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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대학교 여성학과 석사과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지역 연구자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졸업생 등이 모여 ‘계명대학교 여성학과 지키기 공동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공대위에는 68개 단체와 1,901명의 개인이 연서명을 통해 함께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계명대학교 여성학과 석사과정은 2010년부터 정책대학원 소속으로 운영됐으나, 올해 정책대학원 폐원이 결정되면서 사실상 폐지 수순에 놓였다. 여성학과 측은 “일반대학원에 여성학과 석사과정을 개설해달라”고 대학본부에 요구하고 있다. [관련기사=계명대학교 대학원 여성학과 폐지되나···공대위 꾸려져 반발(‘25.4.10.)]

8일 오전 계명대 여성학과 지키기 공대위는 계명대 성서캠퍼스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에는 여성학과 졸업생과 재학생, 지역 여성단체 활동가, 지방의회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여성학과를 별도로 두지 않고 사회학과 내 세부전공으로만 두는 것은 여성학의 학문적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는 구조적 폭력”이라며 “여성학은 독립된 학문 분야로서 고유의 이론, 방법론, 실천적 지향을 갖고 발전해 왔다. 통합은 여성학의 존재 가치를 축소시키고, 학문적 자율성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대학과 사회학과가 여성학과 소속 교수와 학생들에게 사회학과 통합 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인 구조 개편을 추진했다”며 “여성학 교수진과 커리큘럼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회학과와 통합이 이루어진다면, 여성학 전공 교육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이는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고 지역사회에서 여성학을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 일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문 대표인 금박은주 포항시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비례)는 “2001년 입학했으니, 여성학과와 인연을 맺은 것도 25년이 다 되어간다. 계명대 여성학과는 대구경북, 나아가 대한민국의 성평등을 만든 여성운동가를 배출한 곳”이라며 “여성학과는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이자 정의다. 여성학과 운명을 특정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 학교 측이 여성학과 석사과정의 일반대학원 개설을 재검토해달라”고 요구했다.
송경인 대구여성의전화 대표(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젠더기반 여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고 상담하는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피해자들의 경험을 언어화할 수 있는 것은 여성학뿐임을 더 절실히 느낀다. 우리에겐 여전히 여성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공부의 장이 필요하다”며 “학생 수가 줄고, 주요학문이 통폐합되는 대학의 실정 속에서도 계명대 여성학과는 대구경북을 넘어 여성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망을 담아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적 논리로라도 여성학과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김예민 대구여성회 대표(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도 “졸업생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지만 오늘은 대구시민의 한 사람으로 지지의 말을 전하기 위해 섰다. 계명대학교 여성학과가 사라지는 건 대구시민과도 직접적 연관이 있다”며 “젠더기반폭력, 돌봄 불균형, 성별에 따른 노동격차, 청년세대의 성평등 인식 차이로 인한 억압과 갈등 등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일상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성학과 페미니즘은 이러한 사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식이자 실천”이라고 설명했다.
재학생들은 여성학을 사회학과 내 세부전공으로 공부하게 될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했다. 석사과정생 유경화 씨는 “정책대학원 신입생 모집 중단 이후 대안으로 일반대학교 여성학과 개설을 요구했으나 무산됐다. 사회학과 학과장에게 묻는다. 여성학과 석사과정 일반대학원 개설을 누가 반대하고 막았는가”라며 “사회학과에서는 여성학 석사과정이 이미 사회학과 내에 존재하고 있다고 하지만, 재학생 누구도 사회학과 내에 여성학 석사과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다”고 주장했다.
박사과정생 김태영 씨도 “그간 사회학 수업에서 여성학은 사회학의 하위 분과 학문 정도로만 취급했다. 나는 박사과정생으로 이미 통합의 부작용을 경험하고 있다”며 “이 학문이 단지 행정 효율성과 인원수를 근거로 통합되어야 한다면, 이는 지난 35년간 여성학이 쌓아온 학문적 노력이 모욕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장은 “가장 좋은 건 여성학과, 사회학과가 각자 독자학과가 되는 거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으니 대학본부가 사회학과 세부전공으로만 두기로 결정한 것”이라며 “분리주의 관점으로 여성학을 좁게 정의할 게 아니라 사회학과랑 손 잡고 살아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계명대학교 대외홍보팀 관계자는 “정책대학원에선 학사 운영상 부담을 느끼고 있었고, 몇 차례 대책회의를 거쳐 신입생 모집 중지를 결정하게 됐다. 정책대학원 여성학과 역시 평균 한 학기 2명 정도 등록하고 있었다. 수요가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당장 일반대학원에 개설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립대학에는 기초학문이 통폐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정책대학원에서 여성학 석사를 졸업하고 사회학과에 박사를 하기 위해 입학하는 경우가 있었으니, 굳이 이원화해서 운영할 필요가 없다는 상황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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