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뉴스민>은 12.3 내란 이후 매주 대구와 경북 곳곳의 광장에 선 시민 41명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들이 바라보는 내란의 원인과 그로 인해 악화된 문제는 무엇이며, 대구·경북이 그것에 더 기여한 것이 있는지를 물었다. 뿐만 아니라 12.3 내란을 극복하고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완수해야 할 과제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장의 힘으로 우리는 대구·경북을 새롭게 태어나게 할 수 있을지 엿보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TK리부트는 가능할 것인가,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광장 : TK리부트] ① 박정희를 청산해야, ‘윤석열 내란’도 청산할 수 있다
[광장 : TK리부트] ② ‘윤석열’과 ‘윤석열들’을 만든 사회
[광장 : TK리부트] ③ 내란으로 핀 혐오의 꽃
[광장 : TK리부트] ④ 내란 청산이 제1과제
[광장 : TK리부트] ⑤ 내란이 들춘 언론의 민낯
[광장 : TK리부트] ⑥ 양당체제가 키운 내란의 씨앗
[광장 : TK리부트] ⑦ 내란을 넘어 대전환으로 : 어떤 민주공화국인가
그건 분명 혐오를 넘어선 조롱이었다. 대구여성의전화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윤수빈(31) 씨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 이후 대구에서 열린 집회 실무를 이어가며 본 지역의 단면이다. 명확한 의견도 없는 이들이 집회 현장을 지나가며 의미가 불분명한 욕설이나 혐오표현을 던졌다. ‘어떻게 하면 집회 참가자들을 기분 나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도를 가진 말과 행동이었다. 윤 씨는 진심을 갖고 모여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향한 조롱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한편으론 익숙했다. 대구에서 여성단체 활동가로 일하며 집회나 기자회견에서 ‘페미니스트래’, ‘왜 여성의 날만 있어요?’라고 속닥거리며 지나가는 이들을 자주 봤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수단으로 조롱하며 지나가는 이도 적지 않다. 윤 씨는 내란 사태를 계기로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정치권과 언론에 의해 당위성을 갖게 된 현상이 매우 우려스럽다.
“대구경북 사투리를 두고 흔히 ‘무뚝뚝하지만 속정이 깊다’고 해석하잖아요. 우리는 그게 익숙하기도 하죠. 하지만 말에는 많은 게 담겨있어요. 대구여성의전화에서 데이트폭력 실태조사를 한 적 있는데, 여러 결과 중 유독 ‘대구경북의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지 정도’가 전국 평균 대비 떨어지더라고요. 가족,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다정한 말을 하면서도 툭툭 내뱉는다거나 폭력적인 말을 로맨틱을 가장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독 데이트폭력에 대한 인지 정도가 떨어진다고 봐요. 이런 지역의 정서나 분위기가 보수정당, 극우세력을 키우는 데 동참한 건 아닐까요. 저조차도 부당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넘긴 순간이 많았어요.”

윤 씨가 내란 사태의 원인으로 꼽는 건 윤석열로 대표되는 기득권 남성, 권위주의적 사회 두 가지다. “윤석열은 협상이나 타협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살았겠죠. 그의 경제 수준, 남성이라는 성별 위치성을 고려하면 기득권 밖의 삶을 상상하기 어려웠을 거라 짐작돼요. 그런 사람이 검찰총장, 대통령직에 올라 막강한 권력을 누리면서 폭주하게 된 거죠. 개인의 부도덕성, 오판 만이 원인이라 볼 순 없어요. 권력자를 비호하고 동조한 국민의힘, 평등을 상상하거나 훈련하지 못한 우리 사회에도 원인이 있어요.”
여전히 우리 사회는 평등을 다룰 줄 모른다. 윤 씨는 여기에 내란 사태의 핵심 원인이 있다고 본다. 여성단체들이 여성인권을 말하면 백래시가 돌아온다. ‘남성도 살기 힘들다’는 말이 힘을 갖는다. MZ 세대에 대해 ‘사회에 진출한 초년생들이 무섭다. 그들의 요구를 다 들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 윤 씨는 이런 사례를 들며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적이고 평등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잘 모른다는 증거”라 말했다.
원인을 어떻게 설정하는지에 따라 과제도 달라진다. 윤 씨는 “12월 3일 이전만 해도 혐오 대상이 북한이었지만 이젠 그 자리를 중국이 차지했잖아요. 사실 여성, 페미니스트,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죠. 차별과 혐오를 제대로 다루지 않는 이상 내란 종식은 불가능해요. 윤석열을 몰아낸 건 헌법재판소도, 국회의원도 아닌 광장에 모인 시민입니다. 그 많은 시민이 모인 건 12월 3일 비상계엄 때문만은 아닐 거예요. 평소 자신의 과제에 대해, 부당한 것에 대해 할 수 있는 만큼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거대한 부정의 앞에서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해 나온 거라 해석해야 해요. 윤석열 퇴진 이후 대선 국면이 열렸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과제를 갖고 투쟁하는 목소리에 연대하고, 이를 언론이 조명해야 하는 이유죠.”
김보현 기자
bh@newsmin.co.kr
