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053] 지방 청년세대의 꿈과 도전이 희미해지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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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은 직장인, 혜리는 작가 지망생이다. 둘은 함께 지역에서 또래 청년들의 사진 커뮤니티를 꾸리는 중이다. 약간의 회비를 걷고, 퇴근 후 시간을 조율하며 동네 책방에서 모임을 이어간다. 달리 돈이 되는 일은 아니지만, 어떤 보람과 사명감 때문에, 선후배 사이인 둘은 커뮤니티에 애착이 깊다. 하지만 모임의 지속 가능한 활동을 위해 필수인 공공지원사업 신청은 번번이 탈락하고, 더 많은 기회를 찾아 혜리는 서울로 이주를 결심한다.

커뮤니티 유지를 위해 고민이 많던 유정은 믿던 후배 혜리가 마음이 떠난 것 아닌지 의구심을 품고, 둘의 관계는 소원해져만 간다. 일과 모임을 병행하기 버거운 유정, 진로 걱정에 고심하는 혜리는 서로 평행선을 긋기만 한다. 하지만 더는 모임을 억지로 끌고 가는 게 한계라는 공감대에 닿은 둘은 유종의 미로 그들이 꾸려온 커뮤니티의 출발과 끝을 돌아볼 계기를 준비한다.

화면 속 풍경과 실제 지역 현실을 연결하는 도전

박유진, 진현정 두 감독의 공동작업인 <커뮤니티>는 극영화의 구조를 취하지만, 묘하게도 실제를 극화한 상황극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두 감독이 각각 작품 속 주인공이라 할 커뮤니티 공동운영자 유정과 혜리를 연기하고, 지역에서 함께 작업하며 의견을 나누는 젊은 창작자 그룹이 배우와 스태프 대다수를 차지한다. 자문을 맡았을 지역 커뮤니티 모임 활동가 역시 주요 배역을 담당한다. 그래서 캐릭터 연기라기보다는 실제 인물들의 일상과 활동을 고스란히 압축해 놓은 기분이다. 생활 연기 혹은 평소에 출연자들이 공유하던 지역 커뮤니티 활동의 명암이 영화 내내 가득 농축되어 있다.

영화는 지역에 몸과 마음을 붙이고 살고픈 청년세대가 주목하는 사회적 모임 활동에 초점을 맞췄다. 21세기 한국의 과도한 수도권 밀집 원인을 들자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기회’의 현저한 격차가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는 데에는 이론이 없을 테다. 지역에서 구직 활동에 성공하더라도, 자립하기 쉽지 않은 형편에 직장과 집만 전전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같은 사회초년생이더라도 서울에선 다양한 체험 기회가 마련되어 있기에 정서적 박탈감은 상당하다. 나고 자란 동네에서 터를 잡고 살려 해도 대화가 통하는 상대나 취미를 공유할 집단을 찾기가 힘든 상황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문화예술을 접하고 자아실현에 힘쓸 경로 부재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측면이다.

물론 지역에도 예전과 비교해 다양한 모임 활동과 문화체험 기회가 늘어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실태를 짚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마련이다. 지역주민센터나 도서관 등에 개설된 각종 강좌나 교육은 대부분 은퇴생활자나 직장에 다니지 않는 시민 이용 위주로 기획되어 있고,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만 양산하는 식의 획일적인 내용으로 채워진다.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참여형 수업과는 거리가 멀고, 좀 심한 경우엔 교육은 뒷전에 사교활동이나 적당히 시간 보내기에 기우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연령대도 유소년 아니면 중장년층 이상에 비중이 맞춰지기에 정작 쌍방향 소통과 교육 종료 이후에 자생적 모임 활동을 이어가고픈 청년세대에겐 적합하지 않은 사례가 태반인 셈이다.

