않았던 농사일, 하지만 정작 자신은 지어본 적 없었던 농사 도구를 장난스럽게 다뤄본다. 농사만이 살길이던 전-산업화 세대와 성장 지상주의에 동원되던 산업화 세대, 그리고 앞 세대가 축적한 토대 안에 갇힌 (감독 자신이 속한) 후속 세대의 사회상이 무심히 스치는 화면을 통해 지형도를 구축한다. 신기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솜씨 좋게 도리깨질을 시범 보이는 아빠의 웃음 가득한 얼굴은 세대 차원의 자부심인 동시에 회한만 가득하던 그의 생애가 헛되진 않았다는 긍정이기도 할 테다. 여러모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그렇게 아빠와 대하 로드무비 여정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감독은 다시 지금 현재의 삶으로 복귀한다. 가족사의 내밀한 부분을 거슬러 올랐던 자식 세대는 이제 그가 목격한 것에 관해 스스로 감옥에 가두고 편집 과정을 거쳐 해석해야 하는 과제에 봉착할 테다. 그 실무 과정은 영화감독이 수행하는 일상의 노동인 동시에 사적으론 자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존재들을 향한 대화와 소통의 장으로도 기능할 것이다.
‘사적 다큐멘터리’가 추구하는 모범적 사례가 전하는 진심
감독이 TK 동네에서 분리 독립한 현재의 거주지에선 서울 구석구석 산재한 재건축 현장이 창문 너머 한눈에 들어온다. 아마 며칠만 지나도 몰라보게 하늘을 찌를 듯 솟구치는 아파트 단지 공사현장에는 타워크레인이 삐죽삐죽 서 있고 공사장 굉음이 요란하게 귀청을 때린다. 그 풍경은 매일 지긋지긋하게 봐왔음직하지만, 아빠와의 시간을 기록했던 감독에겐 여느 이웃들과는 분명히 다른 중층적인 체험이 될 테다. 감독의 시선과 연동된 것처럼 카메라는 물끄러미 창문 밖을 조망한다. 음성이나 자막을 통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때론 침묵이 더 많은 말을 한다.
그렇게 둥지를 떠난 자녀 세대의 일원은 좀 더 중립적으로, 하지만 혈연에서 출발한 원초적 공동체의 관계를 끊어내지 않으면서 관찰을 계속 이어간다. 사적으론 공동체의 지속성을 위해, 공적으론 압축근대를 겪으며 지금도 나날이 갈등이 심화하며 단절로 치닫는 한국 사회의 숨은 연결고리를 포착하는 작업과 더불어 말이다.
<공사의 희로애락>은 ‘사적 경향’이 빠지기 쉬운 자기연민과 사회와 단절을 극복하고, 오히려 일상에서 사회적 담론을 끄집어내는 묘미를 전면화한 작업이다. 개인의 삶과 거대한 세상의 사건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란 통찰과 이를 규명하겠다는 작가의 집요한 노력이 반드시 전제되었을 때 가능한 경우다. 물론 고단한 과업임은 이루 말할 필요가 없다.
감독은 내내 카메라를 들고 아빠를 기록한다. 가족이기에 자식이 뭘 하는지는 몰라도 카메라에 무방비로 자신을 내맡기고 아빠 미소를 짓던 상대가, 문득 카메라를 빌려달라고 한다. 감독은 영문을 알 수 없다. 카메라를 넘겨받은 아빠는 감독을 찍는다. 이 작품이 두 날개로 삼은 공적 고찰과 사적 회고를 상기하듯,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이분법에 더해 자식과 부모의 일 방향 관계성을 돌파하는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순간적으로 겪은 찰나를 오랜 숙고 끝에 상징적으로 구축한 방법일 테다. ‘카메라를 든 사람’의 고민과 성취라는 면에서 이리 보고 저리 보며 참고할 지점이 풍성한 작업이다.
<작품정보>
공사의 희로애락
Under Construction
2017|한국|다큐멘터리
미개봉|89분|전체관람가
감독/촬영/편집 장윤미
촬영보조/현장진행 윤직원
출연 장수덕, 故 박노연, 장윤미2018 10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최우수한국다큐멘터리상
2018 44회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언급김상목 영화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