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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광장 : TK리부트] ④ 내란 청산이 제1과제
[광장 : TK리부트] ⑤ 내란이 들춘 언론의 민낯
[광장 : TK리부트] ⑥ 양당체제가 키운 내란의 씨앗
[광장 : TK리부트] ⑦ 내란을 넘어 대전환으로 : 어떤 민주공화국인가
광장은 아직 열려 있다. 4월 4일 윤석열이 파면되고 곧바로 대선 국면에 접어들면서 광장에서 나온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들이 흩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일상 속 작은 광장을 만드는 일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는 탄핵과 거부권 행사, 불통과 대결의 정치를 바라보면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공동체와 연대를 말하는 이들이다.
추풍령중학교 교사인 김기훈(40대) 씨도 그렇다. 기훈 씨는 학교에 더 많은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2월 3일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곧바로 다음날 ‘계엄은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폭거이다. 우리는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학급 훈화를 했고, 민원을 받았다. ‘실수했다’고 생각한 기훈 씨는 곧바로 민주주의 특별 수업을 열어 학생들과 민주주의 관련 시, ‘임을 위한 행진곡’, ‘다시 만난 세계’를 읽었다. 그 수업에는 민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윤석열 파면 선고 공판을 학교에서 함께 보는 것 역시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기훈 씨는 학교가 민주시민교육의 장이고, 선고 공판은 이를 배우기 아주 좋은 기회라 생각해 학생들과 생중계를 시청했다. 하지만 교사들 중에는 그 시간에 수업이 없어 일부러 보여주기 어려운 상황인 경우가 다수였고, ‘민원을 받진 않을까’, ‘나의 일자리는 괜찮은가’라는 걱정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반지성주의와 파시즘이 공적인 자리에서 계속 발화되는 걸 보며 기훈 씨는 화가 나는 동시에 두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를 차별하고 배제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다는 게, 또 그들에게 발언권을 주는 걸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보는 게 이상했어요. 극우파시즘은 민주주의에서, 심지어 자본주의에서도 받아들여져선 안 될 생각인데 그들이 발언권을 얻고 있잖아요. 학생들하고도 ‘중국 간첩이 그렇게 많을까? 그럼 우리 지역에도 있을까?’라는 얘기를 나눴어요. 불확실한 출처를 기반으로 기사가 나고, 그 기사가 공적인 자리에서 언급된 뒤 우리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것의 문제점도 나눴고요.”
12.3 내란사태 이후에도 윤석열 체제는 멈추지 않고 진행됐다. 기훈 씨는 개발주의, 이윤 중심의 체제, 기후위기 심화 관련 이슈들을 메모했다. 지난해 12월 중순 ‘농업 민생 4법’에 거부권이 행사됐고, 12월 말에는 대법원이 독성 화학물질이 포함된 가습기살균제를 제조 판매해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기업 대표들에게 금고형을 선고한 원심 파결을 파기 환송했다. 신공항 건설은 계속 추진됐고 돼지 농장에선 네팔 이주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원전 2기를 추가 건설하기로 했고,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의 외국인보호소 구금 기간을 연장한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민주주의의 시계가 돌아왔고 우린 승리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무수히 많은 곳에서 패배했던 것 같아요. 광장의 요구가 단순화된 건 일부분 승리에 힘이 됐지만 오히려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토론 기회를 놓치는 결과로 이어져 더 많은 일상의 패배를 가져오게 된 건 아닐까 걱정돼요. 광장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어요. 함께 만든 약속을 어기는 행동을 지적하면 먼 산을 보거나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윤석열을 탄핵해야 할 때다. 당신들의 차별금지법을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는 인식도 속상한 일 중 하나였죠. 우리가 만들어야 할 민주주의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토론을 계속해야 해요.”
물론 광장에서 신나고 즐거운 일도 있었다. 기훈 씨는 윤석열퇴진대구시민시국대회에서 비건 간식을 나눴다. ‘뻥’을 좀 보태면 간식을 나눴지만 간식이 줄지 않았다.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고 연대하는 것, 그곳이 아니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일들이었다.
“광장이 딱 그치니, 허전함이 생기더라고요. 각자가 일상에서 잘 버티고 있는지 걱정도 되고요. 작은 광장을 만드는 걸 게을리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죠. 학교에서도 이런 연습을 해야 해요. 공동의 목표를 갖거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모임을 지속해 나가는 방법을 연습해야 민주주의를 폭넓게 이해할 수 있어요. 우리는 적과 나를 구분하고 이기는 걸 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다양한 민주주의 방식을 이해하거나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