그런 가운데 공공기관에서 Top-Down 방식으로 정해진 프로그램이 아니라 실제 기층의 다양한 요구와 수요에 대응하는 쌍방향 위주 민간 프로그램이 기획되기 시작한다.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를 기대하는 공간 및 경비 지원사업에 힘입어 이런 자발적 모임 활동은 삽시간에 유행처럼 확산한다. 책 모임이 생기면 북카페나 동네 책방이 활성화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북 토크나 창작 활동이 일어나는 식이다. 퇴근 후나 휴일을 활용해 연극이나 영화를 제작하기도 하고, 지역 올레길을 개발하거나 숨은 역사문화 탐방을 고안하기도 한다. 갈 곳 없고 기존 지역 사회에 섞이지 못하던 이들에겐 새로운 숨 쉴 틈, 혹은 돌파구가 열린 것이다.

그렇지만 무한한 기대와 함께 번창할 것 같던 지역 커뮤니티 활동은 머지않아 여러 벽에 부딪히기 시작한다. 늘 지원해주는 곳에선 투입된 자원이 잘 쓰였다는 평가에 집착한다. 하지만 민간 커뮤니티라는 게 기업활동처럼 대입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도 그에 맞춘 중장기적 전망과 청사진 대신에 단타 실적을 수치화하는 데 집착하는 건 공공기관과 관료제도의 필연적 한계다. 그에 따라 실질적인 활동 성과를 다양한 각도로 조명하기보다는, 그럴싸한 계획서와 외형적 행사 이벤트를 선호하며 풀뿌리 도전보다 ‘선수’들을 단골로 삼게 된다. 지원을 받기 위한 모범답안이 눈에 보이자 다들 그 범위에만 매몰된다. 그렇게 자생성과 창발력은 삽시간에 휘발되고 만다.

그렇게 판에 박힌 커뮤니티 지원사업은 모임의 방향을 결정하고 만다. 상징적인 찰나들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모임 후배에게 새로 집필한 원고 품평을 의뢰한 그녀가 직면한 상황 역시 그 연장선이다. 뭔가 억지 결론을 내고 그럴싸한 외형을 갖추기 위해 형식에만 치중한 글이라는 뼈 아픈 평가 앞에 혜리는 말문을 잇지 못한다. 그런 그녀가 마음 추슬러 참석한 모임에서 참가자들은 커뮤니티 활동의 즐거움을 예찬하며, 뭐든 투박하고 어설퍼도 도전할 각오를 다지게 해준 모임의 순기능을 화면 가득히 증언한다. 커뮤니티 활동의 정수이자 본질이 무엇인지 웅변하는 찰나라 하겠다.

자생적 커뮤니티가 ‘박제’가 되는 흔한 과정의 형상화

<커뮤니티>는 그런 어두운 현실 전부를 다 담을 순 없지만, 큰 틀에서 일반화된 사례를 제시하려 한다. 유정과 혜리의 사진 모임 구성원들은 적극적으로 참여 의지도 강하고 다른 데 눈도 돌리지 않는 모범적인 사례의 전형이다. 혼자선 발현하지 못하던 다양한 자아실현 욕구를 모임 덕분에 일깨우고, 그로 인한 긍정적 기운 덕분에 평소 도전하지 못한 꿈을 조금씩 이뤄가는 참이다. 두 사람 역시 그런 풍경에 희망을 얻고 운영의 수고를 잊을 수 있다.

이들은 사진 모임 활동을 위해 그동안은 단지 스쳐 지나던 동촌유원지 등 동네의 여러 풍경을 포착하고, 골목길 지하에 위치해 그리 목이 좋지 않은 독립서점도 꾸준히 찾게 된다. 실제 활동중인 수성구 ‘물레책방’, 서구 ‘담담책방’, 북구 ‘내마음은 콩밭’ 같은 독립서점과 지역 공동체 공간이 영화 속에서도 현실 기능을 소화한다. ‘선순환’ 구조를 소박하게나마 구현하는 전형적인 예시다.

하지만 결국에 그들이 벌이는 커뮤니티 활동은 안정된 외부 지원이라는 수혈 없이 지속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대개 이런 지원사업 회의론자들이 제기하는 쟁점, ‘자립’하지 못하는 한계는 처음 들으면 타당한 지적으로 보이지만, 외형상 경제효과로 드러나기 힘든 이런 자생적 민간 모임 활동의 성격을 엉뚱하게 규정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책상 위에서 계산기를 두드릴 때는 그저 마이너스일 뿐이지만, 소수나마 미래 세대 혹은 그간 지역 사회에서 발언권을 얻지 못하던 이들이 소속감을 얻고 지역에서 만족하는 삶을 보낼 수 있다는 건 함부로 측량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좀 더 다양하고 세분화한 지원 프로그램과 후속 관리가 필요한 사안에 단기 성과를 대입하면 주객이 전도되는 건 순식간이다. 황금알 낳을 거위 배를 성급하게 가르는 꼴이다.

