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054] 박정희 동상과 AI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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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동상과 AI 교과서는 닮은 구석이 꽤 많다. 대구시와 대구교육청 각 기관의 장이 밀어붙인 결과물이라는 점, 곧 처치 곤란이 될 예정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시민의 반대를 거슬러 추진했다는 점이 같다. 아직 이들을 둘러싼 논란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도 빼먹으면 안 된다.

대구시는 지난해 12월 동대구역 광장에 박정희 동상을 세웠다. 홍준표는 동상 제막식에서 “박정희의 산업화 정신이 대구의 3대 정신 중 하나”라고 밝혔다. 박정희우상화사업반대범시민운동본부가 조례 폐지 서명운동을 벌이는 등 반대 의견이 모였지만 애초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홍준표 시장을 닮았다’는 수군거림 속에 세워진 동상은 공무원들이 밤낮 보초를 서는 촌극도 만들었다. 홍준표는 서울 시민이 되어 미국으로 쉬러 간다니, 동상 입장에서 제 역할은 다한 셈이다.

AI 교과서는 또 어떤가.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은 ‘올해는 학교별 자율 선택에 맡긴다’는 교육부 지침은 무시한 채 ‘대구는 전면도입’을 천명했다. 덕분에 대구의 AI 교과서 도입률은 100%를 기록했다. 전국 평균이 33%인 것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인 수치다. 물론 예산을 들인 만큼 학교에서 잘 쓰이면 그만이다.

한 달 반이 지난 시점, 대구에선 하루 평균 접속자가 초등학교 11%, 중학교 6.8%, 고등학교 7.3%에 그쳤다. 인프라, 기자재 등 제반 비용은 논외로 치더라도 앞으로 학년, 과목이 확대되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추가로 투입된다. 다가올 대선과 교육감 선거 결과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만 지금으로선 더불어민주당 내 반대 여론, 진보 교육감들의 추가 개발 반대 입장을 고려하면 맨 앞에 선 대구교육청은 진퇴양난이다.

선거보다 먼저 마주한 건 “이건 아니”라며 일어선 시민들의 반발이다. 1만 4,700여 명이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에 관한 조례 폐지에 동의하는 서명을 했다. 한 초등학교 교사가 도저히 가만 있을 수 없어 ‘AI 교과서 강제 도입에 따른 학교 예산 낭비’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하기 위해 시민 1,526명의 서명을 받았다. 조례 폐지는 6월 대구시의회에서 심의할 예정이고, 공익감사 청구는 감사원에서 실시 여부를 검토 중이다. 소수의 반대로 치부하기에 이 흐름은 명확하고 거세다.

▲대구 달서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직접 AI 교과서에 반대하는 시민 1,526명의 서명을 받아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사진=독자)

다만 아깝다. 박정희 기념사업을 밀어붙이기 위해 쓰인 행정력, 반대를 위해 사용된 시민사회의 시간, 기자들의 취재 노력이 아깝다. 지방소멸, 환경오염, 산업재해, 이주민과 장애인의 생존권 등 대구의 미래를 결정지을 현안이 쌓여 있다. AI 교과서 도입에 쓰인 예산도 아깝다. 그 수십억 원이면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얼마든지 있다.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처우, 학생 마음건강 프로그램 등 최근 기사화된 사안만 꼽아도 열 손가락이 모자란다.

결국 해결하는 건 시민의 힘이다. 광장에서, 일터에서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 이들이 스케치북에, 피켓에 꾹꾹 눌러쓴 반대를 들고나온다. 그 목소리를 기사에 담으며, ‘일부의 목소리일 뿐’이라는 대구시와 대구교육청 입장을 덧붙이며 생각한다. 이 시간 낭비, 돈 낭비가 남긴 것을 굳이 찾는다면 대구의 다양한 목소리를 드러나게 했다는 점일 거라고.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