영화 속 사진 커뮤니티 역시 그런 암초에 부딪힌다. 소박하기 그지없는 모임 활동계획은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그림을 선호하는 공무원들에겐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그토록 강조하는 자립 의지 없이 분야를 바꿔가며 지원사업에 밀착한 ‘선수’들의 사업계획 공모가 눈이 번쩍 뜨일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비해, 이들의 지원 신청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번번이 탈락하고 만다.

작고 소박한 커뮤니티 활동은 겉보기엔 너무 소소하기에 지원을 따로 안 해도 알아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 간과하기 쉽다. 하지만 비록 지원 규모가 작아도 다른 영리수단이 부재한 가운데 시간과 형편을 쪼개 간신히 유지하는 이 커뮤니티에 지원 탈락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다들 빠듯한 처지에 회비를 늘리면 경제적 부담, 모임을 줄이면 기대효과가 사라지는 셈이니 사실상 멸종을 기다릴 뿐인 처지다.

청년세대의 자발적 노력이 힘을 잃는 현실을 조명하다

유정과 혜리는 자신들이 시작한 모임의 성원들이 커뮤니티 활동 덕분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뤄가는 걸 실시간 지켜보며 자신들의 의도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그런 보람도 한순간, 자기만족만으로 수고를 감당하기엔 그들이 짊어진 부담은 자신들의 처지에서 계속 감당할 수 없는 무게다. 우리가 흔히 백일몽처럼 떠올리는 생각, 로또 당첨되면 좋은 일 좀 해보겠다는 푸념처럼 당장 자기 앞가림도 간신히 해내는 사회초년생 유정과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준비생 혜리가 다른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데엔 한계가 명백하다.

그런 두 주인공의 입지는 상징적인 몇몇 장면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유정은 야근이 일상인 직장생활 와중에 틈틈이 모임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가 직장에서 유일하게 구두를 벗고 한숨 돌릴 수 있는 장소는 비상계단 한구석에 불과하다. 그나마 휴대전화에선 쉴 새 없이 상사의 업무점검 호출이 이어진다. 다시 발에 꽉 끼는 구두를 신는 순간, 유정은 또래들처럼 톱니바퀴에 꽉 물린 부속 신세다. 자신은 이중의 부담을 짊어지고 허덕이는데, 후배는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것 같다. 괜히 눈이 흘겨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혜리는 작가 혹은 출판계에서 자리 잡기를 꿈꾼다. 취업 준비에 숨 가쁜 또래들과 비교하면 겉보기엔 유유자적한 모습이다. 그러나 창작물로 승부를 봐야만 하는 여건상, 적절한 자극과 긴장을 거쳐 유의미한 작업을 선보이고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 과거에 사법고시나 공무원시험 준비를 위해 괜히 비용을 들여가며 신림동이나 노량진으로 상경 유행이 벌어진 게 아니다. 적절한 향상심을 고취하기 위해 경쟁 구도는 필수다. 긴장감 유지조차 지방에선 사치가 되는 실정인 것이다.

하지만 혜리가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 통로가 되는 도서박람회조차 지방과 서울의 격차는 압도적이다. 꿈을 이룰 기회를 위해서는 수도권을 뻔질나게 왕복해야 한다. 서울에 살면 전철 왕복요금만 부담하면 되겠지만, ‘지방러’는 기본 교통비만 10만 원이 족히 깨진다. 매주 다닌다손 치면 차라리 서울로 이주하는 게 경제적인 동시에 효율도 높다. 청년세대가 서울로 떠나는 건 의지와 노력 부족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환경의 제약 탓이다.

그런 각자의 절박함은 오랜 우애를 맺어온 둘 사이를 소원하게 만든다. 하지만 서로를 싫어하거나 원한을 품은 건 절대로 아니다. 그들 모두 자신과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게 공통의 구조적 문제임을 잘 안다. 다만 극복할 방도를 아무리 애를 써도 찾지 못하는 게 문제일 뿐. 그렇게 자석의 양극처럼 밀어내고 당기기를 거듭하며 두 사람은 초심을 되새기고, 소소한 추수 감사를 기획한다. 공간 임대조차 정식 등록하지 않은 민간 커뮤니티라 애로가 꽃피지만, 곧 사라지게 될 추억 깃든 공간에서 그들만의 송별연처럼 사진전은 치러진다.

‘서울러’들은 이해하기 힘든, 하지만 ‘지방러’라면 공감할 내용

이제 각자의 길을 가게 될 두 사람에게 과연 미래는 희망적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들은 기회가 되는 한, 이미 맛보고 경험한 커뮤니티 활동의 소중함을 기억하며 가능한 도전을 이어갈 테다. 하지만 한때 번창하던 다양한 민간 모임 활동이 정체기에 접어들고, 실리 중심이나 목적과는 동떨어진 잿밥에 기울어 있다는 비판처럼, 그들이 새롭게 시도하는 모임 활동은 썩 순탄하지는 않은 모습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커뮤니티 모임 자체가 여전히 희소한 지역과 비교하면, 수도권은 이미 골라 먹기 좋은 조건, ‘소비자’의 태도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뭔가 실리적으로 얻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쪼개 참여하는데, 기대한 효과를 얻기 힘들다면 참여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함께 만들어가기보단, 진열대에서 상품 고르듯 선택하는 분위기가 정착된 서울에선 주인공이 기대하던 지역 커뮤니티 활동의 정서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환경 차이를 깨닫기까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문화향유 격차 해소의 방도로 기대되던 민간 커뮤니티 활동조차 주류 논리에 고스란히 편입되고 만 상태인 것이다.

<커뮤니티>는 영화 속 등장인물들과 비슷한 경험과 고민을 지닌 지역의 영화창작자들이 역할을 분담해 소소하게 작업한 소품 성격을 띤다. 구체적으로 내용에 살을 붙이기 위해 실제 커뮤니티 기획자들의 자문을 경청하고, 이런 활동을 돕는 지역 독립영화제의 소규모 지원사업과 영상미디어센터의 자원을 활용해 완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개별적인 취향을 기반으로 작업하게 마련인 청년 독립영화인들의 창작 경향을 탈피해, 자신들의 세대와 지역 사회의 쟁점을 한데 아울러 표현하고자 한 작품의 시도는 그만큼 희소한 동시에 귀한 가치를 지닌다.

다소 심심하고 전형적인 구도는 이 영화에 담긴 함의와 충분히 등가 교환할 만하다. 예측 가능한 전개로 흘러가지만, 간간이 툭 하고 튀어나오듯 등장하는 의미심장한 찰나는 제작진의 체험에서 우러나오지 않고는 구현되기 어려운 형질의 표현에 속한다. 모임을 유지하기 위해 악전고투하다 원래 시작의 즐거움을 잊어버린 데 대한 상실감, 적당한 재미를 쫓는 게 과연 커뮤니티 활동의 정체성과 부합하는가에 관한 회의가 두 주인공 각자에게 시시각각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영화 내에서 해소될 수 없기에, 작품을 만든 이와 관객이 된 이들이 함께 모색하자는 감독들의 고민이 응축된 작업이다.

<작품정보>

커뮤니티
COMMUNITY
2025|한국|드라마
미개봉|37분|전체관람가
감독/각본 박유진, 진현정
PD 김현정|촬영/조명 전상진|편집 진현정|동시녹음 이다운, 정수연|스크립터 김선빈
주연 박유진(유정 역), 진현정(혜리 역)
출연 최미나(미나 역), 태지원(지은 역),
김민아, 김지현, 성광제, 김명지, 김태연, 백민정, 이승우, 이석현, 서민정, 김동우
제작 일단영화당
제작지원 대구단편영화제

2025 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

김상목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